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상대전적 3승 10패로 열세…목진석 감독 “누가 더 세다고 하기 어려워 5 대 5 승부”
신진서가 11월 24일 농심신라면배 2차전에서 중국의 탕웨이싱을 꺾었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제22회 농심신라면배 2차전이 지난 11월 24일 막을 내렸다. 내년 2월 열리는 3차전을 앞두고 한국, 중국, 일본 선수가 모두 2명씩 남았다. 이번 대회에선 일본 선수 쉬자위안, 시바노 도라마루가 1승씩 거두며 선전했다. 한국 선수 홍기표·신민준은 중국 강자를 꺾고 일본 선수에게 지는 패턴을 보였다. 중국은 구쯔하오가 3연승 축포를 터뜨렸지만, 다른 중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를 잡고 한국 선수에게 패하면서 묘한 균형을 이뤘다. 마지막 대국에선 한국랭킹 1위 신진서가 나와 탕웨이싱을 꺾었다. 원래 랭킹 순으로 출전한다면 박정환이 나설 차례였다.
국가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2차전이 시작하기 전에 남은 선수 세 명과 각각 이야기를 나눴다. 박정환 선수가 뒤에 나서길 원했다. 개인적으론 신민준 대신 3장 출전까지 고려했는데 당시 남해 7번기 5국을 마친 직후라 컨디션 조절할 시간이 필요했다. 신민준 선수는 이미 자신이 다음 순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진서 선수는 ‘언제 나가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진서는 3차전에선 ‘열도의 일인자’ 이야마 유타와 대결한다.
목진석 감독은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대국이 많아지면서 대국 환경과 시간에 적응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국가대표팀에선 세계 대회를 앞두고 최대한 실전과 같은 대국 환경을 만들어 훈련하고 있다. 모니터와 테이블, 심지어 의자까지 실전과 같다. 이번 농심배도 같은 방식으로 준비했다”면서 “신진서가 강하지만, 3차전에 남은 선수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다. 무난히 이길 수 있는 상대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엔 커제를 이겨야 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8월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최종국에 나선 커제. 박정환을 꺾고 중국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사진=중국 시나바둑 제공
결국 커제가 문제다. 목 감독은 “커제는 총명함이 바둑에 나타난다. 확실히 특출난 면이 있다. 대외활동에 학업까지 병행하는데 성적이 나빠지지 않는다. 바둑을 대하는 시간만큼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훈련한다는 이야기다. 커제가 승부에 강한 건 발상의 유연함 덕분이다. 잘 얽매이지 않는다. 승부처를 느끼는 촉감이 남다르다. 노림도 풍부하고, 변환이 자유자재다. 그의 장단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다가가야 한다. 과거 중국에서 이창호, 이세돌을 파고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커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이슈를 몰고 다니는 기사다. 인터뷰에서 나오는 센 발언은 모두 중국 바둑팬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다. 그래서 그의 말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바둑을 이슈로 만들어 대중에게 더 알리려는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년에 신진서-커제 10번기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있다. 만약 성사가 되면 지난 2014년 열렸던 이세돌-구리 10번기 못지않은 특급 이벤트다. 둘 다 실력이 절정에 올라있어 시기적으로 딱 좋다. 물론 양국 스폰서 간 조율과 상금배분, 대국 장소 등 헤쳐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커제와 신진서 상대전적은 3승 10패. 신진서는 작년만 1승 3패, 올해도 3패로 최근까지 성적이 좋지 않다.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전이 스코어를 반전할 좋은 기회라고 여겼는데 뜻밖의 불운이 겹쳤다. 과정이 어쨌든 다시 커제가 신진서를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앞으로 공식대국에서 한두 번 정도는 커제를 꺾어줘야 10번기를 하더라도 한국 쪽 스폰서가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이 생긴다.
