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에 불과” 한투연 등 ‘한국판 게임스탑’ 본격화 기세… 실현 가능성엔 의문부호
그러나 금융위의 이 같은 조치는 오는 4월 재보궐 선거를 염두에 둔 ‘선거용’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했음에도 오히려 반발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으로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한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정의정 대표는 “그 기간 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미봉책”이라며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일부에서는 미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게임스탑 사태’가 우리나라 증시에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뿔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한국판 게임스탑’ 운동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상·하한가 제도와 개인투자자들의 한계 탓에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 미국 뉴욕 증시에서 발생한 ‘게임스탑’ 사태의 파장이 크다. 공매도 제도에 반발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한국판 게임스탑’을 예고하고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게임스탑 사태는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에 반발해 미국 비디오게임 유통소매업체 게임스탑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가격을 폭등시킨 사건을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증권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를 중심으로 ‘로빈후드’라 불리는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주도한 것으로서 이들이 공매도 세력에 대항해 게임스탑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한 달간 게임스탑 주가는 1625% 폭등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가 하락을 예상해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들은 공매도 물량을 청산하고 개인투자자들에 백기투항했다(관련기사 “못 먹어도 홀딩” 개미 연합군 반란 ‘게임스탑’ 운명은…).
게임스탑 사태가 우리나라 증시와 개인투자자들에 미친 파장은 대단히 컸다. 개인투자자들은 물론 정치권과 금융권,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 글로벌 금융사들까지 언급하고 나설 만큼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공매도와 관련해 꽤 시끄럽기 때문이다.
게임스탑 사태를 목격한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한투연을 중심으로 ‘공매도 전쟁’ 의지를 다졌다. 정의정 대표는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공매도 헤지펀드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미국 게임스탑 주주들의 방식에 따라 레딧 월스트리트베츠를 한투연 ‘K 스트리츠베츠’에 접목해 ‘반 공매도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며, 이것은 공매도와의 전쟁이 될 것”이라며 “오늘부터 공매도 대표적 피해기업인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 주주연대가 연합해 공매도에 맞서 싸울 것을 선언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투연이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를 지목한 까닭은 1월 28일 기준 두 종목의 공매도 잔고 금액이 각각 2조 598억 원, 3079억 원으로 각각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1위기 때문이다. 한투연이 성명서를 발표한 지난 1일 공교롭게도 셀트리온 주가는 전일 32만 4000원에서 4만 7000원(등락률 14.51%) 올랐다. 에이치엘비도 전일 9만 원에서 6500원(등락률 7.22%)원 올랐다.
게임스탑 사태를 목격한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한투연을 중심으로 공매도 전쟁 의지를 다졌다. 한국투자자연합회에서 운행하는 공매도 반대 홍보 버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1일 두 종목의 투자자별 거래실적을 살펴보면, 두 종목의 폭등이 과연 반 공매도 운동의 효과인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먼저 지난 1일 셀트리온은 전체 거래량 601만 8601주 가운데 기관(기관합계)이 순매수 33만 30주, 외국인이 순매수 96만 9526주를 기록한 반면 개인은 오히려 121만 4926주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에이치엘비 역시 기관이 4만 9258주를 순매수했으며 외국인은 무려 52만 3007주를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개인은 56만 5840주를 매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반 공매도 운동이 그날 바로 실행됐다고 보기는 힘든 데다 개인투자자들은 보통 수익이 나면 매도해 수익을 실현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두 종목의 폭등은 반 공매도 운동에서 비롯했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셀트리온의 이날 폭등은 한투연의 성명서나 반 공매도 운동보다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에 대한 기대 영향이 더 큰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게임스탑과 유사한 현상이 재현될 수 있지만 상·하한가 제도가 있어 미국 같은 상승폭이나 빠른 속도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어 “지난 1일 투자자별 거래실적을 확인하면 알 수 있듯,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아직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의 게임스탑 사태가 아직 종결되지 않은 만큼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상황을 지켜본 이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미국 게임스탑의 비극적 결말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재윤 SK증권 연구원은 “게임스탑 주가는 언젠가 펀더멘털(가치)에 근거한 적정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며 “헤지펀드들이 숏 포지션을 모두 청산해도 적정 밸류에이션 이상으로 주가가 오른다면 높은 가격에 매수한 투자자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매도 제도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다만 공매도 제도를 결국 유지한다면 제도 개선은 시급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불식하려면 불법공매도를 적발하기 위한 전산이 완비돼야 하고 개인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 제도 개선이 필수”라며 “한편으로는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 세력에 대한 우려를 스스로 떨치기 위해서는 우량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장기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