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물고 물리고 동반침몰 위기
▲ 라응찬 회장(왼쪽)과 신상훈 사장. |
또 시민단체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검찰은 이 역시 재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라 회장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자 회사를 이끌던 3인방, 이른바 ‘빅3’가 모두 동반 퇴진하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면서 내부 관계자들은 물론 금융권 전체가 사건의 추이를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신한은행의 신 사장 고소로 촉발된 신한금융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일 총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신 사장 직무정지안을 놓고 5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찬성 10표, 반대 1표로 직무정지를 가결했다. 애초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등 12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멤버 중 일본인 이사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기권했고 신 사장이 홀로 반대표를 직접 던졌다.
이번 이사회 결정으로 모든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사회는 신 사장의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 직접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없는 만큼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그때 가서 해임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당초 이사회에서 신 사장의 해임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직무정지안 상정으로 급선회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로써 신 사장은 일정 기간 동안 업무 수행이 제한되지만 만약 검찰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드러날 경우 정상적인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열리게 됐다.
검찰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신한금융지주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각오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대형 금융사의 문제인 만큼 국가 경제에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신 사장 관련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에 이번 검찰 수사가 최소한 11월 안에 결론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절벽’에 몰린 신 사장이 갑작스럽게 꺼낸 카드로 인해 과연 검찰 수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예단할 수 없는 상태다. 지난 14일 이사회 과정에서 신 사장은 “라 회장이 이희건 명예회장 자문료 15억 6000만여 원 중 일부를 사용한 증거가 있다”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상황이다.
신 사장 측 주장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이 귀국할 시 신한금융지주에서는 비서실장이나 라 회장을 통해 1000만~2000만 원씩 자문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5년간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된 15억 6000만여 원 중 실제로 이 회장에게 지급된 자문료는 총 7억 1100만 원 정도.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은 이 명예회장 동의하에 은행 업무관리비용으로 사용했는데 이중 일부가 라 회장 변호사 비용으로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신 사장은 또 “이백순 신한은행장 역시 자문료 중 3억 원 상당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는 신한은행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 사장의 횡령 혐의와 같은 부분이다. 신 사장이 이 회장의 15억 6000만여 원의 고문료 중 일부를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라 회장과 이 행장도 같이 쓴 돈”이라며 반격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자 신 사장의 배임·횡령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조3부에서는 라응찬 회장의 이희건 명예회장 자문료 횡령 의혹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를 벌이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다. “신 사장이 라 회장도 똑같이 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쌍방의 주장이 다른 만큼 기본적으로 라 회장의 횡령 의혹의 진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처럼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사건의 쟁점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로까지 번지고 있다. 신 사장 배임·횡령 의혹을 수사 중인 금조3부는 최근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 등 5개 시민단체들이 라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옴에 따라 이를 함께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사장 의혹과 라 회장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업무상 연관성이 높다는 이유로 함께 배당해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설명이다.
라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2007년 4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계좌로 수표 50억 원을 보낼 때 차명계좌를 이용해 금융실명제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지난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이미 무혐의 처분을 한 사안. 하지만 “당시 50억 원 송금 사실을 파악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무혐의 내사 종결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대검과 필요할 경우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신한금융 사태가 이번에는 오히려 라 회장이 코너에 몰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신 사장의 공격이 이 행장에게까지 미치자 이번 사건으로 인해 라응찬 회장과 신 사장 그리고 이 행장까지 그룹 CEO(최고경영자) 3인방이 동반 퇴진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거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신한금융지주 내부의 동요와 혼란은 상당하다. 신한금융의 한 관계자는 “신 사장 사태가 이렇게 크게 번질지 몰랐다. 한순간에 항해사를 잃고 표류하는 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부에서도 불안감이 크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에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에서는 우선 이번 사태로 불거진 내부 혼란부터 잠재우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신한은행은 내부 임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흐트러진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지난 15일 부장 10여 명을 소집해 신 사장의 대표이사 사장 직무정지 결정과 관련해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특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직접 나서서 전 직원들에게 공개사과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행장은 지난 15일 이사회가 소집된 후 신한은행 임직원들을 모은 자리에서 “고객과 국민들이 원하는 것처럼 신한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역설한 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책임질 사람이 책임질 것”이라고 못 박으며 내부 혼란을 먼저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아직까지 신한은행에서 이번 사태로 우려했던 자금이탈 등 이상 현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 고객들의 경우 이번 사태를 단순히 내부 CEO들의 분쟁 정도로 인식하고 은행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상태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신한금융에 대한 평가 자체가 상당히 악화돼 있고 대외신인도가 계속해서 떨어질 위기에 놓여 있는 만큼 아직까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 사태로 주가가 떨어지며 시가총액 1조 원이 하늘로 날아간 만큼 금융권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우려는 상당하다. 이런 가운데 또 다시 신 사장과 라 회장 등 CEO들의 물고 물리는 공방이 이어질 경우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JP모건은 지난 15일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신 사장의 직무정지가 결정된 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이번 이사회 결정에 대해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JP모건은 이 보고서에서 “신 사장의 직무정지 결정은 시장의 예상과 부합한 결과였다”면서도 “신한금융의 지배구도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
2010 신한금융 사태 일지
▷9월 2일
신한은행,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횡령 및 배임 혐의 검찰 고소
▷9월 3일
이백순 신한은행장 1차 일본 사외이사 및 주주 면담
▷9월 6일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면담
이백순 행장 2차 일본 사외이사 및 주주 면담
▷9월 7일
라응찬 회장과 정행남 사외이사 회동
▷9월 9일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일본 나고야 설명회 참석
재일교포 주주 및 사외이사, 이사회에 일임 선언
▷9월 13일
재일교포 주주 4인, 이백순 행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및 해임 소송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라응찬 회장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검찰 고발
▷9월 14일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신상훈 사장 직무정지 결정
신한은행,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횡령 및 배임 혐의 검찰 고소
▷9월 3일
이백순 신한은행장 1차 일본 사외이사 및 주주 면담
▷9월 6일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면담
이백순 행장 2차 일본 사외이사 및 주주 면담
▷9월 7일
라응찬 회장과 정행남 사외이사 회동
▷9월 9일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일본 나고야 설명회 참석
재일교포 주주 및 사외이사, 이사회에 일임 선언
▷9월 13일
재일교포 주주 4인, 이백순 행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및 해임 소송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라응찬 회장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검찰 고발
▷9월 14일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신상훈 사장 직무정지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