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한두 번 맞아보나
그러나 친박 일각에선 여전히 친이계에 대한 의심 섞인 눈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쟁점현안이 없어 제휴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개헌 등과 같은 민감한 이슈가 공론화되면 다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대선구도가 본격화되면 친이계가 조직적으로 박 전 대표와 맞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또한 집권 말기엔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야 대선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의원 보좌관은 “친이와의 불신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금방 사라지겠느냐. 그동안 하도 배신을 당해서 완전히 믿을 순 없다. 정권 중반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국정 동반자로 인정한 것인데 자기네들이 필요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 몇몇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X파일’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몇 주 전부턴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 의원, 비선라인, 자문그룹 등은 정기모임을 갖고 정보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만남은 정권 초부터 비정기적으로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 성격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정치권 동향 파악, 여론조사 분석 등이 예전의 주 업무였다면 이제는 현 정권 실세들의 비리를 수집·체크하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이 모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친박 인사는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 주류에 대한 압박카드가 될 수도 있고, 또 나중에 경선에서 맞붙게 되면 좋은 무기로도 쓰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지금은 정보의 질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그 문제는 이 대통령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될 경우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선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모처럼 조성된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일각에선 모임을 주도하는 박 전 대표 측근 의원이 권력싸움에서 밀려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경남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 대통령과 여권 주류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해 분위기를 흐리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의 친이 의원 역시 “박 전 대표가 친이 의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측근들이 그러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서로 진정성을 갖고 손을 잡아야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