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것도 잡힐 것도 없고…’
지난 9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우리은행이 쌍용건설 분식회계로 인한 부정대출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 김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5억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 원심을 확정했다.
쌍용건설이 경영난 악화를 우려해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조작한 장부를 믿고 자금을 대출해 준 우리은행이 자금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낸 소송에 김 회장이 사실상 패소한 것이다.
김 회장은 분식회계를 통해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4000억여 원을 대출 받고 8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06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을 당하진 않았다. 1심 판결 직후인 2006년 3월 쌍용건설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회장은 그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김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2007년 2월 특별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쌍용건설 등기이사직을 맡아오며 해외수주 활동에 진력해왔다. 쌍용건설 측은 대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원활한 해외수주 등을 위한 김 회장 대표이사직 복귀를 요청했고 캠코가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이사회를 통해 김 회장이 대표이사직에 공식 복귀하게 됐다.
이후 김 회장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MBS)호텔 준공, 서울 남산 타워호텔 리모델링사업 완공 등 대형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주가를 높였다. 쌍용건설에서도 김 회장 복귀 6개월을 맞아 그의 치적에 대한 홍보에 박차를 가하던 차에 김 회장의 우리은행에 대한 배상 판결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웬만한 재벌 총수에게 15억 원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김 회장의 현재 입장은 여의치가 않다. 쌍용건설이 지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김 회장은 자신 명의 지분 대부분을 내놓았다. 현재의 김 회장 명의 쌍용건설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아직도 쌍용건설 내에선 총수와 다름없는 장악력을 갖고 있으며 그 덕에 회장직 복귀도 이뤄졌지만 지분상으로만 보면 그는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 셈이다.
김 회장 집 역시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는 상태다. 서울 이태원동 13×-×9에 위치한 김 회장 자택은 대지 면적 833㎡(약 252평)에 연건평 411.71㎡(약 125평) 규모 3층 주택이다. 이 집 등기부엔 지난 2003년 3월 5일 채권최고액 26억 원의 근저당권 설정 내역이 나와 있다. 채무자는 김 회장이고 채권자는 조흥은행이다. 2006년 신한은행에 통합된 조흥은행은 쌍용건설의 주채권은행이었다. 쌍용건설 경영 정상화 과정 중 맺어진 근저당권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자택을 둘러싼 조흥은행과의 금전관계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05년 3월 조흥은행은 김 회장의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청구금액을 16억 원으로 하는 김 회장 자택 가압류 신청을 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가압류가 행해졌다. 이 가압류는 지난해 10월에서야 해제됐다. 그러나 채권최고액 26억 원 근저당권 설정은 아직 유효한 상태다. 우리은행 배상액 마련을 위한 자택 담보 대출은 더 이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절치부심 끝에 쌍용건설 회장직에 복귀한 김 회장이 어떻게 우리은행 배상액을 마련해낼지 재계와 금융권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