구조적 갑질, 일할수록 적자, 1차 하청은 증거인멸 정황도…삼성중 “하청사 간 계약 알지 못해”
삼성중공업 2차 하청 업체 대표 A 씨가 아끼던 직원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다. 11월 15일 작업이 없는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A 씨는 그날도 작업복을 입고 삼성중공업 안 자신의 사무실로 나갔다. 그는 스스로 숨을 끊은 뒤에야 17년 몸 바쳐 일한 조선소에서 떠날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 2차 하청업체 대표가 기성금 후려치기와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에 11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8년 4월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이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발생보고 통계를 근거로 삼성중공업을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에 꼽았다. 사진=최준필 기자
A 씨 유가족은 그의 죽음 이면에 감당할 수 없는 ‘기성금(공사 대금으로 주로 임금) 후려치기’와 일방적인 계약해지 등 구조적 갑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A 씨에게 일을 맡긴 삼성중공업 1차 하청 업체 ‘다순’은 여러 차례 연락에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1차 하청과 2차 하청 사이의 계약은 알지 못한다. 당국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기성금 전달의 반토막
A 씨는 10월 기성금으로 1억 6000만 원가량 받아야 했지만 다순이 제시한 금액은 89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8900만 원 가운데 2718만 원은 다음에 지급하기로 하고 6272만 원 정도만 주기로 했다. A 씨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9월엔 기성금으로 1억 6023만 원을 받았다. 비슷하게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10월엔 이보다 7000만 원 정도 적은 금액이 책정됐다. A 씨가 운영했던 ‘지니테크’ 직원 43명에게 임금 주기도 벅찬 금액이었다. 직원 한 명당 300만 원으로 단순 계산해도 월 임금만 1억 2900만 원에 달한다.
1차 하청 업체 다순이 A 씨에게 보낸 10월 기성금 예상 내역. 당월 지급 총액은 6272만 5713원에 불과하다. 사진=A 씨 유가족 제공
9월에 비해 10월에 일을 덜 한 것도 아니었다. A 씨의 직원들은 9월에 총 6651시간 일했다. A 씨 기록(6782시간)과 다순의 기록(6454시간)이 달라 조정을 거쳐 확정된 시간이다. A 씨 기록에 따르면 직원들이 10월엔 총 6750.5시간 일했다. 9월과 비교해서 일한 시간은 큰 차이가 없지만 기성금 차이는 컸다.
A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조선소 현장에선 계약서 없이 구두 계약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금 책정이나 계약서 작성은 대부분 차후에 이뤄진다. 실제 다순 관계자는 A 씨에게 ‘10월 기성금 예상 내역’을 11월 12일 오후 3시 5분에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이때 가격 후려치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을인 2차 하청은 1차 하청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항의하거나 설득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A 씨와 함께 일한 지니테크의 관리소장은 “평생 조선소에서 살아왔으니 다른 할 일도 없다.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계약서를 먼저 쓰자고 한다거나, 기성금에 강하게 항의하면 앞으로 일 못 딴다”며 “계약서가 없으니 조금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고, 또 임금 지급 날이 다음 달 18일인데 그때 딱 맞춰주니까 손해 보더라도 그거라도 받아야 직원들 월급을 준다”고 설명했다.
#“공구함 반납하라” 일방적 철수 통보
A 씨를 힘들게 한 건 턱 없이 적게 책정된 기성금만이 아니었다. 1차 하청의 철수 통보였다. 더 이상 물량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계약해지다. 다순 관계자는 A 씨에게 11월 12일 오전 9시 51분과 11월 13일 오전 9시 35분 두 차례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팀장님! 개인 공구 및 공통 공구 반납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A 씨에게 일을 맡긴 삼성중공업 1차 하청업체 다순의 관계자는 A 씨 사망 전 공구함 반납을 요구했다. 공구함 반납은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다. 또 다순 관계자는 11월 12일에서야 10월 기성금 예상 내역을 A 씨에게 보냈다. 사진=A 씨 유가족 제공
‘공구함을 반납하라’는 말은 조선소 현장에선 해고 통보로 쓰이는 말이었다. 보통 작업 인력만 보유한 2차 하청은 1차 하청에서 장비를 가져다 쓴다. 2차 하청 직원들은 1차 하청의 장비를 대개 개인처럼 보관하고 사용한다. 그 장비를 도로 가져오라는 말은 일을 그만하라는 일종의 은어다.
