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누수 수리 요청에 모르쇠…전재용 “공매 진행 중, 우리도 중간 끼어 난처”
전두환 씨 차남 재용 씨가 살고 있는 용산 소재 한 빌라에서 아랫집과 누수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A 씨는 2019년 2월 J 빌라를 구입했다. A 씨 윗집인 펜트하우스엔 전재용 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A 씨는 2021년 이 빌라에 입주하려 했다. A 씨는 2월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누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인테리어 공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재용 씨 측 반응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A 씨에 따르면 누수 문제가 불거진 건 2020년 세입자가 있을 때부터였다. 천장에서 물이 샜고, 누수탐지 결과 위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A 씨는 “여러 전문 업체 및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윗집에서 불거진 누수 문제는 100% 윗집 책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A 씨는 재용 씨에게 누수 관련 문제가 발생한 내용을 설명하며 수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용 씨 측 반응은 냉담했다. A 씨는 “윗집에 누수가 발생했으니 이걸 고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돌아온 대답은 ‘우리는 이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말뿐이었다”고 했다. A 씨 주장에 따르면 재용 씨 측은 “검찰한테 집을 압류당한 뒤 집이 경매로 나왔다. 우리는 집주인도 아니고 돈도 없다”고 했다.
A 씨는 “윗집을 직접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서 “관리소장을 통해서 대화를 해보려 했지만 반응은 똑같았다”고 했다. A 씨는 “굉장히 난감하고 억울한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윗집에서 당연히 책임을 지고 고쳐줘야 하는데 협조도 하지 않고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있다. ‘검찰이 압류를 했으니 자신들의 재산권이 없는 주택’이라면서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는 집’이라고만 얘기하고 있다. 협조도 하지 않고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윗집이 책임회피만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용 증명을 보냈다.”
전두환 이순자 부부. 사진=박정훈 기자
A 씨는 변호사를 통해 두 곳에 ‘누수원인조사 협조 및 보수공사 요청의 건’이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수신처는 재용 씨와 교보자산신탁이었다. 내용증명엔 전문 업체가 발행한 누수 소견서도 첨부돼 있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누수 소견서에 따르면 A 씨 집 난방 배관에선 누수가 없는 사실이 확인됐다. 누수 소견서를 작성한 업체 측은 “안방 쪽 문틀 위에서 물이 새 누수 흔적을 발견한 뒤 위에 천장 점검구를 열고 위쪽 천장을 확인해보니 윗집 욕실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윗집에서 물이 새 아랫집 안방 문틀을 타고 물이 새는 게 누수의 원인”이라고 했다.
A 씨 측 변호사는 2월 발송한 내용증명서를 통해 “수신인은 누수 원인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보수공사를 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등 납득하기 힘든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어 “다시 한 번 이 사건 건물 거주자인 수신인(전재용)에게 누수원인조사 협조 및 보수공사를 정식으로 요청한다”면서 “서신을 받은 7일 이내 위임인 또는 대리인에게 납득할 만한 회신을 해주길 바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A 씨와 전재용 씨 집 사이 배관에서 물이 터져 얼어있는 상황이 담겨 있는 사진. 사진=제보자 제공
2월 5일 일요신문과 만난 A 씨는 “재용 씨가 아버지와 똑같은 패턴으로 누수 관련 문제를 넘기는 모양새”라고 했다. A 씨는 “지금도 재용 씨가 윗집에 사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면서 “관리소장과 부동산을 통해 재용 씨 측 입장을 들었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결론은 자신이 보유한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팔리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이사를 갈 것인데, 지금은 돈도 없고 어차피 신탁사가 소유한 부동산이라 누수 수리비용을 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이사가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전두환 씨가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했던 것이 오버랩된다.”
재용 씨가 살고 있는 용산구 소재 J 빌라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재용 씨가 살고 있는 곳의 소유주는 부동산 개발회사 비엘에셋이다. 재용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회사다. 사실상 재용 씨 개인회사인 셈이다. 2006년 비엘에셋 대표로 취임했던 재용 씨는 2015년 12월 대표직을 내려놨다. 후임 대표로 취임한 건 재용 씨 측근으로 알려진 안 아무개 씨였다.
당초 비엘에셋은 J 빌라 3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3년 6월 27일 두 채가 급매물로 거래됐다. 한 채는 14억 원, 다른 한 채는 16억 원에 거래됐다. 이 빌라는 69평(226.34㎡)으로 2013년 당시 시세는 17억~18억 원이었다. 공교롭게도 거래된 날은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된 날이었다. 전두환 추징법은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별칭이다.
이 법의 핵심은 본인 이외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정황을 알면서도 획득한 불법 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추징 대상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두환 추징법이 시행될 무렵 새로운 추징 대상 범위에 들어온 재용 씨가 부동산 재산을 현금화했다고 의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추징법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비엘에셋이 소유하고 있던 빌라 3채는 17층 두 채, 18층 한 채였다. 재용 씨가 급하게 판매한 건물은 17층 두 채였다. 재용 씨는 남아 있는 18층에 실거주하고 있다. A 씨는 “18층은 복층 구조 펜트하우스”라며 “팔린 17층 건물 두 채 가운데 한 채가 이번에 누수가 발생한 집으로 내가 보유한 집”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2019년 2월 해당 주택을 22억 5000만 원에 구매했다.
