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해결사” 해외선 “조력자”
▲ 박지성이 지난 23일(한국시간) 새벽에 열린 2010-2011 칼링컵 3라운드(32강)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 드리블을 하고 있다. 3 대 1로 앞선 후반 9분에 추가골을 뽑는 등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맨유의 5 대 2 승리에 일조했다. AP/연합뉴스 |
스포츠 베팅(내기)을 할 때, 일종의 합의된 암묵적인 룰이 있다. 바로 ‘애국 베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선수들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전체 틀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을 우려해 나온 말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어 흥미를 돋우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볼턴 원더러스는 몰라도 박지성, 이청용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딜레마가 나타난다. 대체 포커스를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여부다. 기자들도 기사 작성을 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팬들은 경기 전후로 나오는 수많은 기사들이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혹평을 하지만 대부분이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소수 마니아층의 견해는 다르겠지만 현 상황에서 소속 클럽이 한국 선수들보다 앞설 수 없다.
TV 중계가 이뤄지지 않는 중동, 일본 지역은 차치하고 프리미어리그와 프랑스 프로축구 르 샹피오나만 봐도 그렇다. 대개 팬들은 박지성이 언제 어떻게 출전하고, 어떤 플레이를 펼치느냐에 모든 촉각을 기울인다. 이청용과 박주영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이들이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지의 여부도 큰 관심이다.
그러나 우리네 기대에 가득 찬 시선과는 달리, 유감스럽게도 맨유나 볼턴에 있어 박지성과 이청용은 한 명의 외국인 선수, 그것도 아시아 선수에 불과하다. K리그 팬들 모두가 호세 모따(수원 삼성), 데얀(FC서울)을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언제든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는 용병일 뿐이다.
유럽 시장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 A 씨는 “슬픈 일이지만 아시아 선수는 중심이 될 수 없다. 포르투갈 출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처럼 세계 축구를 쥐락펴락 하는 엄청난 기량을 지녔다면 모를까.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시선 밖에 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쉬운 카드라는 의미다. 비슷한 기량이라면 같은 유럽연합(EU)권 선수들을 활용하려 하지,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에서 데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앞으로 이 같은 시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한 시선을 줬다.
영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기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한국과 코트디부아르의 친선 평가전을 취재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을 때 만난 세계적인 축구 전문 월간지 <월드사커>의 가빈 해밀턴 편집장은 “박지성과 이청용처럼 몇몇 좋은 기량을 갖춘 아시아 선수들이 있지만 사회나 문화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성공하기란 힘겨운 게 사실이다. 다행히 인종차별 등이 남아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비해 잉글랜드는 외국 선수들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은 거의 사라졌으나 이왕이면 자국 선수들을 활용하려 한다. 아스널 아센 웽거 감독 등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수 영입 제한 등 조치를 취하는 것도 자국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아시아권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입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해밀턴 편집장의 경우는 한국 선수들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다. 대개 영국 기자들은 한국 선수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정말 골을 넣고 펄펄 날지 않는 한 국내 축구 기자들처럼 한국 선수들을 중심에 놓고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없다. 즉, ‘○○○ 90분 풀타임 출격…△△클럽 3-0 대승’이란 기사 타이틀과 내용이 자주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당연하지만 팬들이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한국 선수들이 쟁쟁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득점을 하고, 어시스트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해외축구 부문을 뜨겁게 달굴 때도 주로 한국 선수가 현지에서 맹위를 떨쳤을 때다.
하지만 수비수에게 골을 넣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당연히 포지션에 따른 별도의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팀 공격에 직접적인 역할 분담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공격 포인트 달성 여부를 주목해야 하나 반대의 경우라면 상대 공격을 어떻게 막아 내는지에 시선을 둬야 한다.
물론 출전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면 ‘입지 불안’과 더불어 각종 이적설이 거론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꾸준히 기회를 잡고 있다면 다른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전자는 셀틱(스코틀랜드)에 몸담고 있는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의 경우이고, 후자는 공격형 미드필더 듀오 박지성-이청용, 스트라이커 박주영 등이 해당된다.
국내 축구 최고 지략가로 통하는 김학범 전 성남 일화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과 측면 수비수인 이영표에게 같은 매뉴얼로 플레이를 체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 맡는 역할이 있고, 소속 팀의 승리를 위해 해야 할 별도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 B 씨도 “대부분 팬들은 득점을 해야 좋은 활약을 했다고 평가하지만 때로는 그가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떠한 움직임을 펼쳤는지 주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