농심신라면배 승자 인터뷰 중인 신진서 9단. 내년에 커제와의 10번기가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둘은 언제 다시 대결할까. 내년 1, 2월은 이미 세계대회 일정이 꽉 찼지만, 막상 둘의 만남은 쉽지가 않다. 1월 응씨배 4강전과 춘란배 8강전이 시작하고, 2월 LG배 결승 3번기와 농심신라면배 3차전 등이 열린다. 응씨배에선 준결승에 신진서가 남아있지만, 커제가 셰커에게 지며 8강 탈락했기에 ‘신커 대전’을 볼 수 없다. 춘란배 8강에서도 각각 다른 상대와 대결한다. LG배는 신진서가 아니라 신민준이 커제와 3번기로 겨룬다. 남은 건 농심신라면배다. 2월 22일부터 시작하는 3차전에서 신진서가 4연승을 거두고 최종전에서 커제와 만나 이겨주는 게 가장 재미난 시나리오다.
국가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농심배에서도 끝까지 가서 커제에게 지난 패배를 설욕하길 바란다. 신진서는 지면 더 불타오르는 스타일이다. 삼성화재배 패배가 아팠지만, 그만큼 또 성장했다. 아직 상대전적에선 밀리지만, 지금 커제와 신진서 누가 더 세다고 말하긴 어렵다. 만약 10번기가 열린다면 정확하게 5 대 5 승부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신진서는 패배를 곱씹으며 더 독해지고, 쓰라린 아픔조차 실력으로 흡수하는 마공을 지니고 있는 기사다. 기회가 온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승부처 돋보기] 깊고 넓은 수읽기의 힘 제22회 농심신라면배 본선9국 ●탕웨이싱 9단 ○신진서 9단 2020.11.24. 300수 백4.5집승 실전진행1 #실전진행1 ‘수미쌍관’ 신진서는 모험을 추구하는 바둑이다. 자신의 수읽기에 강한 자신감을 가진다. 날카로운 잽과 그 뒤에 도사리는 묵직한 한방이 상대에게 엄청난 압박을 준다. 백3의 좋은 감각이다. 여기에 흑이 5자리로 두어 집을 굳히면 백은 A방향으로 중앙을 막아가는 여유가 생긴다. 만약 백이 3 대신 먼저 5자리를 들어갔다면 흑은 중앙 쪽으로 틀어막을 게 눈에 보인다. 신진서는 초반 포석부터 5선 날일자로 묘하게 상대를 자극해 흑돌을 양분했다. 이 바둑 최후엔 초반부터 두 동강 난 하변 양곤마의 사활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신진서의 바둑은 ‘수미쌍관‘의 스토리가 있다. 실전진행2 #실전진행2 ‘엮어내기’ 중반까지 서로 펀치를 주고받으며 바둑은 팽팽한 형세로 흘러왔다. 신진서는 좌중앙 공격에서 수읽기 착각이 나와 다시 불리해졌다. 그러나 꾹 참고 기다리다 마지막 우변에서 탕웨이싱의 무리수를 잘 엮어냈다. 중앙대마는 백B로 끼우는 수가 있다. 하변 대마의 사활관계 때문에 백1로 치는 단수가 선수다. 사전 작업을 한 후에 백3으로 붙이니 흑돌(세모 표시)이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우하 흑대마도 확실한 한 집은 C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정타였다. 참고도 #참고도 ‘사석작전’ 흑은 네모 한 점을 잡을 순 있었다. 그렇게 하면 자충에 걸려 백이 중앙을 선수로 틀어막게 된다. 그래서 흑1로 젖혀 버텼지만, 참고도 흑3처럼 백 석 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러면 일종의 사석작전에 걸린 셈이다. 백8까지 필연의 수순으로 하변 대마가 다 죽는다. 실전에선 탕웨이싱이 하변 대마를 살렸고, 눈물을 머금고 흑 다섯 점(O표시)은 내줬다. 승부는 여기서 끝났다. 신진서가 힘들고 초조한 상황에 들어갔을 때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깊고 넓은 수읽기의 힘이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3~4년 전만 해도 실수가 나왔을 때 감정이 격해지며 그대로 침몰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점이다. |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