재용 씨 주택 부동산등기부에 유효한 압류 통보 내역이 적혀있다. 사진=이동섭 기자
비엘에셋 소유 펜트하우스는 전 씨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비엘에셋이 이 집을 구매한 건 2001년 9월 26일이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가압류와 압류 등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치던 이 집은 2008년 5월 7일 신탁됐다. 수탁자는 생보부동산신탁이었다. 지금의 교보자산신탁이다. 신탁 이후 이 집은 다섯 차례에 걸쳐 압류 사실을 등기했다.
2013년 7월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판2부가 처음 압류했고, 2014년 10월 22일 용산구청 세무1과가 압류했다. 2015년 4월 13일 서초세무서 법인납세1과, 2020년 4월 6일 삼성세무서 체납징세과가 압류를 통보했다. 가장 최근엔 2020년 10월 19일 서초세무서 체납징세과가 압류를 통보했다.
그렇다면 압류 등기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전 씨는 어떻게 이 집에 계속 살 수 있었을까. 한 신탁자산 전문가는 “신탁 계약에 따라 압류 집행이 되지는 않는다”면서 “신탁을 맡겨놓은 뒤에도 위탁자는 이 집에 계속 살 수 있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신탁을 맡겨놓으면 소유권 등 재산의 모든 권리는 신탁이 행사한다”면서 “누구도 소유권을 건들지 못하게 된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신탁 물건 보존처분은 압류가 걸리지 않는다. 등기상 압류가 다섯 번 걸려 있다면 신탁을 진행하기 전 어떤 사유로 인해 채무가 발생했을 것이다. 위탁자 여러 상황에 따라 채권이 발생한 것에 대해 압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압류된 건에 대해선 신탁사가 아닌 위탁자 즉, 전재용 씨가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전문가는 “누수 책임은 신탁 위탁자에게 있다”고 했다. 전 씨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어느 신탁이든 간에 신탁사는 명의만 빌려준다”면서 “신탁계약서를 보면 통상적으로 신탁한 재산과 관련한 실질적인 책임은 위탁자에게 있다고 돼 있다. 신탁자는 실질적인 소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보자 A 씨 측 변호사는 2월 4일 자로 전재용 씨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사진=이동섭 기자
전재용 씨는 2월 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랫집 분한테 물이 새는 피해가 있다는 말씀을 직접 듣진 못하고, 부동산에 계신 분이 전화를 주신 적이 있었다. 지난여름 살고 있는 집에 비가 엄청 많이 새가지고 저희 집도 천장이 많이 무너지고 그럴 정도로 비가 샜다. 집에서 직접 빗물이 아래로 내려가진 않았는데, 그게 아마 이제 벽을 타고 내려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 씨는 “공매가 계속 진행이 되고 있다. 은행하고도 소송을 하고 있고 굉장히 복잡하다. 어차피 우리는 중간에 껴갖고 다 뺏긴 집이다. 그러니까 저희는 옥상에서 비가 엄청 새는데도 어디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공매가 마무리돼가지고 저희도 이제 여기를 나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그걸 부동산에 설명을 잘 드렸다. 저희는 아파트 관리실에다가도 말씀을 드릴 입장도 못되고 중간에 저희도 굉장히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전 씨는 또 “(누수소견서, 내용증명 등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집이 검찰이 넘어간 상태에서 저희가 뭘 할 수가 있겠나. 만일 이 집이 내 집이면 제가 당연히 그분들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리고 이게 지금 옥상에서 물이 들어오는 거다. 그거를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책임소재도 따져봐야 하는 건데”라면서 “(아랫집이) 수리비 청구한 적도 없지만 수리비를 저한테 청구할 내용도 아니다. 왜냐면 이 집이 검찰로 넘어가서 집이 공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제가 아니다보니까 저희한테 그런 내용이 올 수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박상아 씨는 ‘아랫집 누수 문제에 대해 협조하고 있지 않는 것이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어요”라고만 짧게 답했다.
한편 재용 씨는 두 차례 이혼 후 배우 박상아 씨와 재혼해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재용 씨 부부는 현재 J 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용 씨는 중구 서소문동 건물,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소재 토지 등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4년 조세포탈 수사·재판 과정에서 73억 5000만 원어치 ‘전두환 비자금 채권’을 소유 및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2007년 재용 씨는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 원을 선고받았다.
2015년엔 미국에 은닉한 재산 122만 달러를 몰수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재용 씨는 탈세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용 씨는 1년 동안 벌금을 1억 4000만 원밖에 내지 않고 버티다 2016년 7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원주교도소에 복역했다. 당시 재용 씨는 하루 노역에 400만 원 벌금을 탕감 받는 조건으로 3년 만에 출소했는데 이를 두고 ‘황제 노역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