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쌓아가던 ‘개천용’ 주연 배성우 음주운전 파문…‘허쉬’ 황정민 카드에도 낮은 시청률 고전
언론사에 몸담은 현직 기자가 쓴 기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두 편이다. 10월 30일 방송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있는 권상우·배성우 주연의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과 12월 11일 첫 방송한 황정민·임윤아 주연의 JTBC 금토드라마 ‘허쉬’다.
‘날아라 개천용’은 실화가 가진 묵직한 힘을 바탕으로 회를 거듭하면서 주목받았다. 사진=SBS ‘날아라 개천용’ 홈페이지
#‘날아라 개천용’ 열혈기자 배성우 음주운전 ‘위기’
‘날아라 개천용’은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의 재심을 꾸준히 도운 박준영 변호사, 그와 힘을 합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완도 무기수 사건’ 등을 세상에 알린 탐사보도 전문매체 셜록의 박상규 기자의 실제 이야기를 옮겼다. 주류권에서 한 발 벗어난 ‘고졸 출신’ 변호사와 ‘노동자 출신’ 기자가 여러 압박을 딛고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긴 실화가 드라마에 빼곡히 담겼다.
드라마의 원작은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가 공동 집필한 책 ‘지연된 정의’다. 박상규 기자는 연출자인 곽정환 PD의 제안을 받아들여 총 16부작인 드라마의 극본까지 직접 맡았다. 이를 통해 극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것은 물론 자신을 빗댄 캐릭터인 열혈기자 박삼수(배성우 분)도 탄생시켰다.
‘날아라 개천용’은 실화가 가진 묵직한 힘을 바탕으로 회를 거듭하면서 주목받았고, 착실하게 시청률을 끌어올려 6%(닐슨코리아 기준)대까지 진입했다. 무엇보다 기자와 변호사, 전직 형사까지 드라마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란 점에서 감동도 안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작품성도, 시청률도, 안정권에 진입했던 드라마는 지금 ‘좌초’ 위기다.
논란의 발단은 주인공 박삼수 기자 역을 맡은 배성우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배성우는 11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음주운전(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고, 12월 10일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즉각 여론은 들끓었다. 음주운전이 잠재적 살인이라는 공감대가 확산한 상황에서 유명 배우가, 그것도 주연을 맡은 드라마에서 정의를 외치는 기자 역할을 소화하는 도중 일으켰다고 믿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기 때문.
배성우는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를 통해 “변명과 핑계의 여지가 없는 잘못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모든 질책을 받아들이고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개인의 범죄로 치부하기엔 한창 방송 중인 드라마에 미친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배성우는 “함께 일하는 많은 분께 사과드리며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정의로운 기자 역할을 맡고 있던 상황에 대한 시청자의 분노도 빗발쳤다. 시청자 게시판에 드라마 하차 요구가 쏟아졌고, ‘드라마 보이콧까지 불사하겠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만약 정의를 외치는 기자 역할이 아니었다면 시청자가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가 이 정도까지 높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불똥은 고스란히 드라마와 제작진, 그리고 동료 배우들에게 튀고 있다. 배성우의 음주운전 입건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12일 ‘날아라 개천용’은 방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시청률인 5%를 기록했다. 제작진은 18일과 19일을 시작으로 3주 동안의 결방을 결정하고, 배성우의 기존 촬영 분량을 최대한 편집하는 동시에 남은 방송에 대한 극본 수정을 숨 가쁘게 벌이고 있다.
주인공 배성우의 공석은 험난한 숙제로 남았다.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제작진은 난항을 거듭한 끝에 결국 배성우의 소속사 동료이자, ‘날아라 개천용’을 연출하는 곽정환 PD가 연출했던 드라마 ‘보좌관’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정재와 ‘구원투수’ 등판을 논의하고 있다. “현실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드라마에서는 뭐든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현실에서 느끼는 울분과 불만을 통쾌하게 풀어주고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곽정환 PD의 포부는 주연 배우의 어처구니없는 범죄로 빛이 바랬다.
‘허쉬’는 이른바 ‘고인물’로 불리는 선임기자(황정민 분·사진)과 의욕 넘치는 인턴기자(임윤아 분)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공감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사진=JTBC ‘허쉬’ 홈페이지
#“기레기” 외치는 드라마 ‘허쉬’, 반응은…
기자를 주인공 삼은 또 다른 드라마 ‘허쉬’는 주인공 황정민을 ‘전설의 기레기’라고 지칭한다. 기자들을 비하하는 은어를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현실적인 기자 이야기를 펼치겠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드라마의 원작은 소설 ‘침묵주의보’다. 원작을 쓴 정진영 작가는 얼마 전까지 한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날아라 개천용’처럼 드라마 극본까지 직접 쓰지 않았지만, 원작을 따르는 ‘허쉬’의 주요 캐릭터와 줄거리, 메시지가 그의 손을 통해 설계됐다.
‘허쉬’는 이른바 ‘고인물’로 불리는 선임 기자(황정민 분)과 의욕 넘치는 인턴기자(임윤아 분)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공감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연출을 맡은 최규식 PD는 “기자 드라마라고 해서 전문적인 사건이나 무거운 소재보다, 기자가 직업인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밥벌이 라이프를 다루려 한다”며 “기자의 세계에 국한된 사건 중심의 설정이 아닌 인간적인 기자,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동료애와 가족의 정, 모든 갈등과 고민을 따뜻하게 풀어간다”고 밝혔다.
‘날아라 개천용’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실제 사법 피해자들의 사건을 중심에 두는 방식과 달리 ‘허쉬’는 기자라는 직업보다 ‘월급쟁이’ 이야기에 집중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에 시청자는 얼마나 공감할까.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1, 2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 그쳤다. ‘허쉬’는 첫 회 시청률 3.4%로 출발, 2회에서는 2.6%로 하락했다. 하지만 주인공 황정민은 이제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1300만 관객 흥행작인 ‘베테랑’을 비롯해 ‘검사외전’ ‘공작’ 등 영화에 주로 참여한 그가 8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이유 역시 “현실과 와 닿은, 공감하고 웃고 울고 즐기는 이야기”라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정민은 “기자라는 직업에 국한되지 않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습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