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핵심 분야, 사모펀드 거쳐 SK가 인수해 승승장구…LS “당시 패키지딜로 재무구조 개선”
동박은 구리를 얇은 종이처럼 만드는 것으로,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의 필수 소재다. LG그룹의 전선업체로 출발한 LS는 동박에 대해서도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촌기업인 LG그룹은 2차전지 사업 덕분에 LG에너지솔루션의 가치가 50조 원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재미를 보고 있는데, LS그룹은 불과 2~3년을 못 참아 아쉬움을 곱씹고 있는 셈이다.
LS용산타워 앞으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신사업 만개 때까지 못 기다려…보수적 기업 문화 탓?
LS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세 동생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의 자손들이 경영하는 회사다. 현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구광모 LS그룹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 구자경 회장의 사촌이다. 동생 일가는 2003년 계열분리 원칙에 따라 LG에서 금속과 전선 부분만 떼어내 독립했는데, 동박 사업을 품고 있던 LG금속(현 LS엠트론)도 이 당시 LS로 넘어왔다.
LS의 특징은 가족 경영을 한다는 점이다. 회장만 8명이라 ‘8인회’라고도 불린다. 구태희 명예회장의 아들로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이 있고, 구평회 명예회장 아들로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이 있다. 구두회 명예회장 아들에는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이 있다.
분할 이후 LS는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했다. 출범 당시 5조 원이었던 자산이 현재 24조 원으로 불어나 재계 순위 16위를 차지하고 있고, 계열사도 54개사로 늘었다.
문제는 판을 뒤집을 만한 한방이 없다는 점이다. 그룹 덩치를 불리려면 공격적인 M&A에 나서든가 획기적인 신사업을 꾀해야 하는데, 보수적인 기업 문화 영향으로 도통 진행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동박 사업을 팔아버릴 정도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사업이 만개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못한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지난 2월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 호텔에서 열린 KPGA 제18대 회장 취임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는 무엇보다 기업 문화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촌 경영을 하는 기업인 데다, 제조기업이라는 특수성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LS는 동박 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다가, 2017년 간신히 손익분기점(BEP)을 맞추자마자 매각해버렸다”면서 “보수적인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라고 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은 2017년 8월 3000억 원에 사들인 동박 사업부문을 올 초 SKC에 1조 2000억 원에 매각했다. KKR은 2년여 만에 4배의 차익을 남겼는데, 이마저도 SKC가 저렴하게 인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넥실리스는 지난 3분기 매출액 1031억 원, 영업이익 152억 원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매출 5000억 원, 영업이익 9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에 상장된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이익비율(PER)이 최소 30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이 1000억 원만 넘어도 3조 원의 기업가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SK그룹은 동박 사업부문 인수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SK는 지난 3일 발표한 임원 인사에서 인수전을 진두지휘한 추형욱 SK(주) 투자1센터장을 SK E&S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임원이 된 지 3년 만에 사장 자리까지 고속 승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넥실리스 인수 당시 직원들에게 “명실상부한 SK의 일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과감한 투자와 지속 확장으로 글로벌 1위 회사로 자리매김하자”고 직접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SK넥실리스 직원들은 SK 편입 이후 연봉이나 복지, 사내 위상 등 근무 환경이 아주 좋아졌다고 호평한다. 기업정보 업체 잡플래닛을 보면 SK넥실리스 직원들은 회사 평점으로 3.4점을 주고 있는데, 복지 및 급여에 3.8점을 줬다. 기업을 추천한다는 응답이 56%였고,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응답이 78%를 기록했다.
#LG도 하마터면…LS “매각 안했으면 재무 부담 가중”
사업을 정리할 때 정확한 가치를 꿰뚫어 보기란 쉽지 않다. LG 또한 LG화학의 배터리사업을 매각해버릴 뻔한 때가 있었다. LG화학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6년쯤 2차전지 사업의 적자가 지속되자 한 경영진의 지시로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 당시 LG는 LS와 달리 최고위층이 반대해 매각을 실행하진 않았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LG는 전기차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보고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전기차 시대가 오긴 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늦게 온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믿고 쏟아 부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LS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현재 실적이 좋다는 점이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를 막론하고 신재생 에너지, 특히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집중하면서 해저 케이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풍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면 육지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케이블이 활용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초고압 해저 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LS를 포함해 5개사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자산이 20조 원이 넘는 대기업인 LS가 케이블 하나에 만족할 수는 없다. 케이블 사업은 구리 원가 비중이 너무 높고, 이 때문에 구리가격이 올라야만 재고평가이익 등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발생한다.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에서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이에 대해 LS그룹 관계자는 “당시 동박사업을 자동차 부품사업과 함께 패키지딜로 정리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이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이는 미래를 대비한 차원이었으며 그렇지 못했다면 재무적인 부담을 가중됐을 것”이라면서 “현재도 본업의 유관업종 안에서 디지털 분야 등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업체를 대상으로 항상 인수합병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