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눈앞에 두고 여론 뭇매에 비틀
▲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과연 벼랑 끝에 선 조 후보자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그의 인생 스토리를 정리해봤다.
조후보자는 2 대 8 가르마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새까만 머리스타일부터가 만만치 않은 인상을 풍긴다. 예리한 눈빛과 얇은 입 매무새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외무고시 출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도 그의 냉철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한몫한다. 한마디로 조 후보자는 ‘경찰’답지 않게 젠틀한 이미지를 지녔다.
조 후보자를 아는 이들은 그의 첫인상에 대해 꼿꼿하고 지조 있는 선비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혹자는 조 후보자에 대해 ‘무인 집단 속의 문인 같은 인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가 서울청장에 오른 후로 경찰 내부에서 가장 심심찮게 나온 말이 ‘조현오식 스타일’이었다. 법과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조 후보자는 깔끔하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또 결단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매사에 강단 있고 소신 있게 업무를 추진해왔고, 특히 집회와 시위에 대처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찰청 경비국장을 지낸 그는 지난 2009년 경기지방청장 시절 쌍용차 파업 사태를 해결, 대내외적으로 ‘경비통’다운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 외무고시 출신답게 국제적인 감각이 있는 데다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서구적인 경찰시스템 도입의 발판을 닦았다는 호평도 받고 있다.
조 후보자는 경찰조직 내에서 저승사자로 명명됐다. 아무리 자기식구라도 비위에 연루된 직원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중한 책임을 묻는 스타일 때문이다. 경찰비리와 관련된 사고와 잡음이 끊이지 않던 90년대 후반, 문제를 일으킨 경찰들을 가차없이 파면·해임시켜버리는 그의 결단력은 당시 경찰 내부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해이해진 경찰조직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조 후보자는 ‘차갑다’ ‘꼿꼿하다’ ‘인간미 없어 보인다’ ‘욕심만 앞선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강성기질’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내부기강을 잡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일선 경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문제삼는 등 지나친 옭아매기식 처신으로 여러 가지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것. 일선 경찰들은 ‘현실성이 없다’ ‘수사의 길이 막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성과에 대한 그의 지나친 압박은 일선 경찰들이 어려운 사건은 피하고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낼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평도 있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현장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포부만 컸지 경찰 생리를 잘 모른다”는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조 후보자가 경기지방청으로 발령나자 경기지역 경찰들은 “고생 길이 열렸다”는 ‘위로’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조 후보자의 강성기질은 서울로 입성한 후에도 이어졌다. 서울 관할 경찰서장들의 입에서 “못해 먹겠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 경찰조직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고가 터졌다. 조 후보자가 지방청장 시절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성과주의’는 결국 지난 6월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성과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사상 초유의 하극상 사건을 야기시켰다.
조 후보자는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대학원 및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원 법학석사를 마쳤다. 1981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외교부에서 8년 반가량을 근무하다 1990년 부산 금정경찰서를 시작으로 경찰에 발을 내딛었다. 울산 남부서장과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경남 사천서장을 역임한 조 후보자는 서울로 입성,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 서울 종암경찰서장, 경찰청 외사관리관, 경찰청 감사관, 경찰청 경비국장 등 경찰 요직을 두루 섭렵했으며 부산지방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장을 거쳐 서울경찰청장에 올랐다.
경찰 내부에서 화려한 프로필을 자랑하는 조 후보자지만 그의 성장기는 순탄치 않았다. 3남 5녀 중 막내였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의 사업이 망하면서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야 했다. 지난 7월 월간지 <신동아>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암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열 식구가 좁은 방 두 칸에서 바둥거리며 생활해야 했고, 학교에서 돌아온 그를 맞이한 사람은 빚쟁이들이었다.
“이틀 꼬박 굶은 적도 있다. 다들 죽기만 기다렸다. 축 늘어져서… 다행히 어머니의 이종사촌 쪽에서 쌀 한가마니와 김치를 들고 와 안 죽고 살아났다”는 것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조 후보자의 얘기다.
지독한 가난은 학업도 방해했다. 학교를 빼먹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지 출석일수가 모자라 졸업도 간신히 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것도 큰 형 덕분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큰 형은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하고 배를 탔다. 그리고 배를 타면서 번 돈으로 막내인 조 후보자를 중학교에 진학시켰다. 조 후보자의 형제들 중 대학을 나온 사람은 조 후보자밖에 없다.
조 후보자는 현재 벼랑 끝에 서 있다. 15만 경찰의 총수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의혹과 흠결을 지녔다는 비난이 거세다. 조 후보자가 거센 풍랑을 헤치고 수장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