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밖에 몰랐던 엘리트의 ‘추락’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8월 13일 메스암페타민(일명 히로뽕) 10g을 두 봉지로 나눠 몰래 들여온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최 아무개 씨(36)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나이지리아인에게 약 5g씩 포장된 필로폰 뭉치 2개를 200만 원에 구입해 주머니에 숨겨 같은 날 밤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 씨의 죄질과 실형 여부를 떠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전남, 대전 등 프로에서 뛰었고, 올림픽대표-국가대표 등 한국 축구 선수로서 밟을 수 있는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친 스타 출신이 저토록 추락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83년 슈퍼리그 출범 후 올 시즌까지 27년 간 K리그에 몸담아 한 경기 이상 뛴 등록 선수는 2222명이다. 그 중 용병은 457명이고, 80%에 달하는 나머지 1765명은 국내 선수들인데, 이들의 선수 수명은 평균 4년 안팎으로 알려진다.
결국 대학 졸업을 기준으로 할 때 약 28세 선에서 은퇴를 하는 셈. 출장할 때마다 기록을 경신해 나가는 경남FC 골키퍼 김병지나 포항 스틸러스 김기동처럼 오랜 시간 현역 선수로 활약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일본 J리그도 은퇴 시기가 26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일단 자의든 타의든 프로 무대를 떠난 선수들은 현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경우, 내셔널리그 혹은 K3 리그로 떠난다. 하지만 적은 보수로 인해 생활고가 뒤따른다. 연봉이라고 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
지방의 K3 한 구단은 한 해 예산으로 5억 원가량 사용한다. 이 팀에는 K리그 연습생 기준 최소 연봉(1200만 원) 이상 받는 선수조차 없다. 월급은 전혀 없고, 수당조로 많게는 약 60만 원 정도 지급된다. 물론 이조차 직접 뛰고 승리를 했을 때 가능한 얘기. 이 중 출전 수당은 A, B급으로 나눠 20만~30만 원씩 주어진 것을 포함한 금액이다.
당연히 대부분 선수들은 다른 직업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틈틈이 축구에 참여하는 ‘투잡’ 생활이 이어지는데, 사회 경험 부족으로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비슷하겠지만 사실 축구계가 은퇴 후의 선수 진로까지 보장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는 선진 시스템이 정착됐다는 유럽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럽은 우리와 크게 환경이 다르다. 어지간한 리그들은 유소년 시절부터 적극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 ‘대어’급으로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선수들이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때 프랑스 축구를 대표했던 레전드 에릭 칸토나는 포도 농장주로 성공적인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축구 클럽(한국에서는 ‘축구 교실’)을 운영하면서 풍요로운 두 번째 인생을 영위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추진한 주말리그제 도입으로 환경이 다소 나아졌다고 해도 대다수 현장 지도자들과 학부모들에 따르면 여전히 공부보단 축구에 ‘올인’하는 성향이 짙다고 했다.
서울의 한 명문 고교 축구팀의 학부형 이 아무개 씨는 “영어만이라도 제대로 공부하게 만들고 싶은데, 수업에 들어가면 일반 학생들은 ‘쟤 왜 왔냐?’ 식으로 눈치 주고, 동료들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며 타박한단다. 도대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방 유명 고교의 모 감독 역시 “대부분 다른 팀들이 훈련에 매진하는데, 우리만 빠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현재 은퇴 선수들은 대부분 지도자의 길을 모색하거나 행정가로 변신하는데, 이것도 아주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니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게 현실이다. 척박한 심판 환경은 더더욱 그렇다. 구속된 최 씨도 사건 당시, 무직 상태였다.
축구인들은 “은퇴 후 선수 삶을 보장할 수 없어도 개선할 수는 있다고 본다. 정부가 퇴직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주듯, 선수들에게도 은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