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최종 판결 해 넘겨 내년 2월로…로비 위해 현지 업체와 계약 등 미국서도 신경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판결이 또 연기된 가운데 양사의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기 배경을 두고 동상이몽
이번 소송 관련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9일(현지시간) 최종 판결을 내년 2월 10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앞서 ITC는 최종 판결을 10월 5일에서 10월 26일로, 그리고 다시 12월 10일로 연기했다. 결국 해를 넘겨 최종 판결이 나오게 된 셈이다. 세 차례에 걸쳐 4개월 이상 최종 판결이 미뤄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ITC 안팎에서 나온다.
ITC는 이번에도 연기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최종 판결 연기가 반복되면서 승리를 낙관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반전을 꾀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양측은 연기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패소로 예비결정을 내렸다. 현재까지 예비결정이 뒤집힌 전례는 없다.
최종 판결이 연기된 것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10일 “올해 ITC 판결이 코로나 영향 등으로 50건 이상 연기된 바 있어 이러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사는 앞으로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소송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참고로 ITC에서 연기 이력이 있는 소송 14건 중 현재까지 9건의 소송이 최종 결정이 내려졌고, 모두 관세법을 위반하였다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고 덧붙였다. 최종 판결 연기가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LG에너지솔루션의 입지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SK이노베이션은 같은 날 “ITC 위원회가 3차에 걸쳐, 특히 두 달이라는 긴 기간을 다시 연장한 사실로 비춰보면 위원회가 본 사안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 및 미국 경제 영향 등을 매우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조속한 분쟁 해결 의지를 강조하면서 양사 협의에 대한 여지를 열어뒀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이 햇수로 3년에 걸쳐 장기화하면서 이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로비전 두고도 신경전
사안이 장기화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측은 미국 내에서도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 불거진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 공장 관련 불법 채용 논란이다.
당시 미 관세보호국경청(CBP)는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 하청업체에 일하기 위해 입국하던 한국인 33명을 불법 채용을 이유로 추방했다. 이후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 협력업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적발됐다. 이 사안은 한국 외교부까지 나서 SK이노베이션과 현대차 측에 경고할 정도로 현지에서는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불법 채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SK이노베이션 조지아공장 관할 하원의원인 더그 콜린스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그가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자문과 로비를 위해 계약한 로펌 등에게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콜린스 의원은 지난 8월과 9월 SK이노베이션 하청업체 불법 채용과 관련해 이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또 콜린스 의원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과 CBP에 불법 채용과 관련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고용 창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 등 최근 SK이노베이션 비판에 앞장선 인물이다. 공장 건설을 통해 미국 내 산업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콜린스 의원의 움직임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현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생긴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후원과 콜린스 의원의 입장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 특정 기업을 대신해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은 불법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콜린스 의원 후원 역시 계약을 맺은 업체가 자체적으로 후원한 것으로 올해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후원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후원금 역시 회사가 자체적으로 조달하거나 파트너급에서 자발적으로 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콜린스 의원이 강하게 비판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는 “콜린스 의원은 그전에는 SK이노베이션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자기 관할 지역에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했는데 이와 반대로 불법 채용을 저지르려 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SK이노베이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활발하게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지 4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한 4개 업체 중 하나인 ‘CGCN Group LLC’ 로펌은 지난 11월 1일 백악관(White House Office, Dept of Commerce (DOC), Dept of Energy, Dept of Transportation)에 4만 1666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백악관과 행정부 관리들이 ITC 결정을 지지하도록 교육해달라고 명시했다. SK이노베이션 측도 지난 10월 미국 로비를 위해 현지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서 로비는 불법도 아니고 미국 내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필요한 데다 과정과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된다”면서 “현지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역시 활발히 로비 활동을 위해 유수의 로펌 등과 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