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맞은 주류 당권전도 녹다운?
▲ 재보선 완패 책임을 지고 정세균 대표가 한때 사의를 표명하는 등 민주당이 내홍을 겪고 있다. 유장훈·박은숙 기자 |
(※한편 8월 2일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정세균 대표와 함께 다른 최고위원들이 일괄 사퇴하고, 임시 지도부 성격인 비대위가 출범했다. 최고위 권한을 위임받은 비대위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모두 11명으로 구성됐다. [편집자주])
재보선 역사상 ‘11년 만의 야당 패배’로 기록된 이번 선거 결과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정세균 대표다. 정 대표 스스로 선거 다음날인 29일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당내 중진 및 원로들의 의견을 청취한 것은 이 같은 충격을 반영한다. 2008년 7월 대표로 선출된 뒤 세 차례의 재보선과 6·2 지방선거까지 연전연승하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의 ‘공든 탑’이 일거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의 외부 인사 영입 무산, 뒤늦은 야권 후보단일화 등은 ‘정세균 리더십’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당내 중립파로 속하는 한 의원은 “정 대표는 역대 어느 대표보다도 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역대 어느 대표보다도 약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며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었던 재보선 공천,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을 통해 정 대표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비주류 일각에서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전대에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어서 정 대표는 당권 경쟁에 뛰어들더라도 이들의 집중포화를 견뎌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정세균 체제’의 기둥 역할을 해 온 486(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 그룹 역시 불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직을 노리고 있는 최재성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무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임종석 전 의원도 같은 486그룹으로 묶여 유탄을 맞을 수 있다.
반면 정동영·천정배·박주선 의원 등 ‘민주희망쇄신연대’ 소속 비주류 주자들은 한결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방선거 이전부터 정세균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 왔지만 정 대표가 선거 때마다 승리하는 바람에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도 ‘할 말’이 있게 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진작부터 변화와 쇄신을 주장해 온 이들 비주류 주자들은 “‘영포(영일·포항)게이트’와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파문 등 여당의 악재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변화 의지를 보이지 못한 민주당의 무능에 대해 국민이 심판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의 ‘정세균 대표 등 주류 때리기’는 이번 전대로까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선명한 야당론’, ‘적극적인 야권연대론’을 내걸고 진보 색채 강화를 주장해 온 정동영·천정배 의원의 입지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노선 면에서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높이면서 보다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지난 7·28 재보선 유세 중인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대표, 장상 후보, 정동영 상임고문. |
주류와 비주류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번 민주당 전대에서 최대 ‘관심주’인 손학규 전 대표의 사정은 좀 복잡해 보인다. 정세균 대표와 당내 지지기반이 겹친다는 점에서 정 대표의 위기는 곧 손 전 대표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상황이 꼭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가 손 전 대표에게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가 ‘정세균 표’를 상당 부분 흡수할 것이라는 관측과 통한다. 손 전 대표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정 대표의 뒤를 받쳐 온 486그룹 등 주류 인사들은 손 전 대표의 당권 도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왔다. 지지기반이 겹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출전할 경우 표가 갈리면서 비주류 측 정동영 의원이 어부지리로 승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재보선 패배 책임론의 멍에를 져야 한다면 이들은 손 전 대표와 정 대표를 놓고 양자택일을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말을 갈아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와 동시에 2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거친 손 전 대표로서는 민주당이 위기에 처한 상황 자체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당내에서 자연스럽게 ‘구원투수론’이 대세를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전 대표 역시 방심하기엔 이르다. 재보선 결과가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 체제’를 향한 책임론이 당내에서 힘을 받을 경우 자칫 전대 구도가 ‘진보 대 실용’의 대결로 치달을 수 있다. 이미 정동영·천정배 의원은 ‘선명한 야당’, ‘선명한 진보’를 주장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진보 축의 중심에 놓이고, 손 전 대표가 정 대표와 한 묶음으로 실용 축의 중심에 놓일 경우 승부는 예측불허의 혼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권의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전대가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는다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린 손 전 대표에겐 더 없이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