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재진 우 준규 작심하고 몰아친다
▲ 지난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남이섬에서 열린 제8차 국가고용전략회의 및 관광현장을 방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정가에서 이번 사정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뜨겁기만 하다. 사정의 대상과 강도 등을 감안할 때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검찰 안팎에서는 특정 기업과 현역 의원과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봇물 터지듯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자칫 표적수사로 흐를 것을 경계하고 있고 여권에서는 ‘희생양’이 될 것을 우려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온도차는 나지만 여·야 모두 조만간 몰아칠 ‘사정 한파’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히든카드로 꺼내들 ‘사정 드라이브’, 그 막후를 따라가 봤다.
7·28재보선이 치러진 다음날 모처럼 청와대엔 활기가 돌았다. 한 출입기자는 “올해 들어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여권의 ‘무덤’이라던 재보선에서 야권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특히 ‘왕의 남자’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당선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그동안 지방선거 패배,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등 잇단 악재에 허덕이던 여권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준 선거였던 것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남은 임기 동안 마무리를 잘 하라는 국민들의 격려로 이해한다. 앞으로 내년 4월까진 대규모 선거가 없는데 이 대통령이 마음 놓고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재보선 승리를 발판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친서민 정책’ 기조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최근 이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고위 인사들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여권 핵심부는 이르면 8월 둘째 주부터 대기업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MB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면하고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대기업, 적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돈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 호화청사 건립과 같이 예산 낭비로 지탄받는 지방자치단체 모두 사정 대상이다. 친서민정책의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면 국민도 호응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사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집안’부터 철저히 체크한다는 방침이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인사 개입 의혹 등으로 인해 현 정권의 사정 라인에 대한 국민들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사정의 ‘핵심’을 맡아야 할 검찰도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라 반전의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의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우선 우리 스스로가 깨끗해진 뒤에야 국민들도 (사정 결과를) 납득하지 않겠느냐. 민간인 사찰로 문제가 된 총리실뿐 아니라 검·경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에 대해서 우선 면밀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 7월 26일 참모진들에게 “사정기관의 운영 실태 및 업무 체계를 점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5월 초부터 사정기관을 포함한 대대적인 공직감찰을 준비해왔다(<일요신문> 942호 보도). 원래 지방선거 이후 실시하려 했으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면서 미뤄졌고, 이번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청와대 민정팀이 사정기관 감찰을 이끈다는 것이다.
▲ 권재진 민정수석(왼쪽)과 김준규 검찰총장. |
정치권에선 이번 사정기관 감찰에 대해 ‘내부단속’보다는 ‘빨대색출’에 더욱 방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정보 유출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던 여권 핵심부가 그 진원지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출신의 한 친이계 의원은 “제대로 된 사정을 하기 위해선 보안이 우선이다. 그런데 그동안 자료들이 여러 차례 새나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를 막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집권 후반기 공직사회나 사정기관이 특정 권력에 줄을 대는 경향이 흔히 있었는데 이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가타부타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민주당에 자료를 건네 준 사정기관 직원을 잡아내겠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렇게 될 경우 여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뜻이 없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여권 일각에선 이번 사정기관 감찰이 특정 정치세력 간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사정 라인의 최고 실세로 여겨졌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힘이 빠진 상황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주류 세력 간 대립과 갈등이 깊어질 것이란 얘기다.
사정기관 감찰을 통해 내부전열 정비가 마무리되면 이명박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는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 ‘정황’은 속속 포착되고 있다. 특히 검찰의 동선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정 정국에선 ‘검풍’이 가장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7월 14일 “경제범죄 수사는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큰 기업의 중대범죄 위주로 진행할 것”이라면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기업, 상장기업, 공적자금 투입기업, 거액 대출기업 등이 수사대상이 된다”고 밝히며 그 서막을 예고한 바 있다. 스폰서 파문으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에게 대형 비리 수사는 명예 회복을 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취임 후에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김 총장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사정에 대한 의지가 강한 상황인지라 검찰의 수사 환경도 제대로 조성된 상태다.
검찰에선 총장 하명 사건을 담당하는 대검 중수부가 사정 작업의 선두에 선다. 중수부는 지난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실상 직접 수사를 중단했다. ‘존폐론’까지 일자 조직 개편을 단행해 일선 수사의 관리·지원 업무에 치중해왔다. 핵심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른 부서에 배치했다가 필요할 때 불러들이는 ‘예비군’식으로 운영했던 것. 그러나 중수부는 8월 초까지 조직을 재정비, ‘상비군’으로 전환해 본연의 사정 업무에 들어갈 계획이다.
실제 검찰은 지난 7월 26일 노 전 대통령 조사에 참여했던 우병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대검 수사기획관,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맡았던 윤석열 범죄정보2담당관을 중수 2과장으로 기용하며 새로운 진용을 갖췄다. 검찰 내에선 내로라하는 ‘특수통’이자 김 총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중수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쌓아 놓은 첩보들만 가지고도 당장에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1년 쉬고 난 뒤 선보이는 첫 작품이니만큼 그 대상 선정에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수사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비리나 권력형 부패 사건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일요신문>이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과 접촉해본 결과 현재 검찰 리스트엔 대기업 세 곳이 수사 리스트 최상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A 사의 경우 최근 자금을 담당하는 한 임원이 극비리에 소환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A 사는 계열사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및 골프장 건설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로비 혐의 등을 받고 있다. B 사는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정·관계에 막대한 돈을 뿌린 의혹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 야권은 물론 여권인사도 개입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수부는 대표적인 ‘친 MB기업’으로 꼽히는 C 사에 대해서도 해외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중수부는 공기업 및 지방자치단체들도 사정권에 두고 ‘타깃’을 물색 중이다. 특히 호화청사 논란 등 예산 낭비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우 일선으로부터 자료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중수부가 나선 이상 정치권이 이번 사정 광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몇몇 의원들은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레이더를 세우고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중수부가 야권 정치인들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어 염려스럽다. 중수부 폐지를 거론했던 의원들 중에서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고 ‘정치검사’ 오명을 씻길 바란다”고 말했다. 야권에 비해 덜하기는 하지만 여권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상득 의원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위기에 빠진 검찰이 여야 가리겠느냐. 오히려 우리가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