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사업 떠넘긴 전-현정권이 공범’
▲ 지난해 10월 성남시 분당구에서 펼쳐진 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서 이지송(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내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지공사, 주택공사 양 노조위원장 손을 맞잡아 올려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여권 일각에선 LH가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차질을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여야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부채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 고려’에 의한 사업으로 인해 발생했고, 수년 전부터 토공과 주공의 부실 경영에 대한 우려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 이 와중에 일부 의원들은 LH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검토 중인 사업 구조조정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제외시키기 위해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위기의 LH’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따라가 봤다.
“(토공과 주공을) 합치긴 했는데 그 뒤가 걱정스럽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LH 출범 직후인 지난해 10월 초 여권의 한 고위 관료가 내뱉은 말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얼마 전 LH는 자금난을 이유로 성남시에 대한 재개발 계획을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다. 미분양 아파트 속출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LH가 마침내 ‘백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설마’ 하던 LH 부채 문제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기자와 다시 통화한 이 고위 관료는 “통합 당시 주공과 토공 부채가 90조 원가량이었다. 거대한 부실 덩어리가 탄생한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14년에 2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LH 부채는 118조 원가량이다. 지난해 국가부채(366조)의 1/3 수준이다. 이 가운데 금융성 부채가 83조 원이다. 금융기관에 내야 하는 하루 이자만 1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H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최근 정치권에서 그 책임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선공은 민주당이 날렸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의 일환으로 사전 구조조정 없이 통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며 비난했던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건설교통부 장관(2006년 12월~2008년 2월)을 지냈던 이용섭 의원 측은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재정난이 일시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중단되는 사업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LH가 ‘사업 퇴출 리스트’를 작성할 때 야권 출신이 단체장으로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말도 들리고 있다.
여권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LH가 통합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만든 주범은 민주당”이라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실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난 정부 때 넘겨받은 것이 엄청나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지송 LH 사장 역시 “지난 정부가 전국 여기저기에 일을 벌여놓고 LH에 떠넘겨 재정이 악화됐다”면서 “토공과 주공이 졸속 통합해 부채가 심각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은 LH 사태를 최대한 정치 이슈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재 ‘대책위원회’ 구성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LH 부실은 부동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공공주택의 공급이 감소하게 돼 서민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다. 집권 후반기 서민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권은 LH 사태 논란의 ‘조기 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야권이 내세우는 ‘졸속통합에 따른 재무악화’ 논리가 먹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LH는 현 정권 주요 사업들인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에 참여하고 있는 공기업이기도 하다. 수도권 출신의 한 친이계 의원은 “(LH 문제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지금 수습하지 않으면 정권 후반기에 크게 당할 수 있다”면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처럼 정치권이 LH 부채를 놓고 서로 ‘네 탓’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 등에선 쓴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공기업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혁승 연세대 교수는 “정치권이 사업을 떠넘기면 LH로서는 안 할 수가 없다. 사업성도 검토하고 예산도 살펴봐야 하는데 무조건 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LH의 상급기관인 국토해양부의 한 간부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었던 참여정부와 특별한 대안도 없이 적자 공기업 두 개를 합친 이후 부동산 경기는 생각하지 않고 보금자리주택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재정지원을 하든 구조조정을 하든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LH의 부채 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봐도 여와 야는 ‘공범’임을 알 수 있다. LH의 금융성 부채 중에는 임대주택(30조 원) 신도시·택지(28조 원) 세종시·혁신도시 등 정책사업(10조 원) 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한 사업들이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 모두 LH를 앞세워 각종 국책사업을 실시해왔던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서민경제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은 향후 LH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서의 국토해양부 간부는 “LH 내에서도 적자가 쌓이고 있는 보금자리주택을 손질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업인데 그럴 수 있겠느냐. 그것이 공기업의 한계”라고 털어놨다. 양혁승 교수 역시 “비단 LH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공기업이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다. 