A 씨가 회사 지니테크를 차린 건 지난 8월 중순이었다. 다순의 대표 B 씨가 찾아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당시 A 씨는 다른 하청 업체에서 현장 소장을 맡고 있었다. A 씨는 이를 받아들여 회사를 만들고 8월 말부터 다순의 물량을 받았다. A 씨 처남은 “매형이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일을 못 하게 되니까 막막하고 억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 씨가 회사의 대표가 됐다고 해서 현장 소장 위치와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A 씨는 직원 43명이 있는 회사의 대표였지만 현장에선 ‘물량팀장’으로 불렸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뿌리박힌 조선소의 다단계 사내 하도급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원청-1차 하청-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번 경우엔 원청은 삼성중공업, 1차 하청은 다순, 2차 하청은 지니테크다. 1차 하청은 최소 관리 인력만 고용한 뒤 원청에게 도급 계약을 따낸다. 1차 하청은 도급 계약 일부를 2차 하청에 재하청을 준다. 실제 현장에 투입돼 일하는 건 2차 하청 직원들이다.
2차 하청은 마치 1차 하청의 팀처럼 움직인다. 현장에서 2차 하청이 1차 하청의 ‘물량팀’으로 불리는 이유다. 1차 하청 입장에선 직접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외주를 주는 형식으로 계약을 하면 필요할 때만 쓰고 일감이 적을 땐 쉽게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 기성금 후려치기도 쉽다. 원청이 기성금을 깎으면 1차 하청은 거기에 또 깎아서 2차 하청에 재하청을 준다.
김경습 삼성중공업 일반노조 위원장은 “일할수록 적자 보는 구조다. 평생 조선소에서 일한 사람이 발 빼긴 쉽지 않다. 2차 하청 대표는 이 관행을 알지만 위에서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일감을 얻지 못한다”며 “임금이 체불되면 2차 하청 사장이 직원들에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사장은 범죄자가 될지언정 직원들은 소액체당금(밀린 임금 일부를 정부가 대신 지원해주는 제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원청의 기성금 후려치기다. 원청이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로 기성금을 깎으면 그 부담은 가장 밑에 있는 2차, 3차, 4차 하청으로 전가된다”며 “구조적 갑질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끝까지 챙겨 주지 못해 미안”
다순 관계자가 관련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정황도 나왔다. 근무일지가 기록된 A 씨의 컴퓨터를 가져간다든가 A 씨 휴대전화에서 “공구함 반납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삭제했다. 지니테크 관리소장은 “A 씨 사망 다음 날 다순 관계자가 A 씨 컴퓨터를 가져갔다. 우리가 항의해서 찾아왔다. 10월 근무 기록이 적힌 엑셀 파일이 휴지통에 있었고, A 씨의 휴대전화에서 ‘공구함 반납하라’는 내용이 삭제돼 있었다. 단톡방에서 한 말이라 내 휴대전화에 그 기록이 남아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다순은 답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중공업 2차 하청업체 대표 A 씨는 6장의 유서를 남겼다. A 씨는 “B 대표님도 많이 힘든 거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소의 구조가 이렇다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고 했다. 사진=A 씨 유가족 제공
A 씨는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에게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유서 6장을 남겼다. A 씨는 “B 대표님도 많이 힘든 거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소의 구조가 이렇다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라며 “저는 삼성중공업을 사랑합니다. 삼성중공업 덕분에 우리 OO이를 키웠습니다. 남준우 대표님 우리 OO이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또 A 씨는 “맘 편하게 여행도 한번 못 가본 우리 집사람 한 번도 위로와 따뜻한 말을 못 해준 게 가장 큰 한으로 남을 듯합니다.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끝까지 챙겨주지 못 해 정말 미안하구나”라며 “한번 꼬인 실타래를 풀어 보려 발버둥 쳐봤지만 치면 칠수록 엉키는 실타래가 너무 무겁고 두려워. 이제는 놔야 될 것 같아. 끝까지 같이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남겼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