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각 칼퇴근…‘인턴마마’ 납시오
▲ 기업에서 인턴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인턴들은 개념 없는 행동으로 선배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사회는 나이순이 아니다. 입사연도에 따라, 사회생활 시작 순서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이 원칙을 망각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나이 어린 선배가 우습기만 한가 보다.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K 씨(여·27)는 남자 인턴 후배의 능글거리는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고 털어놓았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인턴생활을 하는 것이 안 돼 보여 편하게 대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존칭을 꼬박꼬박 쓰더니 점점 말이 짧아지더군요. 대놓고 확 놓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서서히요. 저한테 은근 귀엽다는 둥, 내 스타일이라는 둥 계속 느물거리면서 말하다가도 남자 선배가 오면 ‘충성’이에요. 남자 직원들 술자리는 한 번도 안 빠지고 말도 잘 들으면서 제가 시키는 단순 업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지 않습니다. 여자인 데다 나이도 어리다고 맞먹는 거겠죠. 처음부터 쉽게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데 후회막급이네요.”
K 씨는 남자 동료들에게 이런 속사정을 이야기해 봤었다. 하나같이 얼마 있다 나갈 건데 그냥 좀 참으라는 소리였다고. 그는 “나중에 사회에 정식으로 진출하면 경력 4년 차이가 얼마나 큰 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하는 Y 씨(여·26)도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여자 인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단다.
“그렇게 억울하면 일찍 사회에 나오든지. 일단 출근해도 저한테만 인사를 안 해요. 생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고 제가 어쩌다 먼저 말을 걸더라도 단답형으로 차갑게 대답해요. 막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차 심부름을 시킬 때도 어찌나 분위기가 싸늘한지…. 그렇게 나이대접을 받고 싶으면 차를 내갈 때 접시나 쟁반에 받쳐나가야 하는 기본을 좀 지키든가, 그걸 지적했더니 ‘다음부터 그렇게 할게요’ 하더니 그냥 차를 내가는 거예요. 그저 황당할 따름입니다.”
곱게 자란 인턴들 때문에 황당한 헛웃음을 지은 직장인들도 있다. 집과 대학에서 공주 대접을 받다 처음 사회에 진출한 인턴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무역회사에 다니는 O 씨(33)는 얼마 전 들어온 여대생 인턴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고 다니는 것도, 행동도 딱 공주 같습니다. 좀 늦게 일을 맡기면 ‘선배님, 어떻게 여자가 야근을 해요?’ 하면서 칼퇴근을 합니다. 그렇다고 지각 안하면 좀 예쁘게요? 지각도 밥 먹듯 하죠. 한번은 인턴들 들어오고 첫 회식 때 소주를 한 잔 따라주려고 했더니 ‘와인으로 마시면 안 될까요?’ 이러더군요. 외국에서 몇 년 살고 왔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우리 정서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서 어이없을 때가 참 많아요.”
IT 회사에 근무하는 B 씨(30)는 인턴에게 업무 때문에 가볍게 한소리 했다가 크게 데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 좀 가르쳐 보겠다고 그런 것뿐인데 자신을 무시했다며 길길이 뛰었다는 것이다.
“졸업반 여대생 인턴 한 명이 저희 팀에 들어왔어요. 딱히 맡길 일은 없어서 엑셀을 이용하는 단순 업무를 맡겼는데 일은 쉽지만 실수하면 나중에 힘들어져서 주의를 몇 번 줬어요. 그렇다고 남자 후배 대하듯 험하게 한 것도 아닙니다. 살살 말했죠. 그랬는데 웃으면서 퇴근해 놓고 주말에 잘 쉬고 있는 저한테 뜬금없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왜 사람을 무시하느냐. 내가 받은 만큼 당신한테 꼭 돌려주겠다. 나 무시당할 만한 사람 아니다’라면서 폭언을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죠. 학교 다닐 때 주변 사람들한테 칭찬만 들으며 살아서 그랬다는데, 그래도 그렇지 할 말이 없네요.”
B 씨는 팀장한테 보고해야 하나, 그냥 꾹 참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는 “그렇게 한 건 하고 그만두려나 보다 했더니 전혀 그만둘 생각도 없어서 어색하게 얼굴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딱히 인턴이 필요 없는데도 인턴제를 활용하는 회사가 있다. 이런 인턴을 관리하는 것은 회사가 아닌, 자기 업무에도 바쁜 선배 직장인들이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L 씨(31)는 새로 들어온 인턴을 맡아 고심하고 있다. 일을 줄 수도 없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이나 간단한 사무업무를 하는 직원은 따로 있어요. 그래서 나머지는 전문성을 요하는 일밖에 없지요. 도대체 맡길 업무가 없는 겁니다. 인턴도 그걸 아는지 그저 시간만 때우고 있어요. 그래도 저 같으면 눈치가 보일 텐데 대놓고 친구와 메신저로 채팅을 합니다. 개인 미니홈피 관리는 일상다반사고요. 하루 종일 문자 보내고 받고, 심지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습니다. 딱히 시킬 일은 없지, 드러내놓고 놀고 있는 걸 보자니 속은 쓰리지…. 대책이 없습니다.”
L 씨는 생각 끝에 그냥 차라리 취업공부를 하라고 말할 생각이다. 그는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음악 듣고 채팅만 하면 보기 좋지 않으니 차라리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는 게 나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H 씨(30)도 자꾸 사라지는 인턴 직원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다. 하는 행동을 보면 ‘그냥 놀러왔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든단다.
“정신없이 바빠서 뭐 좀 시켜보려고 하면 정말 신기하게 사라집니다. 그러고 다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죠. ‘선배님, 화장실에서 저도 모르게 깜빡 졸았어요, 한번 봐 주세요’ 하고 웃으면서 지나갑니다. 황당해서 대답을 못하겠더군요. 요즘 대학생들이라 그런지 영어는 잘하는데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는 기초도 안 돼 있어서 그냥 거의 놀고 있습니다. 게다가 친구가 회사에 들렀다고 몇 시간을 놀다오니 말 다했죠. 정식으로 취업해서도 그럴 건지 궁금해요.”
외식기업에 근무하는 S 씨(42)는 ‘무개념 인턴’ 현상에 대해 꼭 인턴들만 탓할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개인의 인성이나 자질이 글러먹었다고 평가하기보다 회사의 인턴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단지 몇 개월 허드렛일이나 시키려고 인턴제를 시행하는 거라면 인턴들도 열정을 갖고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