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로비 의혹 집중하는 동안 정작 주범들은 해외 도피 “범죄수익 환수 힘들어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4월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오는 모습.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 몸통들이 해외로 도주한 가운데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사진=연합뉴스
당초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시작된 라임 수사는 장 아무개 전 대신증권 센터장의 녹취록이 공개된 뒤 새 국면을 맞았다. 녹취록에는 장 센터장이 청와대 관계자 등 정부 고위층과의 네트워크를 자랑하며 투자자들을 달래는 내용이 담겼다. 녹취록 공개 후 파장이 커지자 검찰 수사는 권력형 비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수사팀은 추가로 검사를 파견받아 검사 11명과 수사관 및 외부경력 인원들로 인력을 꾸려 일개 수사부서 차원을 뛰어넘는 규모로 확대됐다.
그러나 청와대와 권력형 비리 의혹에 집중한 검찰은 의혹을 밝혀내지 못한 채 개인비리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녹취록에 등장한 금융감독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은 뇌물을 받고 금감원 내부 기밀을 누설한 개인 비리로 재판에 넘겨졌다. 녹취록에서 ‘라임 살릴 회장님’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라임에서 투자받은 돈을 횡령하고 도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결국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라임의 전주나 환매 중단 사태의 핵심인물이 아닌 기업사냥꾼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후 검찰은 김봉현 전 회장의 옥중 폭로로 수세에 몰렸다. 김 전 회장은 10월 옥중 입장문을 통해 “라임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7월 검사 출신 변호사와 현직 검사 3명에게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했고, 그중 현직검사 1명이 라임 수사팀에 합류했다”며 “라임펀드 판매 재개와 관련해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에게 수억 원을 지급했고 검찰에 이를 얘기했는데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를 주장했다.
김봉현 전 회장의 폭로가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라임 수사를 맡아온 남부지검은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먼저, 라임 수사팀에 속했던 A 검사는 술접대를 받은 사실이 확인돼 12월 기소됐다. 야당 유력 정치인으로 지목된 윤갑근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전 대구고검장)은 판매 중단된 라임펀드를 재판매하기 위해 로비 명목으로 라임의 부동산 시행사인 메트로폴리탄에서 2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A 검사가 담당해온 메트로폴리탄과 관련한 고발 건은 수사에 진척이 없어 사건 뭉개기 의혹마저 제기됐다. 검찰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헤치는 동안 정작 라임 사건의 주범들은 해외로 도피해 신병조차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라임 관계자들과 라임 사태 몸통으로 지목된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횡령 혐의로 고발됐다. 고발인은 추가 증거와 녹취록 등을 제출하고 3월 검사와 면담까지 했는데도 아직 수사에 뚜렷한 진척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이 투자한 회사 중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받았다. 김영홍 회장은 라임에서 3000억 원 상당을 투자받아 부동산 시행 사업을 해왔다. 메트로폴리탄은 필리핀의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캄보디아 개발사업, 서울 및 제주도 오피스텔 개발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라임 대신 향군상조회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검찰은 라임사태 수사팀을 보강 교체해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수사에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사진=박정훈 기자
라임과 관련된 고발 및 수사는 4건이다. 김영홍 회장,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원종준 라임 대표 등은 사기 및 횡령과 배임 혐의로 남부지검에 고발됐고, 캄보디아 개발 사업 1300억 원 횡령 제보 건도 남부지검에 수사지휘가 내려졌다. 이 밖에 해외 카지노 운영과 관련한 도박장운영죄 및 강제집행면탈죄는 남부지검과 춘천지검에 각각 고발이 접수됐다.
김봉현 전 회장의 옥중 폭로 이후 라임 수사를 담당하던 수사팀은 대거 물갈이됐다. 사건을 맡고 있는 남부지검 형사6부 부장이 교체되고 검사들과 수사관도 바뀌었다. 인력 교체 후 검찰은 2020년 11월께 춘천지검에 흩어져 있는 라임 관련 사건을 남부지검으로 이관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2월에는 고발인과 참고인 등 조사도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주범들의 도피 행각 정황이 담긴 녹취록까지 이미 확보했다. 그러나 수사에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 사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미 라임 사태 몸통들이 어느 국가로 도피했는지 정도는 검찰이 파악하고 있다”며 “일부 사건은 공개수배 등 방법으로 법인을 잡기도 하는데 아직 공개수사가 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카지노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영홍 회장은 필리핀의 한 섬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출국금지 조치된 김영홍 회장이 밀입국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라임 관련 수사가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 한 관계자는 “해외로 나가면 수사가 어려운 데다 범죄수익을 환수하기는 더욱 힘들다”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