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등 조건 아닌 빅데이터 분석 통해 짝 찾아줘…일본 정부, 지자체 AI 중매 운영 경비 보조 방침
일본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결혼장려 사업을 지원한다. 쉽게 말해 ‘AI 중매’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21년 예산안에 20억 엔(약 210억 원)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중매는 희망조건이 맞지 않아도 성향이 잘 맞을 것 같은 맞선 상대를 AI가 찾아주는 시스템. 과연 통상의 커플 매칭과 무엇이 다른지, 나라 차원에서 후원하고 나선 AI 중매의 진가를 살핀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는 2019년 성혼한 21쌍이 AI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진=사이타마현 결혼지원센터 유튜브 캡처
2019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36으로 매우 저조한 수준이었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참고로 한국은 일본보다도 낮은 0.92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수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07은 돼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타개책의 하나로 “AI 중매 사업을 예산으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요컨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고 있는 결혼장려 사업에 AI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용을 보조해주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들이 결혼을 희망하는 남녀를 주선해주는, 이른바 ‘중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처럼 지원자들이 원하는 연령과 학력, 수입 등 희망조건에 맞춰 상대를 소개해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다만 조건을 따지다보니 추천받을 수 있는 사람 수 자체가 적었고, 그만큼 매칭될 확률도 낮았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가 AI 시스템을 도입한 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내각부 저출산 대책 담당자는 “AI 중매 서비스가 기존 서비스보다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가령 사이타마현에서는 2019년 성혼한 21쌍이 AI로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에히메현도 AI 빅데이터를 활용한 뒤 맞선 성립 비율이 13%에서 29%로 올랐다.
그렇다면 AI 중매는 어떤 시스템일까. 우선 ‘연봉’이나 ‘연령’ 등 조건에 근거한 커플 매칭은 하지 않는다. 대신 가치관진단 테스트 결과나, 시스템 내부에 축적된 빅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지원자에게 맞는 상대를 선별해준다. 희망조건에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호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해 제시해주는 것이다.
AI 중매는 ‘연봉’이나 ‘연령’ 등 조건에 근거한 커플 매칭 대신 가치관 테스트 결과나 빅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지원자에게 맞는 상대를 선별해주는 시스템이다. 사진=사이타마현 결혼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일본 온라인미디어 아에라닷(AERAdot)은 이런 사연을 소개했다. 에히메현의 결혼지원센터를 방문한 여성 X 씨(35)는 사이트에서 ‘30대 초반, 연수입 6400만 원’ 등의 조건을 입력해 남성 Z 씨를 발견했다. 마음에 들어 맞선 신청을 했지만, Z 씨로부터는 거절당하고 말았다. ‘벌써 몇 번째 거절이던가’ 깊은 상처를 받은 X 씨. 하지만 여기서 AI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우선 X 씨와 취향이 비슷한 여성을 찾아 그룹화하고, 그들의 방대한 행동이력을 분석해 과거 맞선을 신청했던 남성들을 픽업한다. 이것이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취향에 가까운 남성들’로 추천되는 것. 또 ‘나에게 호의를 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함께 제시해준다. 즉, 조건 검색에서는 누락됐으나 잠재적으로 어울릴 만한 상대를 찾아주는 셈이다. 마치 친구가 “이 사람 괜찮지 않냐?”며 오지랖을 발동하듯 AI가 참견한다.
에히메현의 결혼지원센터 이와마루 히로타케 사무국장은 “AI의 이러한 ‘참견’이 뜻밖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행동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맞선이 이뤄지지 않는 남녀 대부분은 어떤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계속 같은 조건을 고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만을 원하는 40대 남성’ ‘상대 희망연봉을 조금도 낮추지 못하는 여성’ 같은 경우다. 더욱이 35세가 지나면 조건이 굳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희망조건이 엄격해지면 매칭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맞선을 보지 못하고 결국엔 ‘구혼활동 피로감’이 쌓여 포기해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AI 중매는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2015년 3월 에히메현은 AI 중매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의외로 조건이 맞지 않은 상대를 만나도 커플로 성사되곤 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AI가 골라준 상대라 마음 편히 신청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와마루 사무국장은 “맞선 거절이나 실패로 상처받기 싫어하는 여성의 부담감을 AI가 덜어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AI를 도입하기 전에는 여성의 맞선 신청 건수가 남성의 20% 정도에 머물렀지만, 도입 후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대 이상의 효과였다.
에히메현의 결혼지원센터 관계자는 “AI를 활용한 중매가 뜻밖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고 전했다. 사진=에히메현 결혼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성혼자 수도 2015년까지 455쌍이었던 것이 현재 1300쌍에 달한다. 도입한 지 5년 만에 845쌍 이상이 성혼에 이른 셈이다. 이와마루 사무국장은 “성혼자 수를 보면 AI 중매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며 “새로운 만남의 형태로서 받아들여 달라”고 당부했다.
흔히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성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스마트폰 만남앱에 의한 성혼율은 3%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민간 결혼정보회사에서도 AI를 도입하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지자체들은 중매서비스 가격을 대폭 낮춰 1만~2만 엔(약 10만~20만 원)에 제공하고 있다.
내각부 관계자는 “가입비도 저렴하고 지자체 사업이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며 “이 서비스가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더 많은 사람이 결혼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차체가 AI 중매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경비 3분의 2를 보조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AI 중매 사업에 대해 “본질을 무시한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들린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정부가 출산율이 감소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보지 않고 있다”며 “저출산을 막기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진짜’ 그녀와 산책하는 기분 일본 기후대학 연구팀이 선보인 로봇 ‘산책하는 그녀’. 사진=유튜브 캡처 일본 기후대학 공학부 연구팀이 여자친구와 손잡고 걸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로봇 ‘산책하는 그녀’를 선보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친구가 없어도 손을 잡고 걷는 체험이 가능한 로봇이다. “VR(가상현실) 콘텐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으면 외로움 완화 등 심리적 효과가 있다. 연구팀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보다 쉽게 실현할 수 있도록 로봇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로봇의 손은 매우 부드러운 우레탄수지로 만들었으며, 진짜 여성의 손과 똑같은 촉감을 재현했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 내압 센서까지 탑재해 실제로 그녀가 손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밖에도 사용자가 걷는 것이 빠르거나 늦어지면 로봇의 손이 속도에 따라 반응한다. 가령 사용자가 빨리 걸으면 뒤에서 팔을 잡아당기는 식이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