공기업 자체적으로 정치권 요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LH는 자구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빠르면 9월 중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핵심은 LH가 추진 중인 사업의 구조조정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지송 사장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사업을 벌이면 해당지역 주민들이 재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며 “시간을 끌수록 주민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독한 마음을 먹고 정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H 측은 “객관적이고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퇴출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LH 안팎에서는 전국 414개 사업장 중 최대 130여 개가 정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정부 역시 LH에 대한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인 자금 투입은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어 가능성이 적고 국민주택기금에서 빌린 임대자금(18조 원) 상환기간을 연장해주는 등의 간접적인 방법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LH의 사업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해당 사업장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 정리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몇몇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은 벌써부터 소송도 불사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일까. 최근 LH에는 퇴출 리스트를 문의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LH의 한 고위 임원은 “여야 할 것 없다. 국회의원 혹은 보좌관들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사업장이 어떻게 될지 물어본다. 일부는 올해 국정감사 및 내년도 예산을 거론하며 은근히 압력을 넣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공개적으로는 LH 부채를 비난하고 대책 마련을 외치는 그들이 뒤로는 이렇게 지역구 ‘표 관리’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 너무 이중적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윤호석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의원들로선 2012년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역구 사업장도 못 지킨 능력 없는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는 LH 사태와 관련해 정치권과 국회의원들에게 지역 논리를 뛰어넘는 시각과 해법이 더욱 절실해지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주공-토공 출신들 부채 놓고 ‘네 탓’ 공방 까닭
‘뒤집어 쓰면 주도권 뺏길라’
정치권만 부채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게 아니다. LH 내에서도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재무 악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듯하다. 토공 출신들은 “원래 주공의 부채가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합친 이후에도 주공 사업 부문에서 더욱 적자가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주공 출신들은 “우리는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공공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토공이 통합 직전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에 부채가 늘어났다”고 반박했다.
사실 토공과 주공은 통합 과정에서부터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토공은 통합을 반대했고, 주공은 찬성했던 것. 통합이 결정된 이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측은 신경전을 벌였다. 임원 인사부터 시작해 자리배치 등 사소한 것까지 힘겨루기를 했다고 한다. 토공 출신의 한 LH 관계자는 “서로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잘 지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직은 해소되지 않은 양측의 ‘앙금’이 부실 문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LH 일각에서는 “토공과 주공 출신들이 부채 문제를 본사 이전과 연관 짓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애초에 주공은 진주, 토공은 전주로 이전할 예정이었으나 양사가 통합되면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부터 논의는 있었으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책임이 큰 쪽이 본사 이전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 있어서 불리할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LH의 한 고위 임원은 “통합 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측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렸던 적이 있다. 물론 그게 현 부실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서로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가려질 경우 힘의 균형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뒤집어 쓰면 주도권 뺏길라’
정치권만 부채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게 아니다. LH 내에서도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재무 악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듯하다. 토공 출신들은 “원래 주공의 부채가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합친 이후에도 주공 사업 부문에서 더욱 적자가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주공 출신들은 “우리는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공공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토공이 통합 직전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에 부채가 늘어났다”고 반박했다.
사실 토공과 주공은 통합 과정에서부터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토공은 통합을 반대했고, 주공은 찬성했던 것. 통합이 결정된 이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측은 신경전을 벌였다. 임원 인사부터 시작해 자리배치 등 사소한 것까지 힘겨루기를 했다고 한다. 토공 출신의 한 LH 관계자는 “서로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잘 지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직은 해소되지 않은 양측의 ‘앙금’이 부실 문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LH 일각에서는 “토공과 주공 출신들이 부채 문제를 본사 이전과 연관 짓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애초에 주공은 진주, 토공은 전주로 이전할 예정이었으나 양사가 통합되면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부터 논의는 있었으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책임이 큰 쪽이 본사 이전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 있어서 불리할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LH의 한 고위 임원은 “통합 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측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렸던 적이 있다. 물론 그게 현 부실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서로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가려질 경우 힘의 균형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