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발 앞선 ‘문화 포석’
‘조선통신사’가 오는 10월 초에 바둑으로 재현된다. 일본을 통일한 에도(江戶) 막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조선에 임진왜란을 사죄하면서 국교 재개와 사절단 파견을 요청했고, 조선은 국교 재개를 수락해 선조 40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 동안에 12차례, 매번 300~50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문화 외교사절단,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전했다.
조선통신사는 한양(서울)에서 에도(도쿄)까지 육로와 뱃길을 합해 왕복 1만 1000리를 오가는 10개월간의 대장정을 소화하면서 조선과 일본뿐 아니라 청나라까지를 포함하는 동아시아권의 평화공존과 문화교류에 기여했다.
마지막 통신사(1811년)로부터 다시 200년 후, 일본은 조선통신사 기념 문화축제의 장을 만들면서 한국의 바둑을 초청했다. 행사를 기획한 사람은 예전에 도쿄 여성재단의 부관장 겸 사무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내진(耐震)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기타니 마사미치(木谷正道) 씨(61). ‘기타니’라는 성이 너무 낯익다. 기타니 마사미치 씨는 일본 현대바둑의 기틀을 다진 세계바둑사의 거목, 한국 현대바둑의 동량들을 키워낸 고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9단, 바로 그의 아들이다. 기타니 이사장은 “한·일 양국의 공통 문화의 하나인 바둑을 중심으로 조선통신사의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아가 아시아의 국제친선에 기여한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취지”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에서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이민진 5단이 참여해 히로시마에서부터 시가(滋賀)현의 히코네(彦根), 도쿄의 신주쿠, 가나가와(神奈)현의 히라츠카(平塚)까지, 옛 조신통신사의 장정 경로를 따라가면서 일본 정상급 기사들과 대국하고 아마추어 팬들에게 지도기를 펼친다.
유 9단과 이 5단은 10월 2~3일 히로시마 이벤트에서 각각 야마타 기미오(山田規三生) 9단, 만나미 가나(万波佳奈) 4단과 기념대국을 하고, 유 9단은 5~6일에는 히코네로 이동해 야마시로 히로시(山城 宏) 9단과의 대국과 아마추어 지도기 일정을 소화한다. 조 9단은 8일 도쿄에서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과 반상에서 재회, 추억을 나누며, 9일에는 히라츠카에서 일본 프로기사들과 함께 지도다면기에 참가한다. 히라츠카는 기타니 9단의 자택이 있던 동네. 돌아가신 조남철 선생이 어린 시절 기보보국의 꿈을 안고 바둑 수업을 하던 곳이다. 조 선생은 거기서 바둑을 배우기 전에 마당 청소하는 것부터 배웠다.
바둑은 행사의 일부일 것이고, 우리 프로기사 세 사람이 건너가 바둑 몇 판 두는 것이니 참여의 규모가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역할과 의미는 클 것으로 여겨진다. 세 사람이 어떤 느낌을 갖고 돌아올지 궁금하다.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행사는 한·일 양국에 많다. 부산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는 올해 9년째이며 쓰시마(對馬島)에서도 매년 축제를 마련하고 있다. 쓰시마 행사는 ‘아리랑 축제’라고, ‘아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느낌이 새롭다.
한·일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문화 행사에 바둑이 들어간 것은 어쨌거나 반갑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조선통신사 축제에 바둑인이 겨우 3명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처음 들어가게 된 것이 일본 행사라는 것도 조금은 그렇다. 우리 부산 축제를 기획하는 쪽에서는 바둑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누가 옆에서 조언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니 뭐라고 푸념할 계제는 못 된다. 다만 우리 바둑계 스스로 좀 부끄럽다는 것밖에.
우리가 일본에 바둑을 전한 것은 조선통신사 시절이 아니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백제 때다. 논의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부산 축제, 쓰시마 축제는 물론 백제 문화제 같은 행사에 바둑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나서고 명지대 바둑학과, 대불대 바둑전공 코스, 한국바둑학회 등이 뜻을 모으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백제와 일본, 부여에서부터 ‘쇼소인(正倉院)’을 잇는 뱃길 답사에 바둑이 동승하는 것이다. 조선통신사 1만여 리 장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번 일본 행사 소식을 듣고 누리꾼들이 올린 댓글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일본은 그래도 바둑을 문화로 대접하려고 하고, 바둑을 통해 문화를 조명하려고 하는데, 우리나 중국은 승부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승부는 이길 때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 우리가 이기면 바둑을 계속 장려하고, 지면 홀대하고 그럴 것인가. 언필칭 바둑의 역사 수천 년이라고 하는데, 그 수천 년이 승부의 역사인가.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바둑에서는 왜 승부 쪽만 보려는 것인지.
수천 년을 살아남은 것이 흔치 않은데, 바둑은 살아남은 것의 하나이니 바둑의 역사는 고대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 있다. 한·중·일이 바둑의 문화적 가치에 눈을 돌려 힘을 합하면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도 보다 확실한 단초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