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실체인가 거품인가
▲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오후 대전에서 국토해양위원회의 한국수자원공사 국정감사장을 찾아 감사위원들과 담소를 나눈 후 이동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대선 이후 2년여 동안 이어져온 ‘부동의 1위’ 박 전 대표 중심의 차기 주자들의 경쟁구도에 ‘손학규 현상’으로 지칭할 만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손학규 현상에 대한 관심은 우선 10%대로 올라선 지지율의 양적인 팽창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발표한 10월 첫 주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는 야권 유력주자 가운데 23.0%의 선호도를 기록하며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주 대비 7.6%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또 손 대표는 전체 조사에서도 11.5%의 선호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대에 진입했다.
박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여권 주자 조사에선 31.8%, 전체 조사에선 30.0%의 선호도를 보이며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손 대표의 가파른 상승세는 매우 인상적이다.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손 대표는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에서 37.0%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다. 이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11.9%),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11.7%), 김두관 경남지사(4.2%),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3.9%), 송영길 인천시장(3.8%),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2.3%),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1.5%) 순이었다.
지난 10일 <머니투데이>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29.4%로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 9.2%에 이어 손학규 대표가 9.0%로 박빙의 3위로 올라섰다. 그 뒤는 유시민 전 장관 8.6%, 한명숙 전 총리 5.1%, 정동영 최고위원 4.1%,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3.3%,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2.4%, 정세균 최고위원 0.8%, 정운찬 전 총리 0.7%의 순이었다.
여기서도 손 대표는 두 자릿수에 바짝 다가서며 야권 후보 중 선두였다. 손 대표 지지율은 춘천에 칩거하던 6월(4.0%), 7월(3.0%), 8월(3.9%)까지만 해도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고 활동을 재개한 9월에 5.5%로 올라선 뒤 10월에 9.0%로 급등했다.
더욱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지지층의 변화 내용이다. <머니투데이> 조사에서 손 대표가 3위로 치고 올라오는 사이, 박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의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 29.4%는 지난달 같은 매체의 조사에서 나온 지지율 32.0%보다 2.6%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김 경기지사도 같은 기간 7.0%에서 6.3%로 하락했다. ‘손학규 바람’의 희생자가 야권 내에서만 생겨난 게 아니라, 여권 지지층에서도 나타난 것이 흥미롭다.
손 대표의 지지층은 연령별로는 20대(10.6%), 지역별로는 광주·전라(12.8%)와 대전·충청(13.9%), 계층별로는 화이트칼라(16.9%)와 월 소득 501만 원 이상(15.1%)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이 계층에서 박 전 대표와 김 경기지사의 지지율은 모두 지난달보다 떨어졌다. 이는 결국 젊은층, 호남권, 고학력층에서 손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호남지역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때부터 ‘비(非)호남 주자론’의 힘을 얻은 손 대표가 박 전 대표에 대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점 때문에 손 대표 측은 호남을 기반으로 바람이 수도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손 대표의 상승세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인 셈이다. 손학규-김문수의 대체관계도 관심이다. 두 사람 모두 운동권 출신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계에 입문,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3선 국회의원이 됐고, 전·현직 경기도지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김 경기지사에 대해 “손 대표와 지역기반과 성향 등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측 모두 이런 관계에 신경이 쓰였던지 경기도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연 이틀 골프장 인허가를 두고 김 지사와 민주당 의원들 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손 대표가 지사일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경기도는 골프장만 늘었다”고 공격하자 김 지사가 “(골프장은) 손 대표가 지사 시절 인허가를 냈고, 나는 도장만 찍었다”고 답한 것이 시발이었다. 다음날 민주당은 “손 대표의 재임시 골프장 인허가는 9개에 불과하고, 김 지사가 허가한 것은 38개”라며 “김 지사는 불성실한 태도와 거짓말 답변을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발끈했다. 그러자 김 지사는 “골프장은 도시관리계획 입안에서부터 인허가까지 보통 5년 이상이 걸리며 내가 승인한 38개 중 25개는 손 대표가 지사 때 입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김 지사가 여러 강연에서 골프장 건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번 진실공방은 김 지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김 지사가 전국적 관심을 얻은 만큼 잃은 것만도 아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이미 손 대표의 등장 이후 “우리로선 참으로 힘든 정권 재창출 구도가 올 것”이라는 경계령을 발동된 상태다. 한 고위관계자는 “한나라당 출신의 손 대표가 ‘적통’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대표가 된 것은 차기 대선에서의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논리는 한나라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당 주변에서 “차기 대권은 박 전 대표와 손 대표 간의 양자대결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손 대표의 지지율 상승에 걸림돌로 지적되는 점들은 많다. 손 대표가 아직 민주당에서 정통성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의 조사에서도 야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성을 묻는 질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44.0%나 됐다.
당내 견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10·3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와 경쟁을 벌였던 정동영 최고위원 등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직인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한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손 대표의 결단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10%대에 진입한 손 대표의 상승세가 ‘대세론’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뒷짐 진 채 바라볼 리는 만무한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