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과정 일련의 조치들 법적 문제 없었나 ‘전전긍긍’…청와대, ‘검란’ 다른 부처로 번질까 예의주시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6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산업부 공무원들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것에 이어 구속까지 된 것을 바라보는 관가의 반응은 불만과 걱정이 섞여 있다. 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은 “부당한 지시를 하면 거부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규정에도 그렇게 돼 있다”면서도 “하지만 관료사회에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무진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윗선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은 산업부 공무원 구속을 두고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했다. 그는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나도 비슷한 지시를 받으면 했을 것 같다. 본인이 스스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거기엔 상부의 의중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면서 “검찰이 산업부에 들이댄 수사의 잣대를 다른 부처나 기관에 들이대면 과연 무사할 공무원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목소리들은 역대 정권 후반기면 나오곤 했다. 집권 세력은 이를 공직사회 기강 해이로 보고, 감찰 등을 통해 막으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권 초 바싹 엎드려 있던 공무원들이 청와대 눈치보다는 관료 조직 논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정권에 타격을 주는 폭로와 제보들이 나온 사례도 수두룩하다. 이는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정치권에선 이를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의 관계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정권 초엔 어공의 힘이 압도적으로 세기 때문에 늘공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조직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늘공들의 파워가 더 우세해진다는 것이다. 앞서의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도 “(어공은) 어차피 나갈 사람들이다. 처음엔 말을 잘 듣는 체하지만 속으론 ‘조금만 버티자’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선 그 양상이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정권 초반 적폐청산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지시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적폐로 분류됐던 인사 또는 사업을 정리할 때 규정에서 어긋나더라도 밀어붙였던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공직사회에선 ‘나중에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고 한다. 한 공공기관 전직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지난 정부 지우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유독 심했다. 적폐청산이라는 대의 앞에선 절차나 규정은 문제되지 않았다. 감히 다른 소리를 내지 못했다. 했다간 ‘적폐’로 몰리는데 누가 하겠느냐. 이러한 기조는 정부 내내 계속된 것 같다. 청와대가 강조하는 정책은 무조건 해야 했다. 괜히 규정 등을 얘기해봤자 찍히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공직사회 불만이 쌓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추미애 갈등,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으로 비상이 걸린 청와대는 공직사회의 이런 분위기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에 대한 그립력이 약해지면 남은 임기 국정 운영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가 추미애 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항명성 집단 반발에 민감하게 움직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란’이 자칫 다른 부처 또는 기관으로 번질 가능성 때문이었다.
실제 청와대는 최근 포착된 일부 부처의 기강 해이 사례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앙부처가 올해 안으로 마무리 짓기로 한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그 원인을 파악했는데 일선에서 일을 서로 떠넘기는, 이른바 ‘폭탄 돌리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정치권에서 새롭게 임명된 ‘낙하산 상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문도 뒤를 이었다. 몇몇 부처는 청와대가 새롭게 지시한 사업에 대해 기초적인 계획조차 제출하지 않아 경고를 받았다고도 한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적폐청산 운운하며 불만을 얘기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문 대통령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하자 공무원들의 ‘본색’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니 관료사회 특유의 ‘복지부동’ 모드로 변한 것”이라면서 “이럴 때 정권이 틈을 보이면 공무원들 이탈은 막기 어렵다. 이를 단속하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등이 강도 높은 상시 감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