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 급성백혈병 제때 치료 못 받아 사망…보훈처 “국가 수호와 직접 관련 없어” 순직군경 불인정
문장은 잘 만들어졌지만 이치에 맞지 않았다. 홍정기 일병은 연대 전술 평가 훈련 기간에 병이 악화해 사망했다. 하지만 이 훈련이 나라를 지키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홍 일병은 재해사망군경, 즉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보상대상자로 취급하겠다는 말이었다. 국가보훈처가 홍 일병 부모에게 보낸 답이었다.
홍정기 일병은 훈련 기간 병원에 가지 못했다. 결국 훈련이 끝나고 얼마 뒤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를 두고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업무 수행 중에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홍 일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어떤 일을 해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거죠? 군인이 군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나라를 지키는 행위 아닌가요? 더구나 훈련 중이라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서 그렇게 된 앤데….”
부모는 보훈처의 답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홍정기 일병은 입대 7개월 만에 죽었다. 진단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허술한 군 의료체계와 군 간부의 안일한 판단은 홍 일병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홍 일병은 연대 전술 평가 훈련(2016년 3월 14일부터 3월 18일까지)을 앞두고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3월 8일, 3월 11일, 3월 13일 세 번이나 연대 의무실을 찾았지만 피부과 전문의였던 군의관은 감기약이나 두드러기약 등을 처방해줬을 뿐이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모든 게 통제됐다. 외출·외박은 물론 병원 진료도 갈 수 없었다. 운전병과 행정병을 겸했던 홍 일병은 훈련 기간엔 단독군장을 하고 위장크림을 바른 채 생활관이나 행정실에서 대기했다. 이 기간 홍 일병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언제부턴가 부대원들이 어디 부딪혔냐고 걱정할 정도의 선명한 멍이 등에 보였다. 홍 일병 동기는 자꾸 토하는 홍 일병의 등을 두드려 주곤 했다. 밤에도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홍 일병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계속 화장실을 오갔다.
홍 일병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온몸에 붉은 반점과 멍이 보였다. 예정보다 조금 더 길어진 훈련이 끝난 3월 21일 오전 홍 일병은 연대 의무실을 다시 찾았다. 군의관은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내놓고서도 감기약을 처방했다. 결국 부대 행정보급관은 결국 홍 일병을 데리고 부대 인근(강원도 양구)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혈액암이 의심된다며 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행보관은 홍 일병과 부대로 복귀했다. 홍 일병이 임시방편으로 처방받은 약은 진통제가 전부였다.
홍 일병이 큰 병원에 가지 않고 복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홍 일병은 당일 밤 불침번 근무까지 섰다. 온몸에 붉은 반점과 멍, 구토 등 이상 증상을 보이는 인원에게 군은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홍 일병은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도 계속해서 화장실을 갔다. 유독 토사물을 많이 자주 쏟아냈다. 홍 일병이 들어간 화장실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함께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던 부대원이 이를 심각하게 느껴 당직 사관실에 보고했다.
홍정기 일병은 3월 22일 아침 국군춘천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처음으로 혈액검사를 했다. 역시나 혈소판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다. 뇌 CT 촬영을 하자 뇌출혈 의심 증상도 보였다. 국군 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였다. 국군병원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3월 21일에서 3월 22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35분, 홍 일병은 사단 의무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바이탈 체크와 X-ray 촬영 등 간단한 검사를 한 뒤 돌아온 답은 ‘돌아가라’였다. 16병상이 모두 꽉 찼다는 이유였다. 부대로 복귀해 또 하룻밤을 견딘 홍 일병은 3월 22일 아침에 국군 춘천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처음으로 혈액검사를 했다. 역시나 혈소판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다. 뇌 CT 촬영을 하자 뇌출혈 의심 증상도 보였다. 국군 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였다.
그날 오후 홍 일병은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미 홍 일병은 축 처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의식도 오락가락했다. 오후 1시 30분쯤 홍 일병의 부모는 의식 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곧바로 의사가 내미는 수술동의서에 서약했다. 수술은 신속하게 이뤄졌지만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손 써볼 게 없었다. 홍 일병은 3월 24일 밤 11시 18분 숨을 거뒀다.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들이었다. 허망하게 보낸 아들을 생각할 때면 부모는 여전히 눈물이 솟는다. 부모는 억울한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방부는 아들의 죽음이 부대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의료 체계 개선 의지도 보였다.
곧 끝날 것 같았던 부모의 군대 밖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의 판단이 끝나자 보훈처는 아들의 죽음에 등급을 매겼다. 동시에 부모 가슴에도 못을 박았다. 아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치됐지만 보훈처는 아들더러 국가유공자는 아니라고 했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4조 5항을 디밀었다. 4조 5항은 ‘순직군경’을 ‘국가의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에 사망한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순직군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가유공자를 뜻한다. ‘직접적인 관련성’이 문제였다.
보훈처는 대신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보훈보상자법)에 따라 보훈보상대상자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앞서 나온 ‘재해사망군경’이 보훈보상대상자를 뜻한다. 홍 일병이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직무수행 중에 사망했다는 해석이었다. 보훈처는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성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직접적인 관련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홍정기 일병은 사단 의무실 응급실로 향했지만 병상이 꽉찼다며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홍 일병은 3일 뒤 사망했다. 국군 병원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는 유족 연금 등 실질적인 지원 차이도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명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 입장에선 보훈보상대상자로 지정되면, 아들의 죽음을 떳떳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군인이었던 아들이 국가 수호와 관련 없는 죽음을 맞은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 사이에서도 아들 죽음의 ‘등급’에 따라 편이 갈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들의 죽음을 두고 등급을 매기다니, 국가가 유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홍 일병의 부모는 자의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끝내지도 못한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군인의 죽음에 등급을 매기는 일은 2012년 7월 1일 보훈보상자법이 시행되면서 생겨났다. 보훈보상자법 이전 국가유공자법 4조 5항 가목을 보면 이렇다. 순직군경은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자(공무상의 질병으로 사망한 자를 포함한다)’라고 돼 있다. 직접적인 관련성을 따지지 않았다. 이 기준을 보면 홍 일병은 논란의 여지없이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
보훈보상자법은 당시 자해사망 군인 등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볼 수 있다. 폭행, 가혹행위 등 부대적 요인이 영향을 끼쳐 자해사망에 이른 군인을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 생겨났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김정민 보훈 전문 변호사는 “군인 죽음에 등급을 매기는 일은 해외에선 없는 일이다. 부대적 요인으로 자해사망한 군인을 달래기 위한 법을 갖고 보훈처가 오히려 사고사나 병사한 군인 죽음의 격을 떨어뜨리는 꼴”이라며 “특수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차별적 대우가 필요하다면 훈장을 준다든가 대우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기 일병 사건을 담당한 김태성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훈련 기간 동안 지휘관들이 홍정기 일병의 건강 상태를 방치해 훈련에 참여시킨 부대적 요인과 전문성의 부재한 군의료시스템으로 인해 홍정기 일병의 병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며 “직접적 직무 연관성이 명백해진 셈이다. 군인이 영내에서 사망했다면 보다 폭 넓게 예우를 해주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1950년 군 창설 이래 비순직 처리된 사망군인은 3만 9000여 명에 달한다. ‘개인적 사유’에 의한 자해 사망인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인람)는 2018년부터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대 내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순직 처리로 이끄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9년 9월 13건의 의문사를 진상규명한 뒤 매월 성과를 내고 있다. 일요신문에서 진상규명된 사연을 연재한다. |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