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vs삼성 코트밖 신경전? “NO, 오비이락일 뿐”
▲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왼쪽)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은 신치용 감독. |
“선수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구단은 향후 배구 발전에 대한 책임감을 좀 더 가지면 좋을 텐데….”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끌고 갈 신치용 감독의 얼굴에 그늘이 짙다.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에 불참 의사를 밝힌 선수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표팀 훈련에 합류한 지 이틀 만에 통증을 호소하며 이탈한 선수들도 눈에 띈다. 2002, 2006년에 이어 아시안게임 3연패 달성을 노리는 배구계에 적신호가 켜진 이유다.
국가대표팀은 대한배구협회 강화 분과 위원회 논의를 거쳐 19명의 선수를 1차로 선발한 뒤 대표팀 감독과 협회의 조율을 거쳐 최종 12명을 결정한다. 부상 때문에 합류가 불가능한 선수들은 협회 지정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진단서를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상 정도가 경미함에도 불참 의사를 밝히는 선수들이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한 배구 관계자는 “6개월이란 긴 시즌이 끝나면 부상 선수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배구 선수 대부분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도 2주 이상 진단을 받는다. 선수가 대표팀 합류를 원해도 소속팀 성적을 위해 구단에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라며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배구협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선수나 구단이 대표팀 소집에 거부할 경우 징계할 수 있는 마땅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대표팀 소집 절차를 무단으로 위반했을 경우엔 구단 또는 개인에게 100만~200만 원의 징계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게 고작이다. 부상 선수가 협회 지정병원에서 진단서를 발부받은 경우는 징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국가대표팀 선발 때마다 협회는 구단 눈치를, 감독은 선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현대캐피탈이 대표팀 소집에 비협조적이란 소문까지 돌면서 배구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먼저 2010 수원 IBK기업은행컵 우승팀인 현대캐피탈 선수 중 대표팀에 합류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터키리그에서 활약하다가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문성민은 ‘드래프트 징계’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대표팀에서 이탈했다. 협회의 설득으로 현대캐피탈은 뒤늦게 ‘10일 전후로 문성민이 대표팀에 합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봉우는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대표팀에서 일찌감치 이탈했고, 최태웅은 발목 골편 제거 수술 때문에 4주 후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가 많은 현대캐피탈로선 대표팀 소집에 아쉬울 게 없다.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가 반드시 대표팀 소집에 응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 관계자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4주간 훈련을 받고 34개월 동안 체육관련 분야에 종사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 대표팀 소집 의무에 관한 규정은 없지만 실무에선 이에 관한 벌칙 조항 도입을 논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배구계에선 현대캐피탈의 강원도 훈련에 부상 선수들이 합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FA로 박철우를 뺏긴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에 과도한 견제 작전을 피는 게 아니냔 목소리가 높다. 논란은 현대캐피탈이 박철우의 보상선수로 ‘명품 세터’ 최태웅을 지목할 때부터 시작됐다. 송병일(현 우리캐피탈), 권영민이란 걸출한 세터를 보유한 현대캐피탈이 최태웅을 데려간 데 의문이 제기된 것. 게다가 막강 ‘투톱 세터’를 보유한 현대캐피탈이 2010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또 세터를 지명했다. 이에 현장에선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 세터 와해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이 “그동안 경희대 출신을 뽑지 않아서 이효동을 뽑았다”고 말해 논란은 더욱 거세져갔다.
▲ 지난 6월 열린 2010 수원 월드리그 국제 남자배구대회에서 문성민이 강스파이크를 쏘고 있다. 뉴시스 |
“이효동은 작년부터 김호철 감독이 탐내왔던 선수다. 사실 드래프트 당시 선순위에 지명될 걸로 예상했던 이효동이 우리 차례까지 내려온 걸 보고 구단 관계자들 모두 놀랐다. 최태웅, 권영민이 노장이라 세대교체를 준비해 뽑은 것이다. 최태웅은 모든 구단이 탐내는 선수다. 최태웅이 보호선수에 들지 못한 것을 보고 기회라 생각했다. 최태웅을 데려온 덕분에 세터진이 막강해졌고, 기업은행컵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다.”
김 단장은 대표팀 소집에 비협조적이란 소문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문성민이 현대에 올 때부터 허리와 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그대로 합류하면 대표팀 발목을 잡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구단에서 철저히 몸 관리를 시켰다. 덕분에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고, 대표팀 프랑스 전지훈련 때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배구협회 문용관 이사는 “아시안게임 3연패를 목표로 삼은 종목은 배구가 유일하다. 아무쪼록 국가 경쟁력과 국내 배구 인기 상승을 위해 선수, 감독, 구단이 마음을 모아주길 간곡히 부탁한다”며 팬들의 응원을 부탁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