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판정서 협상 제안 주장하려는 꼼수 지적…‘협상 거부’ 여론 거세 정부 소송 지속 관측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론스타의 밀실 야합 중단 △국회를 통한 협상안 공개 논의 △ISDS 진행과정과 자료 공개△론스타 국회 특별 청문회 개최 등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사진=금융정의연대 제공
최근 론스타가 소송을 중단하는 협상안으로 한국 정부에 8억 7000만 달러(약 9700억 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늦게 승인해 입은 피해액 6억 2000만 달러와 부당하게 국세청에 납부한 세금 2억 5000만 달러를 합한 금액이다. 앞서 2012년 론스타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소송 규모는 47억 달러(약 5조 2000억 원)에 달한다.
론스타는 “이번 협상안은 ICSID 재판에서 받을 수 있는 최소액이다. 2008년 HSBC에 60억 달러에 외한은행을 매각했는데 한국 정부 때문에 무산됐다”며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대금 35억 달러와 매각 지연으로 외환은행에서 받은 배당금 약 10억 달러를 당초 매각액에서 차감하면 피해액이 17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금 관련해서도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부과한 세금 중 대법원에서 승소한 액수와 법정 이자만 받고서 끝내겠다“고 덧붙였다.
론스타가 소송가액과 비교해 현저히 낮아진 금액을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애초에 소송가액을 5조여 원으로 잡은 것부터 매우 부풀어진 것”이라며 “매각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한 번만 인정된다. 다른 은행에 팔 기회가 있었으니 이를 합산해서 달라는 것은 이중 청구이고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세금도 일부 소송에서 이긴 것만 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국내 소송에서 구제받은 걸 국제중재에 가져갈 수도 없다. 이번 협상안도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론스타가 선제적으로 협상안을 제시한 것을 두고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노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협상안은 공식적인 법률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전달됐다. 답변 시한도 한 달이 채 안 된다. 론스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서 중재판정에서 협상을 제안해왔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소송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송기호 변호사는 “국제분쟁에서 소송 대상과 협상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변론하는 것이 재판 결과에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법무부 산하에 신설된 ‘국제분쟁대응과’를 통해 직접 론스타 소송을 보고받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청와대 제공
론스타의 협상안은 청와대를 거쳐 법무부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안은 마이클 톰슨 론스타 부사장 명의로 작성됐고 한국 정부의 회신 기한은 오는 11월 30일까지다. 법무부는 협상안을 바탕으로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논의할 방침이다. 그동안 론스타로부터 공식적인 협상을 제안받지 않았다고 밝혀온 정부가 이번 협상안을 공식 제안으로 간주한 셈이다.
이에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정부의 협상을 차단하고 나섰다. 11월 25일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민주주의21 등의 시민단체는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밀실 협상 중단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11월 23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8년의 소송 동안 정부는 계속 승리를 확신해온 만큼 이제 와서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는 협상 검토를 즉각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된다”고 말했다.
검토에 나선 정부 역시 쉽사리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법무부는 산하에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꾸렸고 올해 8월엔 대응단 산하에 ‘국제분쟁대응과’를 신설했다. 국제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부서로서 8년이나 지속된 론스타 사건을 해결하고 이를 계기로 제2의 론스타 사태를 예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분쟁대응과에 보고받는 방식으로 론스타 소송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은 8건이다. 이 중 3건은 마무리됐고, 5건이 진행 중이다.
론스타는 현재 국제상공회의소(ICC) 판결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앞서 2016년 론스타는 하나금융이 론스타를 속여 손해를 입었다고 ICC에 제소했지만, 2019년 5월 완전히 패소했다. 문제는 ICC 중재판정부가 “한국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매각가 인하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부분을 론스타가 ISD 소송 증거로 활용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법무부는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ICC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당사자 및 근거법이 다른 제3의 사건이다. 정부는 ICC에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했다”며 “ISD 중재판정부가 ICC 판정문에 증명력을 부여할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계속 론스타가 이를 증거로 활용하려는 행위가 부당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일정은 중재판정부의 절차종료 선언과 판정 선고가 남았다. 2018년 말 중재판정부의 절차종료 선언이 예상된다는 ICSID의 입장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절차종료 선언은 없다. 절차종료선언이 되면 180일 이내에 판정을 내려야 한다. 올해 3월에는 의장중재인이 사임하면서 절차종료 선언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 6월 의장중재인이 새로 선임되면서 심리 절차가 재개됐다. 내년 중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