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나라 신도시 ‘유령도시’로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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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통 아파트’ 수두룩
도쿄도 치바현 마쿠하리에 거주하는 모리 씨(가명·56)가 주택을 구입한 것은 지난 1989년. 당시 35세였던 모리 씨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도쿄 집값이 무서워 첫 아이 임신과 동시에 3600만 엔(약 5억 원)짜리 주택을 100% 융자로 구입했다. 집을 구입한 후 첫 2년은 더없이 행복했다. 대출이자와 원금상환을 합쳐도 크게 부담되지 않았고, 집값도 조금씩 오르기까지 해 ‘집 잘 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1990년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1990년 말부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최고 4000만 엔까지 올랐던 집값은 불과 3년이 되기도 전에 1400만 엔까지 급락했다. 21년 동안 월급의 절반을 은행 대출원금과 이자로 냈지만 앞으로 2100만 엔(약 2억 9000만 원)을 더 갚아야 한다. 집을 판다고 해도 700만 엔, 약 1억 원의 빚이 남는다.
집값 급락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리 씨는 일본에서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일본 도쿄도 근교 신도시에는 왕복 3시간의 통근과 치솟는 교통비에도 불구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집값과 어깨를 짓누르는 융자금 탓에 도심으로 이사도 불가능한 50∼60대 서민 가정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 ‘토지신화’와 정책 붕괴
일본은 지난 1990년 이후 부동산 버블붕괴로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있다. 일본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9년 말까지 일본의 6개 대도시 땅값 중 상업용지는 85.2% 하락했고 주택용지는 64%가량 하락했다. 이 같은 급락세는 1980년대 급등세에 기인한다. 일본의 은행들은 버블 고조기인 1986~1987년 관행적으로 담보부동산 시가의 110∼120%까지 대출을 해줬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일본 경제가 인정을 받고 있었던 데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1985년에서 1990년까지 일본 기업의 토지 순매입 규모는 6조 7000억 엔. 직전인 1980년대 초 연평균 1조 엔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600% 이상 폭등했다. 금융감독원의 이장영 박사는 논문을 통해 “버블이 형성되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실현적 상승 기대’에 따른 것”이라면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발생한 것도 향후에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990년 들어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시작됐다. 1980년대 토지 값이 폭등하면서 빈부격차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정·재계를 중심으로 거품경제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 정부는 전 방위적 버블억제정책을 펼쳤다.
1989년 5월, 2.5%에 불과했던 금리를 1990년 8월 6%로, 두 배 이상 인상했고 1990년 3월 들어 부동산 담보대출에 총량규제(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총부채상환비율(DTI))를 도입했다. 더 나아가 1992년 들어 토지기본법 이념을 도입해 취득세 등록세 보유세 양도세 등 토지관련 세율을 강화했다. 대출규제가 시작되면서 신규 수요의 싹이 근본부터 잘려나가면서 일본인의 DNA에까지 내재돼 있다던 ‘토지신화’(우리나라 부동산 불패 신화와 비슷한 개념)는 와르르 무너졌다.
# 일본 신도시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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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꿈의 신도시’로 불렸던 일본 다마신도시 전경. 현재는 젊은층이 도심으로 거의 빠져나가 노인타운으로 전락했다. | ||
한국엔 서울 근교에 1기 신도시가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1년 이후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한 일본 도쿄 인근에는 치바현의 마쿠하리와 다마신도시가 있다.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다마신도시는 높은 녹지율과 거대한 규모로 인해 분당신도시를 연상시킨다. 다마신도시가 한창 때 ‘꿈의 신도시’로 불렸던 것도 지난 2006년 분당이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렸던 것과 유사하다.
1970년대 꿈의 도시였던 다마신도시는 그러나 40년이 지난 2010년 현재 ‘노인타운’으로 불린다. 지구별 준공년도를 차등화한 덕분에 최신식 고층아파트가 있는 지역은 따로 취급된다지만 조성 초기에 들어선 30년이 넘는 낡은 저층 아파트 지구는 심지어 ‘노인들만 사는 유령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다마신도시의 한 건축사는 “초창기 개발계획을 세울 당시 예상치 못했던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인구의 도심회귀 현상으로 2004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면서 “1991년 이후 일본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전체 계획된 택지 가운데 빈 땅으로 남아있는 곳도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 vs 한국 비교
우리나라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와 가산금리 상승으로 주춤했던 주택 값은 정부의 서울 근교 보금자리주택 대량 공급과 맞물리면서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장대섭 한국부동산금융연구소장은 “도쿄도의 다마신도시는 총 40년의 장기개발계획을 바탕으로 조성된 계획도시”라며 “이 같은 거시적 개발계획에도 불구하고 1971년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일부 저층 아파트 지역은 2004년부터 빈집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마신도시와 마쿠하리 등 일본 주요 신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집만 있지 업무시설이 없는 ‘주거형 신도시’라는 데 있다”면서 “정부가 임의적으로 만든 베드타운형 신도시는 인구가 감소하고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침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기 신도시는 2기 신도시 등 신규아파트 공급으로 인구유출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본의 다마신도시를 분당신도시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재일교포 김진호 씨는 “다마신도시에서 도쿄 도심까지의 대중교통 비용이 우리나라 돈으로 왕복 9000원, 택시비가 편도 20만 원가량 든다”면서 “분당에서 서울 도심까지 버스비는 왕복 3000원 내외, 택시비 2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비용 측면에서 봤을 때 서울 도심에서 분당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또 “판교 테크노밸리 성남 공단 등 대규모 기업단지가 몰려 있는 만큼 분당을 ‘단순 주거용 베드타운’으로 취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 체질 개선 ‘긍정 효과’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급격하게 붕괴되면서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을 겪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스템까지 망가지면서 일본경제의 성장 메커니즘이 훼손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부동산 버블 붕괴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을 야기했지만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새로이 주택을 구입하고자 하는 일본의 30대들은 연 수입의 5배 정도에서 도쿄권 내에서 주택구입이 가능해졌다.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으로 민간임대가 활성화되면서 목돈이 없는 1∼2인 가구도 도심에서 쉽게 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메이카이대학 표영명 교수는 논문에서 “부동산 장기불황 속에서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의 변화, 정부와 금융기관, 부동산 분야의 효율화 등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면서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일본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민간임대가 활성화돼 있다. 여유자금이 있는 자산가들은 도심 역세권의 아파트를 통해 임대수익을 얻는 것으로 투자를 한다. ‘소유’보다는 ‘활용’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일본의 부동산 투자는 지난 1980년대 말의 버블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버블기에는 땅과 건물을 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투자펀드를 포함한 여러 회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주상복합단지 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해 사무실과 상점 아파트를 빌려주고 임대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장대섭 소장은 “일본은 민간임대가 활성화되는 과정에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임대보다는 분양에 관심을 가진 시장이라 일본과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2007년 이후 일본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는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위성도시는 여전히 침체가 계속되고 있으며, 지역별로 편차가 매우 심하다. 일본부동산연구소의 2009년 하반기 일본 도심 5구의 주택시장지수는 상승 전환했으며, 특히 신축 아파트의 가격 상승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도 23구의 아파트값은 소형이 상승 전환했으며, 기존주택의 가격도 하락폭을 축소했다. 민간임대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도심 5구의 아파트 임대료는 하락세다.
김명지 파이낸셜뉴스 기자 mj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