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 속 여성복 등 알짜 부문 매각 추진…이랜드 “선택과 집중으로 위기 돌파”
서울 금천구 가산동 이랜드그룹 사옥. 사진=최준필 기자
이랜드는 2006년 대형마트인 까르푸를 인수했다가 결국 2008년 매각한 바 있는데, 2009~2012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정점은 2012년이었다. 2009~2011년 15건의 중소형 딜을 진행한 이랜드는 2012년 PIC사이판과 팜스리조트를 인수하고, LA 다저스와 쌍용건설을 동시에 인수키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본업과 전혀 상관이 없는 두 매물을 인수하겠다고 선포하자 투자자들은 불안해했다. 가뜩이나 빚도 많았다. 이랜드그룹은 2013년 기준 부채비율이 399%에 달했다.
그때까지 금융권의 M&A 자제 권고를 무시하던 이랜드는 2015년 말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채권자들이 채무 상환 요청을 내놓자 달라졌다. 2016년 3월 티니위니를 8700억 원에 중국에 팔았고, 평촌 NC백화점(1380억 원), 모던하우스(7000억 원), 엘칸토(405억 원), 켄싱턴제주호텔(1280억 원), 케이스위스(3030억 원) 등을 매각했다. 2년 6개월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마련한 돈이 2조 원을 넘었다. 2019년 다수의 금융회사와 신평사들이 이랜드그룹의 회복을 확인시켜줬다. 2019년 말 이랜드그룹의 부채비율은 100% 중반대까지 낮아졌다. 이랜드가 ‘구조조정 모범생’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순간이다.
하지만 이랜드의 위기는 야속하게도 끝나지 않았다. 2020년 초 터진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2020년 말 현재 재계나 금융권은 코로나 때문에 위험해진 기업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 비슷한 것이 있다. 정부 또한 신평사에 코로나 위기를 겪는 기업은 일회성 이슈일 뿐이니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지 말라고 구두로 권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주력 업종이 패션과 호텔, 레저, 외식, 건설인 이랜드는 분명히 위기다. 이랜드가 또다시 과감한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현금화 가능한 것 전부 팔아…눈물의 구조조정
이랜드는 선제적 대응을 위해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가장 매각하기 싫은 것(알짜자산)부터 매각하겠다는 듯한 태도다.
대표적으로 최근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여성복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랜드의 여성복 사업은 미쏘·로엠·에블린·클라비스·더블유나인·이앤씨 등 6개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연 매출이 3000억 원 수준이다. 매출 대비 수익성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복은 다른 의류에 비해 가격대가 높기 때문인데, 이랜드가 알짜 자산을 너무 서둘러 파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여성복을 팔고 나면 패션 부문에는 SPA브랜드(자사 기획 브랜드) 스파오와 후아유,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정도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스파오 명동점 매장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주력 계열사 이랜드리테일이 주차장 유동화를 추진했다. 이랜드리테일이 보유하고 있는 20여 개 유통 점포의 주차장 운영권을 맥쿼리자산운용의 한 펀드에 넘기고 선급 임대료로 1200억 원을 받은 것이다. 주차장 부지와 영업권을 넘긴 것으로,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첫 주차장 유동화 금융”이라고 홍보했지만 대부분 주차료는 고객이 아니라 매장(이랜드) 측이 대납한다는 점 때문에 이랜드가 급전이 필요해 주차장마저 팔아치운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이랜드의 사정이 절박하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랜드리테일은 향후 발생할 미래매출채권까지 유동화해 지난 5월 1000억 원을 조달한 바도 있다.
그 외 애슐리와 자연별곡, 피자몰 등 외식업을 영위하는 이랜드이츠는 외부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고, 동시에 수많은 점포를 폐점했다. 2020년 상반기에만 30여 점포가 문을 닫았고, 하반기에도 20~30개 점포가 문을 닫았거나 폐점 추진 중이다. 이랜드리테일 또한 12년 동안 영업했던 뉴코아 안산점, 송도 NC커넬워크, 대구 동아아울렛 본점, 2001아울렛 수원남문점 등을 폐점했다.
임직원의 희생도 눈물겹다. 석창현·김우섭 이랜드리테일 대표는 지난 8월 직원 이메일을 통해 “회사의 생존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표로서 직원 여러분께 송구한 부탁을 드리려 한다. 법인은 8월 31일부터 2020년 연말까지 관리직을 대상으로 자율적 무급휴가를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대부분 뷔페업인 이랜드이츠는 코로나 확산 방지 차원에서 한동안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임직원의 고통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자 박성수 회장 복귀 여부도 관심
이랜드가 이번 매각 작업 이후에도 완연히 정상화될 수 있을지를 두고 금융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쪽에선 “이랜드는 티니위니 매각 당시에도 ‘티니위니를 팔고 나면 사실상 패션은 폐업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뉴발란스를 통해 일어섰다. 패션 및 유통 부문에서 이랜드는 원초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다른 한쪽은 “이랜드는 온라인화가 덜 된 기업으로, 코로나19가 세상에 없던 위기를 안긴 것은 아니다. 이랜드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뉴발란스의 정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랜드는 뉴발란스 영업권을 2025년까지로 연장했는데, 한국과 중국에서의 전체 매출이 2015년 이후로는 8000억~9000억 원에서 맴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박 회장은 1980년 이화여자대학교 앞에서 2평짜리 ‘잉글랜드’라는 이름의 옷가게를 시작으로 10조 원대 매출 그룹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2020년은 박 회장이 이랜드를 창업한 지 딱 40년 된 해다. 박 회장은 2019년 초 여동생인 박성경 부회장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는 미래 먹거리 발굴만 담당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은 대형 M&A로 기업을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사업에 대한 감각이 있는 편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복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기존 ‘멀티 브랜드’ 전략 대신 경쟁력이 입증된 브랜드에 집중하고 온라인 부문 강화 등으로 패션 부문의 성장세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이다. 여성복 부문 매각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뉴발란스는 2020년 국내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고 중국 내에서도 키즈 부문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면서 “스파오는 2030년까지 매출 3조 원대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수 회장의 현장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각 법인의 대표체제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민연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