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접고 주식 올인 폭망 이후 1000종목 소액씩 투자하며 우대품 받아 생활 영위
전직 프로장기기사 기리타니 히로토(71)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인사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주주우대’ 쿠폰만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우대란 주식회사가 주주들에게 배당금 외에도 상품이나 서비스 혜택을 지급하는 ‘주주 친화정책’을 말한다. 일본의 경우 소액주주를 위한 우대제도가 활성화돼 있는데, 자잘한 먹을거리부터 의류, 숙박권, 콘서트 티켓 등 종류가 다양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 상장사의 40%가 주주우대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카도가와북 유튜브 채널의 기리타니 씨 주주우대 생활 소개. 기리타니 씨는 모든 외식과 식품을 주주우대 쿠폰으로 해결한다.
기리타니 씨가 처음부터 주식에 능숙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주식 천재’로 착각해 거액을 탕진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는 프로기사로 활약하던 1984년 주식에 입문했다. 문외한이었지만, 적당한 종목을 골라 20만 엔(약 200만 원)을 투자했다. 불과 1개월 사이 5만 엔의 이익이 났다. ‘내가 촉이 좋나보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들떴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시대로, 증시가 과열 양상을 보이던 때였다. 기리타니 씨는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증권사에서 신용거래도 당겨 추가 베팅을 했다. 흔히 말하는 ‘빚투(빚내서 주식투자)’였다. 투자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한때 이익이 1억 엔(약 10억 원)에 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닛케이지수는 1989년 12월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폭락세를 이어갔다. 증시가 추락할 때마다 손실은 커져만 갔다. 급변하는 시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본업에도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해 기리타니 씨의 기록은 10전 10패.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청산하기에 이른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가 주식을 팔자, 며칠 뒤 증시가 사상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것이다. ‘주식 천재’는커녕 ‘마이너스의 손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제 주식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했다.
그러나 주가가 움직이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승부사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7단까지 승단했던 기리타니 씨는 결국 2007년 프로기사를 은퇴하고, 주식투자로 생활할 결심을 한다. 그는 “‘3억 엔의 자금을 30억 엔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면서 “신용거래를 포함해 모든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기리타니 씨는 니혼TV 프로그램 ‘월요일부터 밤새기’에 나오며 유명해졌다.
악운이 잇따랐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 등으로 증시가 대폭락했던 것. 몇몇 보유주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됐다. 3억 엔의 자금은 어느새 5000만 엔까지 줄어들었다. 여기에 과도한 신용거래 때문에 갚아야 할 빚마저 불어났다. 손실액이 커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걱정에 잠들지 못하고, 끼니도 넘어가질 않았다.
그나마 손실이 나지 않은 우량주는 모두 팔아 신용거래를 갚는 데 충당했다. 결과적으로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주식만 남은 셈. 다만, 그중에는 주주우대가 되는 것들이 꽤 있었다. 수중에 현금이 전혀 없던 기리타니 씨는 여기로 눈을 돌렸다. 월세는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로 벌어 내고, 나머지는 ‘주주우대품으로 조달하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쌀을 주는 우대주를 사두어서 다행이었다. 주식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혜택으로 그나마 연명이 가능했다. 밥은 우대품 쌀로 때우고, 반찬은 주로 두부였다. 대두 가공업체 주식을 사둔 덕분에 연간 20만 원어치의 두부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근처에 두부를 교환할 수 있는 가게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도쿄 전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이렇게 우대품만으로 생활하던 중 2013년 니혼TV 프로그램 ‘월요일부터 밤새기’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프로장기기사 출신 개인투자자’라는 이색 경력과 유머 넘치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우대품을 받기 위해 자전거로 폭주하는 기리타니 씨’로 일약 유명해졌다.
기리타니 씨는 유명해지면서 주주우대 관련 서적도 출간했다. ‘기리타니 씨가 추천하는 주주우대’ 책 표지.
기리타니 씨는 “신용거래나 단타매매처럼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법은 사냥과 같다”고 비유한다. “한방에 맹수를 포획하면 좋겠지만, 실패하면 자신처럼 이리저리 물리다가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한편, 우대주 투자법은 농사와 닮았다. 씨를 뿌리면 1년에 1회, 혹은 2회 우대품이라는 수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투자법으로 전환한 후로는 어떠한 폭락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게 됐고, ‘편안’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주주우대에 신경 쓰는 기업들은 주식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가격변동이 적은 건실한 주식을 최소 단위로 사서, 주주우대만큼은 확실히 챙기자”는 것이 기리타니 씨의 투자법이다. 배당금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달라지는 반면, 주주우대는 일정 주 이상만 보유하면 혜택이 동일한 경우가 많다. 소액 주주에게 훨씬 유리한 혜택인 셈이다.
기리타니 씨에 의하면 “주주우대 쿠폰만으로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1년에 30회 이상 무료로 영화관에 갈 수 있으며, 피트니스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가령, 그는 도큐부동산홀딩스의 우대 쿠폰을 사용해 실내 수영장을 이용 중이다. 또 쿠폰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식료품을 얻거나 외식도 가능하다. 현금을 사용하는 곳은 집세와 광열비, 그리고 통신비 정도. 이러한 지불도 주식 배당금으로 충당하곤 한다.
기리타니 씨는 “현금을 쓰지 않아 점점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고로 “기리타니 씨는 현재 5개 사의 인터넷증권과 거래하고 있으며 보유 종목 수 합계는 1000종목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