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정국 ‘김종인 사과논란’으로 투쟁 동력 상실…지역 파고드는 메시지 없어 TK 고립만 심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싸움 중에 사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공수처를 밀어붙이자 전열을 정비하고 총력 저지 전선을 구축했다. 수적으로 밀리지만 집권 여당 독주를 끝까지 막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과 논란이 끼어들었다.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가결 4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나섰다. 당 내부에서 “지금이 그럴 때냐”라는 비판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물론 “사과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당 내부 중론은 “사과를 할 때 하면 되지만 지금이 사과라는 의제를 굳이 들고나와야 할 때인가”라는 볼멘소리가 더 컸다. 사과를 둘러싸고 당내 투톱인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가 이견을 표출한 것도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꼭 해야 한다”, 주 원내대표는 반대 입장이었다. 최전방 투톱 공격수가 골대 앞에서 “슛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서로 볼을 다투는 격이었다.
이처럼 힘을 집중해야 할 때 국민의힘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분산되고 말았다. 당내 여론은 둘로 쪼개지면서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친이(친 이명박)계 좌장 격인 이재오 상임고문도 12월 7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사과는 김종인이 해야 한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당을 민주당에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는 굴종의 길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지난 4년간의 폭정을 받아들이자는 굴종”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갈팡질팡하는 태도 역시 또 다른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3선 의원들이 12월 8일 김 위원장을 찾아가 ‘사과 반대’ 의견을 전하는 면담을 갖자 한발 물러서면서 사과를 연기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면담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은 아니라며 양해를 구했고, 소속 의원들이 원내에서 총력을 결집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시선을 분산하지 않기 위해 시기 조정에 나서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진작 정치 경험이 많은 당내 중진들의 의견을 들었다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공수처 저지를 위한 당내 결집도 더 공고했을 것”이라며 “이러니 민주당이 우리를 얕보고 문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데도 입법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은 국민의힘에 대한 여당의 조롱으로 이어졌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12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 위원장이) 극약처방, 승부수를 던졌다. 마지막 안을 던지고 제대로 당이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든지, 아니면 ‘나 간다. 잘들 해보라’는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박 의원은 김 비대위원장의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박 의원은 “친박계 등의 반발은 제가 볼 때 의사의 극약 처방이 내려졌는데, 그것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라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당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사과에 대해) 당내 반대 의견이 더 많다. 영남권 의원 일부에서 반대 얘기가 나오고, 재선 의원 의견을 종합해 봐도 반대가 훨씬 많았다. 수도권 의원들 역시 토론 결과 반대가 많았다. 이미 현 정부에 의해서 적폐라는 이름으로 이미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갔는데, 다시 여당 프레임에 끌려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차원의 반대다.” 이는 김 위원장이 당 내부 의견에 대해 귀를 제대로 열지 못해 자중지란을 만들었다는 해석으로도 읽혔다.
유승민 전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 전 의원이 11월 18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발등의 불도 못 끄면서
지난 4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대패한 것은 지방권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았다. 2018년 지방선거 완패로 지방권력이 민주당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동네 민심 장악을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총선도 패배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졌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의 낙선 현장 경험담이다.
“동네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민주당 단체장에다, 민주당 지방의원들이 의회도 장악하면서 이들의 주민 접촉 접점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요즘 정치 현장이 많이 변했다. 주민들은 선출직 정치인들이 동네에 대해 관심을 쏟아주기를 원하고 직접적 요구도 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지방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니 주민들이 국민의힘을 멀리 떨어진 존재로 인식한다. 당선될 리 없다. 지방선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 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사활을 건 싸움이다. 대선 전초전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기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렇다 할’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면서 초반 승부에서 밀리고 있다.
민주당은 필승 카드를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여론조사에서 일찌감치 앞서나가는 상황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12월 5∼6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805명을 조사해 12월 8일 내놓은 결과(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가 거론되는 인물 중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박 장관이 19.9%를 기록,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15.5%,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4.9%로 오차 범위(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에서 그 뒤를 이었다.
내년 보궐선거 프레임과 관련해 정부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야당 지지론이 50.6%로 절반을 넘었고, 정당 지지도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34.4%, 국민의힘이 32.1%로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했는데도 인물 인지도에서 앞서는 박 장관이 1위를 했다. 아무리 집권 세력의 실정론이 커져도 ‘큰 인물’ 없이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이유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러다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고, 당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 폭등 등 현 집권세력의 경제 실정으로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서울을 감안한다면 경제 전문가인 유승민 전 의원이 체급을 낮춰 나오거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정도를 영입해 내보내야 이길 수 있다는 ‘전략 대전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26억 원짜리 서울 강남 전세에 살면서 15년 무주택자의 설움을 하소연한 당내 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말을 꺼내놓고 있는데 이것이 지금 국민의힘 현주소다. 내년 4월 선거는 당의 간판을 내리느냐, 마느냐가 달려있는데 지금 우리 당은 너무 한가한 모습이다. 발등의 불인 서울시장 선거부터 잡아야 2022년 대선도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을 제출 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TK 고립 막아내야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종인 위원장이 거대 담론에는 능하지만 지역을 파고드는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위원장은 경제학자다. 때문에 정치적 발언보다는 학자적 소신에 바탕을 두는 발언이 많다. 예를 들어 금융 공기업이 있는 지방의 어느 도시를 금융 중심지로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금융은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산업으로 번성하는데 거기에서 금융이 되겠느냐”라는 투의 답이 돌아온다. 현상을 분석할 때 학자적 논리가 앞선다.
이러는 사이 민주당은 속사포처럼 지역 민심을 잡아채는 선물을 쏟아내면서 국민의힘을 철저하게 전통적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표면화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외국의 유명 엔지니어링 업체까지 참여, 동남권신공항은 신설이 아닌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는데도 부산이 미는 가덕도신공항에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내년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과학적 정책 판단이 아닌 정치적 노림수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전략은 국민의힘 최대 지지 기반인 TK와 PK(부산·경남)를 갈라놓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나서 “안 된다”고 했지만 PK 의원들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까지 발의했다. 민주당은 PK에 이어 충청권에 대한 본격 공략도 개시했다. 민주당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단장 우원식 의원) 명의로 12월 11일 11개 상임위를 시작으로 국회 세종의사당 이전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대신 서울은 글로벌 국제경제금융수도로 육성하겠다는 세종 행정수도 구상을 발표했다.
추진단은 세종에 있는 정부 부처 소관 10개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를 1단계로 세종 의사당에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회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일부도 이전 대상이다.
국회 세종 이전에 따라 서울은 글로벌 경제금융수도로 육성하기로 했다. 서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과학·창업 클러스터로, 동여의도는 홍콩을 대체할 동북아 금융 허브로 각각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 여의도-상암-마곡-창동을 잇는 경제수도 벨트 조성 계획도 밝히면서 서울의 ‘개발 민심’도 자극시켰다.
국민의힘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커나갈수록 그의 정치적 배후지역이라 할 수 있는 충청권에 대한 민주당의 구애 역시 강화될 것”이라며 “주호영·안철수를 공동대표로 하는 반문 연대인 ‘정권퇴진 비상시국연대’가 12월 10일 출범했는데 과거처럼 태극기식 우격다짐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을 공략하고 각 계층을 파고드는 과학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