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들과 절친 ‘중립코너’ 지킬까
▲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경상북도 청도 출신인 이 후보자는 경북고-영남대를 졸업한 전형적 TK(대구·경북)맨이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강동 세무서장, 서울국세청 조사2국 1·2과장, 국세청 법무과장, 대구국세청 조사2국장, 중부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등 국세청 내 주요보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조사국 경력이 많은 대표적인 조사통으로 꼽힌다.
이 후보자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될 때부터 차기 국세청장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그는 인수위가 꾸려진 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한 전력이 있고, 정권 출범 후에는 경제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가 청와대에서 국세청으로 복귀하자 국세청 내 많은 직원들이 그의 향후 행보를 주목했다.
그는 2008년 6월 본청 조사국장에 취임한 후 2009년 1월에는 서울지방국세청장, 7개월 뒤에는 국세청 차장으로 승승장구를 해왔다. 차장 취임 후 1년 만에 그는 또 다시 청장 승진을 목전에 뒀다. 국세청 역사상 짧은 기간 안에 이런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초고속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운’(?)도 뒤따랐다. 한상률 전 청장이 그림로비, 골프로비 사건 등에 휘말려 예상보다 일찍 낙마했고, 백용호 전 청장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의 고속 승진길이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그동안 국세청 안팎에서 불거졌던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에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는 차장 때부터 사실상 ‘왕차장’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 전 청장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었던 만큼 내부 사정에 밝지 못했고, 그렇다보니 이 차장이 인사 등 실무적인 부분들을 상당 부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국세청 내에서 성격이 꼼꼼하기로 소문나 있다. 서울청장 시절에도 업무를 잘하는 일선 직원에 대한 평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직원을 청장실로 불러다가 백지를 던져주고 세무 행정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개인적으로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가져간다는 말도 듣는다. 예를 들어 영남대 재학 중 함께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대학 후배가 현재 국세청에 재직 중인데 사무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의 방에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고 한다. 서울청장 재직시절 서울청 핵심요직인 조사 1, 2, 3, 4국장을 모두 TK로 임명한 것도 개인적인 연을 중시하는 이 후보자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지나친 자기 사람 챙기기라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몇 개월 전 몇몇 언론사 및 정치권에 뿌려졌던 이 후보자에 대한 괴문서도 그의 이러한 인사 스타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TK 인맥만 싸고 돌다보니 여기에 반감을 갖은 비TK 세력들이 괴문서를 만들어 유포한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렸던 것. 때문에 그가 청장에 임명될 경우 자신에 대한 비토세력을 어떻게 안고 가느냐가 성공적인 청장 생활을 위한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 후보자는 정무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여러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가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국세청 내 굵직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것도 이런 관심에서 기인한다. 본인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청문회 과정에서 ‘안원구 전 국장 감찰에 연루됐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관심은 표명했지만 관여는 안 했다”고 답했다. 그는 정·관계 유력 TK 인사들과 적지 않은 친분을 갖고 있으며, 특히 정권 실세로 알려진 아무개 의원의 후원회장과 깊은 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얼마 전 그가 역외탈세 전담팀장을 맡아 결과물을 내놓은 것도 정무적인 감각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차장으로서는 드물게 직접 언론에 역외탈세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며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때 정치권에서는 백용호 전 청장의 입각설이 나돌 때였다.
이 후보자의 정무적인 감각은 풍부한 정보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본청 조사국장을 하던 시절부터 기업 및 동향 정보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측근으로 통하는 A 지방청장이나, B 사무관 같은 경우 국세청 내에서 손꼽히는 정보통으로 통한다. 때문에 그가 청장에 취임할 경우 국세청 내 정보 파트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청문회가 끝난 시점에서 이 후보자의 청장 등극은 거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센 반면 본인에 대한 청문회는 큰 무리 없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가 청장에 취임한 이후 주변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워낙 현 정권인사들과 가깝다는 소리를 듣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 국세청이 ‘권력의 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준비된 청장’으로 불려온 그가 과연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시키고 그동안 무너진 국세청의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