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대신 받아 주실 분 없나요?
▲ 영화 <김씨 표류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사실 서울에서 ‘원룸족’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방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목돈이 마련돼야 그나마 살 만한 방을 구할 수 있다. 무턱대고 알아보면 곰팡내 풀풀 나는 반지하방이나 덥고 추운 옥탑방만 겨우 건진다. 지방에서 올라와 제조회사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는 L 씨(30)는 입사하고 현재의 원룸을 얻기까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다. 급하게 입사가 결정된 뒤 2개월가량을 고시원에 살다가 회사 인근 원룸을 알아봤지만 높은 가격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보증금이 있어야 하겠더군요. 보증금이 낮으면 회사에서 너무 멀거나 상태가 안 좋은 집밖에는 얻을 수 없었어요. 결국 부모님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현재 제 연봉이 3000만 원이 좀 넘는데 대출금하고 월세 40만 원 내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솔직히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는 동료들 보면 많이 부럽죠. 일부 생활비만 보태면 월급이 고스란히 남으니까요. 그 돈으로 재테크도 하고 근사하게 데이트도 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L 씨는 초절약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월급은 변함없고 여전히 팍팍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월세라도 좀 저렴한 방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단다. 그는 “창문 없는 고시원 생활을 할 때는 마음도 답답해진 느낌이었다”면서 “여유가 없긴 하지만 지금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방으로 가면 우울한 생각이 더 커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살 만한 원룸을 마련해도 남성 직장인이 우아한 원룸족의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장애물이 많다. 직장생활로도 부족한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청소 빨래 요리 등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IT 관련 기업에 근무하는 S 씨(29)는 이 투자에 인색해 스스로도 집이 돼지우리 같다고 인정한다.
“컴퓨터 책상에 쌓여가는 맥주 캔과 과자 봉지들 보면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근데 퇴근 후 잠깐 인터넷 서핑도 하고 TV도 보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더라고요. 며칠 그대로 지내면 먼지가 공처럼 뭉쳐 돌아다니는 게 눈에 보여요. 빨래를 돌리면 널기보다 그냥 방바닥에 던져서 자연스럽게 마르게 둡니다. 한마디로 옷을 ‘주워’ 입어요. 바쁜 아침에 구겨진 와이셔츠를 보면 미리 좀 다려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지만 일단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려 나갑니다. 싱크대에 포개진 그릇들과 노랗게 변해가는 변기를 보면 주말에 한꺼번에 해치우자는 생각이 가득인데, 실천하기 쉽지 않아요.”
의식주 중 ‘주’를 해결한 원룸족들이 가장 허술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가 ‘식’이다. 직장에 다니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데다 혼자라 제대로 챙겨먹기가 쉽지 않다. 패션업체에 근무하는 C 씨(여·27)는 요즘 다이어트가 한창인데 먹을거리 챙기느라 아침이 늘 분주하단다.
“하루 세끼를 잘 챙겨먹는 것이 기본이라기에 거르던 아침을 챙겨 먹고 있어요. 야채 씻어야지, 닭 가슴살 삶아야지, 가뜩이나 출근준비로 바쁜데 더 정신이 없죠. 같은 팀 동료는 엄마가 아침에 채식 위주로 준비해 놓으신대요. 여기에 영양식 도시락까지 싸 주신다니 솔직히 부럽더군요. 혼자 먹자고 거하게 차리기도 그렇고 해서, 대충 먹거나 외식을 많이 해요. 근데 사먹는 밥은 양념이 강하고 짜요. 칼로리도 훨씬 높고요.”
C 씨는 “먹는 게 부실해서 종합 비타민제만이라도 꼭 챙겨먹고 있다”면서 “TV나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대체 퇴근하고 무슨 기운이 있어서 그렇게 챙겨먹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룸에 살면 ‘혼자라서’ 겪는 어려움이 참 많다. 일단 중요한 택배를 시켜도 받아줄 사람이 없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J 씨(여·30)는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택배 때문에 항상 고생이다.
“간단한 제품이야 회사로 배송시키지만 무거운 건 그럴 수가 없어요. 경비소가 없어 그럴 때마다 배송날짜를 지정해서 기다렸다 받아야 하죠. 한번은 그 다음날 꼭 입어야 하는 옷이었는데 택배 기사가 말도 없이 옆집에 맡겨놓고 간 거예요. 옆집은 새벽시장에서 일하시는 분이라 제가 퇴근하고 갔을 때는 주무시고 다음날엔 아주 일찍 나가시거든요. 결국 문 앞에 봉지를 걸어두고 그 곳에 넣어달라고 옆집에 쪽지를 붙였다니까요. 1층에 있는 가게에 케이크를 사다주면서 혹시나 택배 오면 받아달라고 부탁도 해 봤는데 이 건물에 그런 사람이 많은 터라 내켜하지 않으시더군요.”
외로운 생활을 달래기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원룸족도 많다. 하지만 출근하고 나면 낮에는 따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애가 탄다. 원룸족 4년차인 그래픽 디자이너 O 씨(여·32)는 얼마 전 키우던 강아지를 고향집에 보내고 대신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외로움을 덜 타게 됐어요. 퇴근하고 오면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강아지가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근데 제가 출근하고 나면 심하게 짖었나 봐요. 다른 집에서 항의가 많이 들어와 결국 눈물을 머금고 강아지를 시골집에 내려 보냈어요. 그 뒤 강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혼자 잘 지내는 고양이를 입양했어요. 지금은 고양이한테 정이 담뿍 들어서 나은데 이 녀석도 낮에 저 없이 혼자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최근에는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들만 노리는 범죄가 증가해 여성 원룸족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M 씨(여·30)도 한때 크게 불안감을 느껴 침입이 어려워 보이는 6층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그는 “직장동료들은 독립의 꿈을 이뤘다며 원룸 생활을 멋지다고 추켜세우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운 점이 더 많다”며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다 원룸 밀집지역의 경우 범죄표적이 되기도 해 불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혼자 살다 보면 불편하고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산다고 해서 무사태평인 것만도 아니다. 과거 한 설문조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직장인들이 가졌던 꿈 중 ‘독립하여 원룸 오피스텔에서 생활’이 67.1%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직장인 원룸족이라면 그 꿈을 이룬 셈이다. 이 사실이 명절 전후 ‘애환’이 더 크게 느껴질 법한 원룸족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