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그룹의 창업주 K씨는 재계에서도 명망이 있는 대표적인 경영인이었다. 그가 A그룹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미래의 수종사업을 미리 선점한 탁월한 식견 덕분이었다. 비록 K 회장은 오래 전 작고했지만 지금도 그의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은 칭송을 받고 있다(그것이 무슨 사업인지는 공개하기가 좀 어렵다. 사업을 밝히면 이 얘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A그룹을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된 문제의 사업을 K회장이 그룹 내 경영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것은 그의 사위 때문이었다. 경기고-서울대를 나와 그룹의 핵심 경영인으로 활약하고 있던 C씨는 K회장의 사위였다. K회장의 딸과 결혼한 그는 비교적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데다, 인물도 출중해 K회장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C씨가 어느날 갑자기 그룹에서 쫓겨났다. 당시 그의 퇴출을 두고 그룹 안팎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K회장이 가장 아끼던 사위이자 경영인이었던 그가 느닷없이 퇴출됐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항간에는 그가 투자를 실패했다느니, K회장의 직계 자식과 차기 경영권을 두고 파워게임을 벌이다 패배했다느니 하는 등의 갖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의 전격적인 퇴출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의 외도였던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 K회장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딸의 남편인 C씨가 외도를 한 사실을 밝혀내고는 냉정하게 그를 그룹경영에서 축출하고 말았다.
C씨가 사생활 때문에 그룹에서 축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회사를 떠난 지 1년쯤 뒤였다. 기자는 C씨가 경영 일선에 재직할 당시 우연한 기회에 만나 친분을 쌓았다. 기자는 평소 그의 식견과 탁월한 경영능력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으나, 갑작스레 그가 퇴진함에 따라 적이 놀랐다. 그러나 퇴진 후 한동안 C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가 회사를 나간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C씨로부터 저녁이나 하자는 연락이 왔다. 회사를 떠난 지 1년이나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는 더이상 세간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자는 그의 근황이 매우 궁금하던 차였다.
C씨를 만난 곳은 용산 국방부 인근의 차돌배기 집이었다. 그 집은 허름했지만 소문난 맛집이었다. C씨가 경영인으로 재직할 때도 이따금씩 저녁에 이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차돌배기를 굽기도 했다.
1년 만에 만난 C씨의 모습은 어딘지 축 늘어져 보였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의 머리카락도 예전보다 훨씬 허옇게 됐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뭐랄까 약간은 쇠약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 했다.
“잘 지냈나?”
그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지만.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 두 사람은 멀뚱하니 소줏잔만 서너 차례 기울였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입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것은 C씨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화려하던 그의 모습이 변한 것을 보니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기자는 더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떠나신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한참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 때문에….”
아닌 게 아니라 기자도 그런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사실 그가 A그룹을 떠난 뒤 이런저런 추측이 많았지만, 그가 사생활 문제로 축출됐을 것이란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지만 기자는 오래 전 그로부터 여자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들은 적이 있어 그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다. 그런 예상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그가 털어놓은 러브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문제의 Z씨와 C씨가 만난 것은 그들의 사랑놀음이 들통나기 3년 전쯤이었다. 명문 여대를 나온 재원인 Z씨는 A그룹에 입사하기 위해 지원했고, 면접시험을 보는 과정에 두 사람은 불꽃이 튀었다. 그런 사실을 남들이 안다면 파렴치한 경영인으로 낙인 찍힐 노릇이었다. Z씨를 처음 본 C씨는 십여 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보고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따로 몇 차례 만났고, 나중에는 몰래 해외여행도 했다. C씨는 Z씨를 만난 지 1년 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위한 C씨의 생각이었다. 특히 Z씨가 얼마 뒤 임신을 함에 따라 Z씨의 가족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날 위험성이 많아 부득이 Z씨는 미국으로 가야 했다(지금도 Z씨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C씨의 은밀한 사랑은 결국 K회장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A그룹 감사팀은 K회장의 특별지시를 받아 6개월 동안 C씨의 뒤를 밟았고, 회사 장부도 모두 조사했다. 사실 파악을 한 K회장은 C씨를 회장실로 불렀다. K회장은 C씨가 회장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이고는 “이 ××만도 못한 놈아. 내 딸을 울려! 당장 사표 써!”라고 고함을 질렀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회사를 떠난 뒤 C씨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다행히 미국에는 A그룹의 지사가 여러 군데 있었고, 평소 C씨의 부하였던 지사장들이 제법 큰 도움을 주었다. 지사장들은 C씨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알지만, 오너의 사위라는 점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간 사실을 알게 된 K회장이 현지 지사장들에게 C씨에게 일체 도움을 주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 한동안 숨어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허접한 미국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귀국했다는 것이다. 물론 Z씨와 지내는 시간 동안은 매우 즐거웠단다.
그러면 C씨는 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외도를 한 것일까. 그의 변명은 이랬다. 너무 잘난 부인에 대한 거북함이 그 이유라고.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C씨는 자기자신은 잃고 살았단다. 어떤 때는 부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지만 말이라도 잘못 꺼냈다가는 호되게 당하기 일쑤였다. 숨막히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나.
어쨌든 당시 C씨의 모습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으면서까지 사랑을 찾아나선 그에게 알 수 없는 연민도 없지는 않았다. 알듯말듯한 C씨의 장황한 넋두리. 그날 이후로 C씨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C씨는 지금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두집살림을 하고 있단다. 업보일까. 최근에는 자신의 아들이 외도를 하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불행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