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드라마에서 주인공 캐리가 “미용관리실에서 음모를 정리하던 중 남김없이 털을 다 뽑혔다”며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음모 제모는 일본여성들 사이에서 은밀하지만 빠르게 퍼져나가 하트형, 글자 넣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정작 남성들은 음모를 제거하는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한다. 여성들의 음모 제모는 미의 과시일까, 단지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일까.
얼마 전만해도 미용관리실에서는 겨드랑이 털의 반영구제모가 유행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들 사이에서 음모를 제거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한 베테랑 미용관리사는 음모 미용에 대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여성이 50% 이상이고 직접 제거하는 여성이 40% 정도, 전혀 손을 쓰지 않는 여성은 10% 미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여름에는 수영복을 입기 때문에 관리실을 찾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제모는 의료기관 혹은 미용관리실에서 받을 수 있다. 광선을 이용한 대표적 제모법은 레이저와 플래시 두 가지. 레이저는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제모효과가 높다. 반면 플래시는 시간은 단축되지만 비교적 효과는 떨어진다. 레이저는 의료기관에서만 시술할 수 있어 요금이 비싸다. 때문에 미용관리실에서 받을 수 있는 플래시가 저렴하고 간편해 인기다.
시술 원리는 레이저나 플래시 빛이 검은색에 반응해 그 열로 모근에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다. 시술할 때는 딱딱한 고무공으로 맞은 듯한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플래시를 경험한 20대 여성은 “미용관리실에서는 종이로 된 팬티를 입고,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해줄 고글을 착용한 뒤 한쪽씩 다리를 올려가며 옆으로 누워 시술 받는다”며 “중요한 부위의 주변은 색소침착으로 거무스름하기 때문에 빛이 반응해 무척 따갑다. 게다가 그곳을 보인다는 수치심으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 제모는 비키니라인을 정리하는 V라인, 항문 주변을 제모하는 O라인, 회음부 주변만 남겨두는 I라인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또한 음모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은 하트나 글자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자나 그림 등 형태를 넣고 싶으면 털이 세밀하게 나있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해도 미용관리실 쪽에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제모는 시술 당시의 고통과 수치심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나는 털이 짧고 뻣뻣하기 때문에 속옷 밖으로 삐죽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고 성관계 시 상대방이 따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음모 제모가 청결을 유지할 수 있고, 성관계 시의 만족도도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제모 문화에 대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이노우에 교수는 “일본인의 가치기준은 미국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기 시작한 것도 할리우드의 영화에서 상류층 여성이 사교계에서 춤추는 모습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문명인이라면 겨드랑이 털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는 여성이 많다. 제모는 어디까지나 미국문화”라고 설명했다.
제모 문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증거로 지중해의 헬레니즘 조각에는 음모가 없으며 음모를 깎는 도구로 보이는 면도칼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제모문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노우에 교수는 “에도시대에 기생들은 가벼운 돌 사이에 음모를 끼운 채 돌을 비벼서 제모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여성들이 제모에 여념이 없는 것은 에도시대의 기생들처럼 성을 무기로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의 이케다 교수는 “생물학적인 견해로 볼 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카락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음모는 섹스의 심벌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벌거벗은 몸에서 털은 눈에 띄기 마련이고, 무엇인가 숨겨져 있는 듯한 이미지가 수컷을 흥분시킨다. 음모는 수컷에게 자신이 성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의미도 있다. 초경이 시작될 쯤 음모가 나기 시작하는 것도 그 이유”라고 말했다.
에로비디오 전문가 쓰바키 작가는 “일본 남성들은 음모가 있는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며 “AV작품을 보면 남성들의 음모에 대한 기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털이 전혀 없이 매끈매끈한 에로비디오 여배우도 간혹 있지만 롤리타 취향의 비디오에만 출연하는 등 활동이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에로비디오 시장에서 일본인 남성이 미국에서 여성을 헌팅한 뒤 성관계를 갖는 인기 시리즈물이 있었다. 그 비디오에 등장하는 서양여성들의 90%는 음모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였고, 그 이야기가 업계에서는 화제가 됐다.
하지만 쓰바키의 말에 따르면 “그런 비디오를 찾는 남성들도 현실에서는 여성의 음모제거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음모가 정리돼 있으면 노는 여자라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