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육회 “선수들과 협의해 해결” vs A 감독 “연차수당 포기 서명 받아오라고 해”
포항시체육회홈페이지 캡처.
[일요신문] 포항시체육회(회장 나주영)가 수년간 수십 명에 이르는 시체육회 소속 실업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연차수당을 미지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와 관련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시정 명령을 내렸고, 시체육회의 조치로 일단락했지만 그 과정에서 ‘연차수당 포기 서명 강요’ 주장이 나오며 적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반 기업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관리감독 주체인 포항시의 책임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포항시체육회는 소속 근로자들에게 미지급된 2019년도 연차수당 지급에 대한 시정명령을 지난해 말께 지시받았다. 이 사안은 2020년 7월초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과 맞물려 발단이 됐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경주시체육회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고, 고용부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과 포항고용노동지청 합동으로 특별근로감독반을 편성해 수 주간 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는 경주시체육회뿐만 아니라 경북지역 모든 체육회를 대상으로 펼쳐졌고, 대구지방고용노동청 등은 당시 논란이 됐던 폭행, 직장 내 괴롭힘, 성추행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전반에 대한 감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포항시체육회가 수년에 걸쳐 시 소속 실업팀 종목 감독과 해당 선수들의 연차수당을 미지급한 것이 적발됐으며, 이에 대구고용노동청이 같은해 9~10월 본격 조사에 나서 이를 최종 확인하고 곧바로 시정을 명령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까지 포항시 직장운동경기부(실업팀) A 감독이 시체육회와의 재계약을 문제로 갈등을 빚은 과정에서 불거졌다. A 감독이 자신의 감독 재계약 문제를 노동청에 고소하기로 하고 소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포항시체육회 소속 전 감독 A 씨는 “연차수당을 받지 못한 시 소속 감독과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60여 명에 달하고 있다. 내가 가르쳤던 선수들은 11명이다. 여기에는 퇴사한 선수들도 포함돼 있다”며 “이들 선수들이 체육회로부터 받지 못한 연차수당은 수천만 원에 이를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A 감독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포항시체육회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번 계기를 일부 공무원들의 잘못된 관행을 일소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포항시체육회 김진홍 팀장은 당시 몇 명의 선수들이 연차수당을 받지 못했느냐는 일요신문 전화 취재에 “이 일(사태) 자체가 외부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선수 인원과 체육회에서 지급하지 못한 연차수당 총 금액에 대해 말을 아꼈다. 김 팀장은 “이 문제는 선수들과 협의해 해결됐다. 노동청에서 요구한 지시명령도 잘 따랐고, 해당 근로자들(감독, 선수들)과의 합의로 이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대구지방노동청이 당시 적시한 포항시체육회에 대한 2019년 한 해 미지급된 연차수당 지급 명령은 현행 노동법상 수시감독의 경우 최근 1년간 시정 명령을 할 수 있다. 근로자의 민원이 있을 시에는 채권은 3년, 형사는 5년이다.
A 감독은 ‘일요신문’과 인터뷰 중 “선수들 개개인을 찾아다니며 연차수당 포기 서명을 유도하고 받아내기가 쉬웠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재계약 시점에서 ‘선수들의 미지급 임금을 받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아오라는 시체육회의 지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든 받으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그는 “선수들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포항시체육회의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어 선수 개인별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연차수당을 지급받지 않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해당 선수들도 ‘감독님과 저희(선수들)의 재계약이 있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되레 위로를 했다. 당시 선수들이 확인서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그간의 일들을 조목조목 털어놓았다.
또 “이미 퇴직을 한 선수들도 있고, 그 선수들이 포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사인을 받기 어렵고 이 업무 자체가 감독이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하자 시체육회 관계자가 ‘다른 종목 감독들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체육회 관계자가) 현재 다른 감독들은 대부분 사인을 다 받아 온 상태인데 왜 A 감독만 못하겠다고 하냐’며 퇴직선수 5명을 포함해 11명의 사인을 이틀 만에 받아 올 것을 요구해 제가 사인 대필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는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관행적으로 일어났고 또 현재도 진행형인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실제 포항시체육회 김진홍 팀장은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포항시체육회만 이렇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체육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번 사례와 같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대구지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한 조사관은 “포항시체육회에서 근로자들에게 미지급 된 2019년분 연차수당지급을 지시했고, 이에 시체육회에서 해당 근로자들이 제출한 ‘처벌불원서’로 노사 합의가 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료했다”고 말했다. 이 조사관은 “근로자 개인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않는다. 서면으로 제출된 것에 대해 꼭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에 의해 확인 절차를 할 수도 있다”며 재조사 착수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포항시 새마을체육과 관계자는 “시체육회는 대한체육회 또는 경북체육회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 포항시에서는 보조금 사용, 행사 개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받고 있지만 일반적인 내부 운영에 대해서는 일일이 보고를 받거나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과거에도 그렇게 운영된 것으로 안다”고 애매한 면피성 말만 늘어놓았다.
포항시 감사담당관 한 관계자는 “포항시체육회에 대한 관리감독은 시 새마을체육과가 맞다. 하지만 체육회에서 일련의 사안에 대한 조치가 완료된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감사실에서 조사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감사실로 민원 또는 제보가 있을 경우 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6일 포항시청에서 열린 ‘2020 포항시청 및 포항시체육회 직장운동경기부 신규단원 임용장 수여식’. 사진=포항시청 제공
한편 A 감독은 현재 포항시체육회로부터 감독의 재계약과 관련해 직장운동경기부(실업팀) 설치 및 운영관리 내규와 근로계약서 제3조(계약해지)에 의거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상태다. 이 같은 조치에 불복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대구고용노동청 고소와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올리기로 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주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