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15년 정치인들과 친분 쌓아, 몇몇 시장과는 성관계도…첩보 활동 중 FBI가 수사망 좁혀오자 급히 중국행
‘악시오스’는 팡이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MSS) 소속이었다고 보도하면서 과거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활동하다가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급히 중국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현직에 있는 미국의 한 고위 정보당국 관계자는 “사실 팡은 수많은 중국 첩보요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아마 미 정계에 침투해 정보를 캐내고 있는 중국인들은 지금도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여성 크리스틴 팡이 과거 미 정계에 잠입해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 워싱턴 정가가 시끄럽다. 사진=페이스북
‘악시오스’가 22명의 현직 및 전직 공무원, 정계 관계자, 그리고 팡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난 1년여 동안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팡은 MSS의 지시로 은밀하게 미 정치인들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빼냈던 스파이였다. 팡이 미국에서 활동한 시기는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이스트베이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으며, 교내 중국학생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조직했던 단체인 ‘아시아 태평양 섬주민 미국공보국(APAPA)’의 회장직도 겸했다.
사실 이 조직은 팡이 지역 정치인들과 인맥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일종의 플랫폼이었다. 다시 말해 캘리포니아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를 위해 팡은 수년에 걸쳐 지역 내 많은 정치계 인사들과 재계 임원들, 그리고 중국 영사관 관계자들을 종종 행사에 초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점점 인맥을 넓혀 나갔다.
이와 관련, APAPA의 베이 지역을 담당했던 헨리 인은 ‘악시오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러 차례 행사에서 팡을 봤었는데 매우 활동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는가 하면, 프레몬트 시의회 의원인 라지 살완은 “그는 어디에나 있었다”고 말하면서 “활발한 학생이었다. 그가 얼마나 적극적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정치인들을 알고 있는지 매번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스트베이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입학한 팡은 교내 중국학생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조직한 ‘아시아 태평양 섬주민 미국공보국(APAPA)’의 회장직도 겸했다. 사진=페이스북
정치권의 몇몇 인사들의 경우 팡을 ‘매력적이고’ ‘인기 있는’ 스타일이라고 기억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가리켜 ‘어딘가 비밀스러웠다’ 내지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고 기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인물로서 팡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팡은 정치에 뛰어난 여성이었고, 정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라고 기억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알기로는 정치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걸로 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적으로 팡을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저 “부잣집 딸 같았다”고 말하면서 그가 흰색 벤츠를 몰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가족이나 고향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
팡의 첩보 대상은 주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인사들이었다. 앞으로 캘리포니아주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서 성공을 거둘 만한 잠재력을 가진 유망한 지역 정치인들이 타깃이었다. 이에 대해 ‘악시오스’는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아주 치밀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오늘의 시장과 시의원들이 내일의 주지사와 의회 의원, 즉 워싱턴 중앙 무대에서 핵심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팡이 접근했던 인사 가운데 한 명은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이었다. 둘이 처음 알게 된 것은 스왈웰이 캘리포니아주 더블린 시의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2012년 32세였던 스왈웰은 당시 최연소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14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지역 정계에서 입지를 다져 나가고 있었다. 재선 운동 당시 팡은 스왈웰의 캠프에서 활동하면서 선거자금 모금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워싱턴 DC에 있는 스왈웰의 사무실에서 근무할 인턴사원을 직접 추천하는 등 선거 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
하지만 팡의 이런 활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될 처지에 놓였다. FBI가 팡의 정체를 미심쩍게 여기고 수사망을 좁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FBI가 처음부터 팡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 영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가장해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MSS 소속 장교를 조사하던 중 뜻하지 않게 팡의 정체가 레이더망에 걸려들었을 뿐이다.
당시 용의자는 주정부 관계자 및 지역 내 정치인들을 중국에 초청하는 식의 호의를 베풀고 있었으며, 영사관을 기반으로 첩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팡과 용의자가 따로 만나거나 혹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되자 FBI는 팡의 배경과 활동을 조사하게 됐고, 결국 그의 정체를 의심하게 됐다.
당시 팡이 접근했던 인사 가운데 한 명은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이었다. 사진=페이스북
실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팡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과 이례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보통 중국 학생회장의 경우 중국 영사관과 자주 소통하는 게 일반적이긴 했지만 팡의 경우에는 유난히 더 친밀했다. FBI는 여러 차례에 걸친 브리핑을 통해 백악관과 의희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스왈웰 의원 측에는 당장 접촉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챘던 걸까. 팡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2015년 6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팡은 갑자기 불참을 통보했고, 얼마 후 급히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빌 해리슨 전 프레몬트 시장은 ‘악시오스’에 “그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자 우리 모두는 어안이 벙벙했었다”고 말했다. 정치 행사에서 팡을 자주 봤다고 말한 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시장인 길버트 웡 역시 “그는 모든 곳에서 사라졌다”고 기억했다.
