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문제 제기, 본질은 PBR 0.25배 저평가 불만…김동원 사장 승계 염두 의혹에 업황 영향 반론도
#불공정거래 조사 민원 제기

‘불공정거래 조사요청 고발장’이라는 제목의 문서엔 “한화생명의 압도적인 기업 펀더멘털과 저평가 상태를 무시한 채, 비정상적인 대량의 공매도와 지속적인 매도 폭탄을 투하하며 의도적으로 주가를 하방 압박하고 있다는 의심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정 세력이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주가 하락을 유도하고 있는지, 매도 압력 배경에 주식을 빌리지 않고 먼저 매도하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개입돼 있는지 전수조사를 요청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소액주주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접수된 신고를 검토한 뒤 불공정거래 혐의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사건을 넘기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신고 내용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등에서 규정하는 위법·부당행위와 관련이 없거나 신고 내용의 구체적인 사실이 제시되지 않아 불분명한 경우 신고를 종결 처리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6월 22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한화생명은 대차거래 체결 상위 6번째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차거래는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가 주식을 빌리는 거래로, 체결 물량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주식을 빌려간 거래가 활발했다는 의미다. 공매도는 대차거래로 미리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실제로 하락하면 싼값에 되사서 갚는 거래다. 대차거래로 빌린 주식은 차익 해지거래뿐 아니라 공매도에 쓰일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생명의 전체 거래량 중 공매도가 차지한 비중은 지난 1월 12일 27.58%까지 올랐으나 6월 들어서는 한 자릿수 비율에 그치고 있다.

이번 조사 요청은 공매도 의혹 제기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기간 이어진 주가 부진과 저평가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분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생명은 2010년 공모가 8200원에서 시작해 같은 해 4월 종가 기준 955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2018년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20년 한때 1000원 아래로 떨어졌던 주가는 이후 수년간 3000원 안팎에 머물렀다. 올해 2월 장중 7000원 선까지 반등한 주가는 현재 5000원을 밑돌고 있다.
한화생명의 밸류에이션 지표도 좋지 않은 편이다. 6월 22일 기준 한화생명의 PBR은 0.25배에 그쳤다. PBR은 주가를 1주당 순자산가치(BPS)로 나눈 값이다. PBR이 1배 아래라는 것은 기업을 청산했을 때보다 주가가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생명보험 상장사 PBR은 삼성생명이 1배, 미래에셋생명이 1.1배, 동양생명이 0.65배였다. 한화생명의 PER(주가수익비율)은 5.87배로 삼성생명(31.38배), 미래에셋생명(29.84배), 동양생명(11.92배)보다 낮았다. PER은 주가가 1주당 순이익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PER이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됐단 뜻이다.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인 자사주 소각 계획을 한화생명이 내놓지 않아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한층 커진 분위기다. 한화생명은 올해 1분기 말 보통주 기준 지분율 13.49%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보험사와 달리 한화생명은 아직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2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업이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는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자사주도 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앞서의 한화생명 소액주주 A 씨는 “한화생명의 주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 대주주 일가가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며 “한화생명은 연간 1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는 회사인데, 수년간 주가가 액면가를 밑도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회사든 제3의 세력이든 지속적으로 주가가 관리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어 불공정거래 조사를 요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회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주가를 올릴 만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주가를 방치하는 것”이라며 “주주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진 않다”라고 밝혔다. 반면 한 증권사 연구원은 “개인 주주가 금융사의 주가를 누르는 것은 쉽지 않다”며 “금융사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업종인 만큼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고 밝혔다.
한화생명 주가가 장기간 부진한 데는 업황 영향이 크다는 반박도 나온다. 앞서의 증권사 연구원은 “(보험부채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꾼)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책임준비금(예상 가능한 위험에 대비해 보험사가 쌓아둔 금액) 부담이 커지면서 삼성생명·삼성화재·DB손해보험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보험사들은 적극적인 주주환원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부담이 완화되는 시점에는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화생명은 2024년과 2025년 배당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한화생명 관계자는 “보험업권 전반의 규제 환경에 따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자회사를 통해 수익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밸류업 방안 역시 향후 규제 변화에 맞춰 다각도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