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투성이 연금술사 ‘권력’도 녹였나
▲ 새로 제작된 4대 국새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현대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2008년 중앙청사에서 열린 국새 헌정식에 참석한 민홍규 단장. 연합뉴스 |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은 제4대 국새 제작단장이었던 민홍규 씨다. 국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금의 행방에서 시작된 논란은 현재 민 씨의 금 유용 의혹과 함께 참여정부 시절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금도장 로비설, 민 씨의 전통 국새 제작방식 전수 경력 사칭 의혹 등으로 번지며 엄청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국새 제작·관리 책임을 맡은 행정안전부가 자체감사를 넘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이번 사태는 수사결과에 따라 정관계를 뒤흔들 대형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횡령과 사기, 로비와 경력사칭 의혹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국새 파문의 미스터리를 짚어봤다.
2007년 6월 제3대 국새에 금이 가자 정부는 전통방식으로 새로운 국새 제작에 들어갔다. 4대 국새를 만드는 작업을 맡은 사람은 600년 전통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민홍규 씨였다.
이번 사태는 국새 제작 후 남은 금의 행방이 묘연한 것에서 시작됐다. 국새 제작단원과 행안부 등에 따르면 2007년 국새 제작 당시 구입한 순금은 3000g으로 실제 사용한 금은 인뉴(손잡이)와 인면(하부)를 합해 약 2053g이다. 문제는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으로 이는 이른바 ‘금도장 로비설’로 확대되며 정·관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최초 의혹 폭로자인 이창수 씨는 민 씨가 남은 순금 200여 돈(시가 4000만원 상당)을 빼돌렸으며, 이 금 일부로 도장을 만들어 정치권 인사와 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 공무원 등 참여정부 당시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건넸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홍규 국새 제작단장의 지시에 따라 국새 제작용 순금으로 13개의 로비용 금도장과 일반인용 금도장 3개 등 총 16개의 금도장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씨에 따르면 당시 이 도장의 가치는 200여만원 정도였지만 민 씨의 이름값으로 인해 1500만~25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에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 씨는 남은 금을 사적으로 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세를 제작하기 전 여러 차례 실험을 하면서 금이 많이 들어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금 2㎏을 더 넣어 옥새를 만들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국새 제작 후 남은 소량의 금에 대해서는 “국새를 성공적으로 만들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올리는 제례의식인 ‘시금제’에 따라 불에 태워 없앴다”고 주장하며 일체의 횡령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민 씨에게 금도장을 받았다는 인사들이 나타나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 실명이 공개된 이들 외에도 국새 제작 업무에 관여했던 고위 공직자들도 금도장을 받았다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 추가로 명단이 공개될 경우 정·관계를 강타하는 ‘국새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경남 산청에 짓고 있는 60억 원짜리 국새 문화원에 대한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 씨는 산청에서 국새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민 씨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국새 문화원을 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행안부 측이 ‘도장 로비’의 대가로 민 씨의 국새 문화원 건립 사업에 특별교부금 5억 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두 번째 의혹은 국새 제작과정이다. 4대 국새에 대한 정부의 자부심은 전통적 방식의 국새 제작 원천기술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민 씨가 주장하는 전통방식의 제조기법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음과 양의 기운을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금 은 동 아연 주석 등 5개의 금속을 사용한 이른바 오합금의 금합금을 만든다는 것 ▲오행설에 따라 백토 등 전국 팔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5가지의 흙을 섞은 오합토를 이용해 거푸집을 만든다는 것 ▲일명 대왕가마라는 5개의 재래식 가마를 사용해 여러 번 구워내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었다. 민 씨는 ‘보인소의궤’ ‘영·의왕 책봉의례’ 등 관련 고증과 ‘영새부’에 수록된 옥새 제작 비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강조했고, 이는 공영방송에서 ‘600년의 비전 국새’라는 타이틀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등 언론도 검증 없이 그의 주장을 싣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국새가 전통가마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오합금을 쓰는 전통방식도 따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씨는 “경기도 이천의 현대 가마에서 작업했다.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것도, 재래식 가마에서 국새를 구웠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폭로했다. 국새 제작발표회 당시 거푸집이 한 번에 깨지지 않은 것은 ‘굽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이 씨는 주장하고 있다.
민 씨는 “분명 전통식 대왕가마에서 구웠으며 국새를 만들 때 주석 성분이 함유된 천은석을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원자력연구소도 국새 성분을 분석한 결과 4대 국새가 주석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4개 금속의 합금이었던 것으로 밝혀내 전통방식에 따라 제작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 행안부가 2008년 12월 펴낸 국새 제조과정 소개 책자 <국새>에는 “전통적 방식에 의해 제작됐다”고 명시했지만 지난해 발간한 백서에는 “현대식 가마에 넣고 밀랍을 녹임”이라며 반대로 기술돼 있다.
셋째 민 씨가 전통 국새 제작방식의 전수 경력을 사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민 씨의 도덕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초대 국새 제작자인 석불 정기호 선생의 제자라는 이력이 거짓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민 씨는 지난 2005년 발간한 책 <옥새> 등을 통해 “중2 때인 1968년 할아버지의 친구로만 알았던 석불한테서 ‘한번 해볼래’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스승이 타계하기 직전까지 17년 동안 사사받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 선생의 아들 정민조 씨는 민 씨의 옥새 전각장 계보에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는 “민 씨가 아버지 제자라고 사칭하고 다녔으며 아버지에게서 국새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며 “민 씨는 20여년 전 부산에 있던 집에 두 번 정도 왔던 것밖에 없다. 아버지가 여든이 넘어 사리분별이 힘들 때 민 씨가 수료증 같은 것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또 민 씨가 작업한 다이아몬드 옥새 등 수십억 원짜리 옥새작품도 전통 옥새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 씨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달라고 문화재청과 서울시 등에 신청했으나 그의 국새 제작 기술이 고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려된 사실도 확인됐다. 국새를 둘러싼 모든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국새 제작을 정부가 엉터리 장인에게 맡긴 셈이 된다.
