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엔 폭로로 맞짱’ 폭풍전야
▲ 왼쪽부터 이상득 의원과 소장파 정두언 의원, 정태근 의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불법사찰 정국을 대하는 소장파의 결기는 매섭다. 하지만 강경대응으로만 향하기엔 부담도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소장파의 ‘근거 없는 정치 공세’에 대해 격노했다는 사실이 흘러나오면서 소장파도 일단 주춤하는 분위기다. 너무 멀리 치고나갈 경우 퇴로가 없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등 당내 중진들이 직접 나서서 청와대와의 적극적인 중재를 선언하고 나서자 ‘일단 선배들을 믿어보자’는 분위기에서 확전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일 뿐이다. 소장파는 중진들이 만나기로 약속한 9월 8일까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주류가 요구해온 불법사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증거를 전격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청와대 또한 이번 소장파의 ‘어깃장’에 대해 “이번에는 청와대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비난만 하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본인들은 과연 얼마나 깨끗하게 지냈는지 ‘공정한 사회’ 차원에서라도 밝히겠다”라며 강력한 맞대응을 천명했다. 앞으로 일부 의원들에 대한 사찰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향후 양측이 ‘사찰정국 대 증거공개’의 전선을 형성하며 한바탕 대회전을 치를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사실 청와대와 정보라인 등은 소장파와 관련한 다양한 ‘파일’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인사 부인들의 사업체 문제와 사생활과 관련해선 첩보 수준이긴 하지만 상당한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가 마음만 먹고 ‘조지기’ 시작하면 소장파도 상당부분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서 끊임없이 소장파 인사들 관련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도 주류가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우리는 정권 출범 때부터 비주류였고, 그 전에는 야당이었다. 권력의 정점에 서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때려 봐야 나올 게 없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찰을 받아도 나온 게 없지 않느냐.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폭로할 게 더 많지 않겠느냐”라며 주류의 사찰정국 조성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정보라인을 독점하고 있는 주류가 ‘꼬투리’를 잡기 시작할 경우 소장파도 약점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주류가 소장파를 압박할 경우 그들로서도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쳐야 한다. 앞서의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쨌든 우리는 지난 경선과 대선을 같이 겪었다. 그래서 관계가 좋았던 시절의 의혹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내전의 상처가 너무 깊어 양쪽 모두 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청와대가 ‘약속’(박스기사 참조)을 해놓고 입장을 번복하며 시간을 끌 경우 앞으로 사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증거를 확실하게 공개할 것이다. 거기에는 연루된 인사의 실명과 함께 구체적인 날짜와 정황증거들이 다 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장파의 강경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정태근 의원 또한 “지난 2008년 7월쯤 이상득 의원과 대면했을 때 사찰 사실을 확인받았다. 이번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 사찰에 관련됐을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함께 합당한 인사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국회 지식경제위 출장차 키르기스스탄에 갔다가 귀국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증거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소장파가 이렇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는 강경책으로 빨리 돌아선 배경에는 여론 악화와 함께 ‘동지’의 변심도 있다. 사실 소장파는 ‘증거도 없이 의혹만 제기하며 떼쓰는 것’(주류 측 표현)에 대한 당 분위기와 여론도 좋지 않은 점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의도하는, 실세의 인사비리를 바로잡는 대의명분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한 한때 그들과 ‘동지’였던 원희룡 사무총장이 ‘의혹이 있으면 증거를 제시하라’며 역공을 펼치자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사무총장이 불법 사찰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다가 도리어 피해자인 의원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게 맞는 처사냐”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지’로부터 칼을 맞은 소장파는 내부회의 결과 ‘더 이상 증거 공개를 미룰 경우 우리만 바보가 된다’며 전격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관계자는 “원 총장이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구체적 행동지침을 들은 뒤 우리에게 강경대응하고 있다고 들었다. 정태근 의원의 친구인 원 총장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게 양측은 마주보는 기관차처럼 사찰정국 조성 대 사찰증거 공개의 대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그리고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양측의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어 막판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일단 소장파로부터 사찰의혹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청취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재오 장관과 안상수 대표 등은 소장파의 사찰 의혹에 놀라움과 함께 공감을 표하며 적극적인 중재의지를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소장파는 그들의 중재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소장파의 핵심 요구사항이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의 2선 후퇴’인데 이미 인사가 확정된 마당에 그것이 쉽게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 대통령도 쉽게 ‘결심’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차관 그룹을 제거했을 때 그들의 강력한 저항을 이겨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차관의 정리는 ‘형님’ 이상득 의원의 문제로 옮아가는 도화선이 된다는 점에서 소장파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이 자신들의 민감한 X파일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박 차관을 함부로 내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박 차관도 그것을 무기로 그동안 빚어진 소장파와의 여러 차례 권력쟁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당 중진들은 중재안으로 ‘여권 전체의 불법사찰 진상 규명 의지’와 ‘진상규명 결과에 따른 엄중한 신상필벌’ 등을 내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박영준’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자르지 않을 경우 이번 싸움은 정권 내내 잠복된 채 계파 갈등을 노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태근 의원은 이번 사건을 “양심과 민주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다.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의 결기가 과연 ‘박영준’이라는 최대 버팀목을 쳐낼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이재오 중재역할 주목받는 까닭
주류-소장파 사이 줄타기?
