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수사 담당관 ‘이용구 인지’ 여부 쟁점…“보고 정도는 했을 것” vs “단순사건 처리 가능성” 분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변호사 시절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 수사한 경찰의 석연찮은 행보가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2020년 11월 6일 밤이었다. 이용구 차관은 도곡동 소재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자택에서 술자리를 가진 뒤 귀가했다. 백 전 장관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 운전기사 A 씨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잠이 든 이 차관을 깨웠고, 여기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고, 블랙박스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그러나 영상이 없었다. 블랙박스는 전용 뷰어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 저장 내용을 읽을 수 없는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7일 A 씨는 블랙박스 영상 복원 업체에서 영상을 복원한 뒤 이 차관에게 전송했다. 11월 8일 A 씨와 이 차관은 폭행 사건에 대해 합의했다. 11월 9일 A 씨는 경찰에 재소환됐고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진술했다. 수사를 담당한 서초경찰서 B 경사는 11월 11일 블랙박스 업체를 통해 영상 존재 여부를 알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 씨를 다시 소환했다. A 씨는 영상을 경찰에 보여줬다. 택시운전사 A 씨 주장에 따르면 이때 B 경사는 “영상을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B 경사 발언 이후 사건은 내사종결됐다. A 씨는 이후 영상을 휴대전화에서 삭제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A 씨 휴대전화에서 영상을 복원해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월 28일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가 안됐고, 블랙박스 업체에서도 녹화된 게 없다고 했다”고 브리핑했던 경찰은 1월 25일 “2020년 연말에 해당 사건 관련 언론에 설명을 드렸는데 일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수사 담당자가 블랙박스 영상 존재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인정했다.
서초경찰서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은 1월 24일부터 진상조사단을 꾸려 이 차관 폭행사건 무마 의혹을 조사 중이다. 서울청은 초동 수사를 진행한 파출소 소속 경찰, 택시기사, 블랙박스 업체 사장 등을 불러 조사했다. 또 B 경사부터 담당 팀장, 형사과장, 서초경찰서장까지 ‘보고 라인’에 속한 이들의 휴대전화, 사무실 컴퓨터를 압수해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B 경사가 윗선에 블랙박스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허위보고했으며, 팀장-형사과장-경찰서장 등 보고라인은 블랙박스 영상 존재 사실을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 존재를 아는 또 다른 관계자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경찰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쟁점은 최초 수사 때 ‘이용구’라는 인물이 누구였는지를 인지했느냐 여부다. 사건 당시 이 차관은 변호사 신분이었다. 수사 담당관 B 경사가 사건과 관련해 얼마나 세부적으로 보고를 했는지가 관건이다.
서울 소재 경찰서 한 관계자는 “경찰들 사이에선 ‘메모 보고’ 형식으로라도 사건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블랙박스 영상 존재에 대한 보고를 차치하고서라도, 보고 자체는 올라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 차관의 경우 인지도가 있는 편에 속하는 변호사였다”면서 “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이 사법고시 특채 출신이다. 변호사가 연루된 폭행 사건이라면 수사 담당자 입장에선 중요 보고 사항”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미스터리한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사건이 발생한) 11월 6일과 (블랙박스 존재 여부를 확인한) 11일 사이에 5일이란 시간이 있는데, 이 과정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보고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1월 27일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하고 나오는 검찰 관계자들. 사진=연합뉴스
1월 28일 만난 경찰 간부급 관계자는 B 경사의 부실하고 미흡한 수사가 이번 무마 의혹 기폭제가 된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초동 수사를 했던 파출소 직원이나 수사 담당관의 경우 당시 피의자가 어떤 변호사인지 여부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거라 본다”면서 “하룻밤 사이 사건 수십여 건을 처리해야 하는 일선 담당자 입장에선 별 것 아닌 사건으로 이 사건을 처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정치권 등 외부 압력이 작용했을 가능성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설사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온다 하더라도 일선 경찰관들은 그 지시를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경찰에게 중요한 것은 근속과 진급”라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외부 민원이 들어왔을 때, 이런 민원을 들어주게 되면 경찰관 본인 커리어에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 어떤 경찰도 쉽게 무마에 동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차관 폭행사건 무마 가능성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앞서의 서울 소재 경찰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이 차관 폭행사건 무마 의혹까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저해할 수 있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내부적으로 지시 사항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윗선부터 일선까지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부터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까지 경찰 권한이 강화되고 있는데, 그 과도기가 상당히 혹독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