민 씨가 자신에게 국새 제작 비법을 전수했다고 주장하는 석불 정기호 선생도 사실은 국새를 제작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석불은 인장을 새기는 기술은 국내 최고 권위자지만 옥새를 주조하는 기술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도 초대 국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진실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지막 의혹은 국새 제작단장으로 유명세를 탄 민 씨가 각종 사업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었는지 여부다. 2006년 국새 제작단장으로 선정된 민 씨는 2008년 1개에 20억 원짜리 황금 골프퍼터 사업을 벌였다. 또 민 씨는 로비 금도장을 여성 프로골퍼 최 아무개 씨에게 1500만 원에 파는 등 국새 제작단장 선정으로 높아진 위상을 이용해 일반인들에게 고가에 금도장을 판 것으로 드러났다. 올 1월에는 백화점에 판매가격 40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봉황 국새를 내놓았는데 제조 원가가 200만 원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국내는 물론 해외에 전시 중인 국새도 민 씨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민 씨에 대한 폭로전은 경찰 수사결과 그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민 씨를 둘러싼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새를 계속 사용할지 여부는 물론이고 경남 산청군에 짓고 있는 국새문화원 관리를 그에게 계속 맡길지 여부 또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가의 도장을 만드는 일에 가공된 명성만을 믿고 검증에 소홀했던 정부와 당시 행안부 관계자들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 2008년 4대 국새 헌정식에서 당시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왼쪽)과 민홍규 씨. |
죽을 고비 넘긴 후 ‘날 버리고자…’
지난 6월 한 언론에는 민 씨의 흥미로운 인터뷰기사가 실렸다. 인터뷰에서 민 씨는 “국새의 역사가 곧 나라의 역사”라고 강조하며 스승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인 제작법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민 씨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왕산 자락에 건립되는 국새문화원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사재를 털어 넣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일구고 있는 국새문화원을 산청군에 기부채납했으며, 자신은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5000평 규모의 국새문화원을 한국인의 혼과 문화 원형을 배워가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2007년 3월 터를 잡았는데 완공까지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전각의 위치는 물론 나무 한 그루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민 씨는 최근 아호와 이름을 바꿨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승에게 받은 ‘세불(世佛)’이라는 호가 너무 커서 ‘부농(夫農)’으로 바꿨고, ‘민홍규’란 이름에서 ‘규’자를 빼 ‘민홍’으로 새 이름을 삼았다는 것이었다. 후학이 나타나면 그에게 ‘세불’이라는 아호를 줄 생각이라고 밝힌 민 씨는 “굳이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까지 바꾼 것은 자신을 버리기 위함”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고속도로에서 차량전복 사고를 당한 후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거듭나자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현재 국민들은 국새 쇼크에 휘청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시대 최고의 연금술사로 칭송받던 민 씨가 자리하고 있다. “국새의 탄생 과정은 한 시대를 여는 경건한 의식”이라 역설했던 민 씨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민 씨를 둘러싼 의혹들이 난무한 가운데 진실규명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황금도장 로비설 실체
참여정부 거물급 여럿 거론
▲ 정동영 의원(왼쪽)과 이미경 의원. |
이른바 황금도장 로비설이 정·관계를 강타하고 있다. 핵심은 금도장 수령인사의 명단과 규모다. 금도장 제작을 부인했던 민 씨의 말과 달리 금도장 수령을 인정한 인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 씨로부터 금도장을 받은 거물급 인사들이 여럿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실명이 거론된 인사는 민주당 정동영·이미경 의원과 당시 행정자치부 1차관이었던 최양식 경주시장 등이다. 이 중 최 시장과 정 의원은 도장 수령 사실을 시인했다.
신광섭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장(현 국립민속박물관장)도 금도장 수령 의혹을 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민 씨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대한제국 국새’의 복원자로 선정된 과정이 석연찮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명에 가깝던 민 씨가 당시 신 관장의 추천으로 인해 국새 전문가로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 관장은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3월 민 씨가 다이아몬드를 장식해 만든 시가 30억 원짜리 ‘봉황국새’를 전시하는 특별기획전을 전주박물관에서 진행했고, 2007년 민 씨가 단장으로 있던 제4대 국새제작단의 기록담당으로 국새 백서 제작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신 관장이 민 씨로부터 금도장을 전달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씨는 경찰에서 대한제국 국새 복원 무렵 민 씨가 금도장을 만들어 신 관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신 관장은 “금도장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행자부 장관을 지낸 박명재 CHA의과대학 총장과 황인평 전 행자부 의정관(현 제주 부지사)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부인과는 달리 최악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장·차관급 인사들까지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금도장 수수와 관련해 대가성이 확인될 경우 도덕성을 모토로 내걸었던 참여정부의 이미지는 또 다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도장을 받은 인사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새를 제조하고 남은 금으로 만든 도장인 줄 알고 받았다면 이들은 횡령죄의 공범이 되지만 부인할 경우에는 처벌이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또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도 구체적인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