여권의 ‘리베로’ 이재오 특임장관의 광폭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최근 ‘불법사찰’을 놓고 전면전을 벌이던 이상득-정두언 진영 사이에서 일시 휴전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찰정국이 계속 진행되는 것에 대해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지자 즉각 중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계에 갓 복귀한 이 장관으로선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향후 대권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점에서 매우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근심하고 있는 사항이라 알아보는 정도이지,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한편 정태근 의원은 이 장관과의 만남에 대해 “이 장관이 국회에 신고식을 한 날 나를 따로 부르기에 혼자 가서 만났다. 그동안 진행돼 온 불법사찰 과정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이 장관은 내 얘기를 듣고 ‘충분히 공감했다. 나중에 다시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라며 공감대를 표시했다. 이 장관은 당 지도부나 청와대처럼 나에게 이번 문제에 대해 ‘자제하라’고 얘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는 공감을 표시하며 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앞으로 다시 만나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이 소장파의 뜻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그들의 편에 선 듯한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이에 이상득 의원 측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상득 의원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솔직히 이재오 의원이었다면 그렇게 예의 없이, 정치 도의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오 의원하고 이 부의장 관계도 실제로 나쁘지 않다”며 이 장관이 소장파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 눈치다.
사실 이 장관으로서는 이번 사건에 발을 담그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그는 ‘앞으로 여권 내 갈등에 대한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할 일은 아니다. 특임 소관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특임을 받지는 않았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당내 계파 갈등에 얽혀들어 대권 행보가 조기에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는 뜻도 숨어 있다.
그는 또한 이상득-정두언 양측의 견제도 동시에 받고 있다. 이 장관이 당으로 복귀하지 않고 개각 막판에 장관 겸직이 확정된 배경에 이상득 의원의 견제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있다. 그가 당으로 복귀할 경우 박근혜 전 대표와 대권 경쟁 전선을 형성하며 갈등을 만들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이 독자행동을 하려는 그를 내각과 청와대에 묶어둬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장파도 이 장관과 연대해 지난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55인회 모임’을 이끌며 이상득 의원 축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뿌리에 이 의원의 ‘배신’이 숨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찰정국에서도 그에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당분간 이 장관이 이상득-소장파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관망할 것이다. 양측 싸움의 승패가 어느 정도 갈리는 시점에서 이 장관이 결정타를 날리며 한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오 장관의 향후 행보가 새삼 주목되는 이유다.
소장파 더욱 열불난 까닭
“박영준 처리 약속 지켜라”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정치인 불법사찰 정국에서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언제라도 다시 들고 일어설 기세다. 특히 이들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의 사표를 받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뒤 유야무야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이 대통령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된다”며 “분열적 행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가 전달된 뒤 ‘선진국민연대’를 만들었던 박 차장 측의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사표를 냈고, 같은 그룹의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도 물러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장파의 한 핵심 의원은 청와대 P 수석에게서 “박영준 차장과 정인철 비서관의 사표를 받겠다”라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이는 곧 이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소장파도 철석같이 믿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 정 비서관 외에 박 차장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결국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이는 소장파 의원들이 이번 사찰정국을 ‘양심’의 문제라고 보는 동시에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정치적 신의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정국에서 어떤 중재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박영준 차관의 거취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그들을 달래줄 명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주류-소장파 사이 줄타기?
한편 정태근 의원은 이 장관과의 만남에 대해 “이 장관이 국회에 신고식을 한 날 나를 따로 부르기에 혼자 가서 만났다. 그동안 진행돼 온 불법사찰 과정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이 장관은 내 얘기를 듣고 ‘충분히 공감했다. 나중에 다시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라며 공감대를 표시했다. 이 장관은 당 지도부나 청와대처럼 나에게 이번 문제에 대해 ‘자제하라’고 얘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는 공감을 표시하며 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앞으로 다시 만나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이 소장파의 뜻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그들의 편에 선 듯한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이에 이상득 의원 측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상득 의원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솔직히 이재오 의원이었다면 그렇게 예의 없이, 정치 도의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오 의원하고 이 부의장 관계도 실제로 나쁘지 않다”며 이 장관이 소장파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 눈치다.
사실 이 장관으로서는 이번 사건에 발을 담그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그는 ‘앞으로 여권 내 갈등에 대한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할 일은 아니다. 특임 소관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특임을 받지는 않았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당내 계파 갈등에 얽혀들어 대권 행보가 조기에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는 뜻도 숨어 있다.
그는 또한 이상득-정두언 양측의 견제도 동시에 받고 있다. 이 장관이 당으로 복귀하지 않고 개각 막판에 장관 겸직이 확정된 배경에 이상득 의원의 견제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있다. 그가 당으로 복귀할 경우 박근혜 전 대표와 대권 경쟁 전선을 형성하며 갈등을 만들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이 독자행동을 하려는 그를 내각과 청와대에 묶어둬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장파도 이 장관과 연대해 지난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55인회 모임’을 이끌며 이상득 의원 축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뿌리에 이 의원의 ‘배신’이 숨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찰정국에서도 그에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당분간 이 장관이 이상득-소장파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관망할 것이다. 양측 싸움의 승패가 어느 정도 갈리는 시점에서 이 장관이 결정타를 날리며 한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오 장관의 향후 행보가 새삼 주목되는 이유다.
소장파 더욱 열불난 까닭
“박영준 처리 약속 지켜라”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장파의 한 핵심 의원은 청와대 P 수석에게서 “박영준 차장과 정인철 비서관의 사표를 받겠다”라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이는 곧 이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소장파도 철석같이 믿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 정 비서관 외에 박 차장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결국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이는 소장파 의원들이 이번 사찰정국을 ‘양심’의 문제라고 보는 동시에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정치적 신의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정국에서 어떤 중재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박영준 차관의 거취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그들을 달래줄 명분이 없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