그런가 하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스왈웰 측은 “팡은 8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최근 6년 동안은 만난 적이 없다. 당시 의원은 FBI에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FBI 측은 “당시 민감한 기밀 정보가 팡에게 넘어가지는 않았다”고 전하면서 “팡이 어떠한 기밀 자료도 전달받거나, 혹은 전달하지 않았던 걸로 안다”고 확신했다.
팡이 접근했던 또 다른 인물로는 하와이주 하원의원이었던 털시 개버드도 있었다. 팡은 개버드를 위한 선거기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개버드 측 대변인은 “의원님은 팡을 만났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하신다. 기금 모금 행사에서 팡이란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도 팡은 인도계 출신인 로 카나 의원과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의 선거기금 모금 행사를 돕기도 했다.
팡은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 의원(왼쪽)과 인도계 출신인 로 카나 의원 등의 선거기금 모금 행사를 돕기도 했다. 사진=페이스북
팡은 정치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다른 도시로도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갔다. 그런 가운데 중서부 도시의 시장 두 명과는 3년 넘게 만나면서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작은 도시의 시장과는 연인 사이임을 종종 대외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2014년 팡과 함께 한 정치 행사에 참석했던 나이든 익명의 이 시장은 당시 참석자들에게 팡을 ‘내 애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연인 사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오하이오 시장과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맺는 모습이 당시 팡을 감시하고 있던 FBI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악시오스’는 “왜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느냐”는 오하이오 시장의 물음에 팡이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FBI는 팡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중국 정보요원을 수사하는 데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2019년 5월에는 중국의 첩보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팀을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2020년 7월 연설에서 “중국 정부는 매우 정교하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대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활동에는 “우리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공공 담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 프로세스와 가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파괴적이면서, 공인되지 않은, 그리고 범죄적이면서 강압적인 시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 FBI는 중국의 첩보 활동이 더욱 공격적이고 대담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팡의 사례는 중국 정보당국 소속의 요원들이 민감한 기밀을 다루는 정치권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말했다
왜 캘리포니아일까? 열정적 정치인과 실리콘밸리 인재 가득 팡을 비롯한 중국의 많은 첩보요원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무대는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인즉슨 캘리포니아야말로 열정을 가진 야심찬 젊은 지역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캘리포니아는 신진 정치인들을 표적으로 삼는 외국의 정보 요원들에게는 이상적인 곳이다. 현재 이 지역 출신의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민주당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있다. 이에 중국의 국가안전부(MSS)는 캘리포니아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으며, 심지어 러시아 정보부도 오래 전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을 목표로 첩보 활동을 벌여왔다. 캘리포니아가 중요한 이유는 실리콘밸리가 위치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기술 산업이 가장 발달한 핵심 지역인 이곳이야말로 중국 첩보요원들이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또한 캘리포니아주의 경제 규모가 전체 미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첩보요원들이 이곳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의원들은 국가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중앙정치 무대의 핵심 권력에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지역의 정치 서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캘리포니아주가 미국내 중국계 이민사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는 점도 중국 스파이들이 활동하기 용이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
중국의 ‘올드 프렌드’ 정체는? 디둥성 교수, 미·중 정계 실세들의 ‘40년 네트워크’ 존재 주장 베이징 인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이자 부학장인 디둥성의 18분짜리 강연 동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동영상의 핵심 내용은 중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정계의 고위층 인사들과 맺어온 특별한 네트워크 덕분에 줄곧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올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처음 웨이보에 올라왔던 이 동영상은 현재는 삭제된 상태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 동영상을 올리면서 뒤늦게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동영상 속에서 디둥성 교수는 중국이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의 최고위층으로 이뤄진 ‘올드 프렌드(오랜 친구들)’라는 특별 비밀 네트워크를 통해 수십 년 동안 미국 정책에 영향을 끼쳐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디둥성 교수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트럼프가 벌였던 대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지난 수십 년 동안 키워왔던 미-중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트럼프는 우리와 무역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1992년과 2016년 사이에는 왜 미국과 갈등이 없었을까?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제 폭탄선언을 하겠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의 핵심 권력층 내부에 ‘우리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단순명료하게 말해서 지난 30~40년 동안 우리는 미국의 실세들인 핵심 인물들을 이용해왔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이용했던 건 정치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디둥성 교수는 “월스트리트는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국내외 문제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크게 의존해왔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면서 “월가는 트럼프를 통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월가와 트럼프는 서로 적대 관계였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디둥성 교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바이든이 대통령직에 오를 경우 다시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이든이 선거에서 이기면서 전통적인 엘리트들, 정치 엘리트들, 기득권층들이 월가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점쳤다. 또한 디둥성 교수는 “나는 이 특정한 시기(바이든이 선거에서 이긴 시기)에 우리가 바이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전략적이고 전술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주장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