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54] 복덩어리 소를 집 안에 들였으니 모두 평안하소서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양주소놀이굿은 설과 입춘 등을 맞아 가족의 번창과 풍년을 기원하는 굿이다. 경사굿(집안의 재수가 형통하기를 비는 굿)의 제석거리를 마친 다음 무녀(만신)와 마을의 소리꾼이 어울려 한바탕 노는 ‘굿놀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제석거리란 집안사람들의 수명, 곡물, 화복 등의 일을 맡고 있다는 제석신에게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다.
양주소놀이굿에서 만신(무녀)과 마부, 소들이 신명나게 춤추는 모습. 사진=국립무형유산원 제공
양주소놀이굿의 기원에 대해선 설이 다양하다. 양주지방에서 감악산의 산신을 위무하는 절차에서 이 놀이가 나왔다는 설과 농경의례의 하나로 풍년을 비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 궁중의례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으나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소와 말, 하늘을 숭배하는 농경의례인 소멕이놀이(소먹이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천연두를 물리치기 위해 치르는 굿)의 마부타령에서 자극을 받아 형성된 놀이로 추정된다.
양주소놀이굿에는 굿의 무의(무속상의 의례)를 담당하는 무녀, 마부 역할을 하는 소리꾼, 그리고 멍석으로 꾸며 만든 큰 소와 작은 소(송아지) 안에서 소 역할을 하는 놀이꾼 등 크게 세 부류의 연희자가 등장한다. 여기에 우리 민요와 가락에 밝은 악사들이 소리와 재담에 맞추어 신명나는 음률로 굿놀이를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양주소놀이굿은 무녀와 소리꾼이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으며 소를 파는 방식으로 연행된다. 그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처음에 소와 마부가 등장해 인사를 하는 대목으로 시작돼 소의 뿔과 이목구비 등을 치장하고 소개하는 대목, 소를 흥정해서 파는 대목에 이어 축원과 살풀이로 마무리된다.
소장수가 소의 모습을 확인하는 광경. 사진=국립무형유산원 제공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와 마부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무녀가 소장수를 찾으면 마부가 놀이판 마당으로 입장하면서 ‘누가 나를 찾나’를 부르고, 무녀가 소장수의 이름을 물으면 마부가 타령조로 ‘성명풀이’를 한다. 이어 소가 온 내력을 알리는 ‘마부노정기’, 소가 싣고 온 보물의 내용을 소개하는 ‘보물타령’을 부른다. 이후 마부가 자신이 놀이마당에 등장했다는 것을 알리는 ‘마부대령 인사’ 등을 한 다음 본격적인 소놀이굿이 시작된다.
두 번째 대목은 소를 팔기 전에 그 생김생김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여기서 불리는 노래 또한 소의 신체 구석구석에 대한 치레가 주를 이룬다. 먼저 ‘소머리치레’를 하고, 이어 성주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절타령’을 부르고, 계속해서 ‘소뿔치레’ ‘소귀치레’ ‘소눈치레’ ‘소혀치레’ ‘소다리치레’ 등을 굿거리장단에 ‘창부타령’과 비슷한 곡조로 부른다. 여기서 ‘성주’란 집의 수호신을 의미하는데,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배우 마동석이 맡았던 배역(성주신)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뒤이어 진행되는 ‘소 글 가르치기’는 노래 중간중간 재담을 나누는 게 특징인데, 소 역할을 맡은 놀이꾼들이 가사와 장단에 맞추어 고개를 들고 내리며 춤을 춘다.
연희의 세 번째 과정은 소를 팔기 위해 흥정하는 대목이다. 무녀가 “이 집 성주께서 소를 받겠다고 하니, 흥정을 해서 사고팝시다”라고 하면, 마부가 ‘소 흥정하는 소리’를 부른다. 이어 고삐를 넘겨주고, 소 값을 마부에게 주면 ‘말뚝타령’과 ‘소장수 마누라타령’을 부른다.
양주소놀이굿에서 길놀이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연희의 마지막 대목은 소를 판 다음, 소를 산 집을 위해 ‘성주풀이’를 부르고, 그 집 자손들을 위해 ‘과거풀이’를 불러주고, 이어 ‘축원’과 액을 막아주는 ‘살풀이’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성주풀이’란 성주를 모실 때 복을 빌기 위해 부르는 노래 또는 굿을 뜻한다. 양주소놀이굿은 무녀와 마부의 대화와 마부의 타령과 덕담, 마부의 춤과 동작, 소의 동작으로 이루어지는데 마부의 타령은 가사의 내용은 길지만 세련된 평민 가사체로 문학적인 가치가 높다.
양주소놀이굿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일제강점기 때 이 놀이굿의 재담과 소리를 전승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팽수천이라는 무부(무당의 남편)다. 그는 잡가를 잘하고 고사반도 능수능란했다고 하는데, 그의 소리와 재담을 보고 익힌 이들이 훗날 1960~70년대 전승이 단절될 위기에 있던 양주소놀이굿을 재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당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양주소놀이굿은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현재 김봉순이 보유자(만신 역할)로 지정돼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