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누명을 벗고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찾아간다는 두 남자.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 원심, 무기징역을 파기하고 피고인 장동익과 최인철에게 각 무죄를 선고한다.”
지난 2월 4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싸움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혔다. 1990년에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가 재심을 통해 살인 누명을 벗은 것이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두 사람. 30년 전 그들은 왜 ‘살인자’가 된 것일까.
1991년 11월 부산 을숙도 환경보호 구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최인철 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3만 원을 받게 된다. 환경보호 구역에서 불법 운전 연수를 하던 남자가 최 씨를 단속 공무원으로 착각해 봐달라며 돈을 건넨 것.
그날 최 씨가 얼떨결에 받은 이 3만 원은 상상도 못 할 비극의 불씨가 되었다. 퇴근하던 최인철 씨에게 찾아온 경찰에 의해 최 씨는 공무원을 사칭해 3만 원을 강탈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 장동익 씨도 경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공무원 사칭 혐의로 조사하던 경찰은 이들이 ‘2인조’라는 점에 주목해 1년 전인 1990년에 발생해 미제로 남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이윽고 최 씨와 장 씨 그리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생존자 김 씨의 대면이 이어졌다. 둘의 얼굴을 마주한 김 씨는 그들이 범인이라 주장했고 순식간에 최 씨와 장 씨는 살인사건 용의자가 됐다.
목격자만이 존재하고 직접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던 사건에 두 사람을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하기 위해 경찰이 꼭 필요했던 건 하나. 바로 ‘자백’이었다.
최인철 씨는 “손목에는 화장지를 감은 뒤 수갑을 채웠고 쇠 파이프를 다리 사이에 끼워 거꾸로 매달은 상태에서 헝겊을 덮은 얼굴 위로 겨자 섞은 물을 부었죠”라고 말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허위자백을 했고 그렇게 그들은 살인자가 되었다.
그들이 단순 공무원 사칭범에서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기까지 조작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의심된다. 조사를 받던 당시 갑자기 사건 담당 경찰서가 아닌 다른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말하는 최 씨와 장 씨.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한 경찰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갑자기 2년 전 자신에게 강도질을 한 사람들 같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당시 재판부는 이 순경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상습적으로 강도질을 하다 살인까지 저지른 살인강도범이 되었다.
순경의 진술만이 증거였던 이 사건의 수사 결과에도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순경은 정작 상세한 사건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며 강도 사건 발생 당시 경찰에 신고조차 한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사건 당시 타고 있었다고 주장한 ‘르망’ 승용차의 경우 차량 번호조회 결과 전혀 다른 모델의 차량이었고 함께 강도를 당했다던 여성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다.
30년 전과는 달리 이번 재심 재판부는 이 강도 사건에서 순경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조작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의자 무죄 최초 보도 문상현 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낸 전부 다 소설인 거죠”라고 말했다.
고문을 통한 살인사건의 허위자백 그리고 강도 사건의 조작까지 당시 경찰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두 사람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만들었던 것일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은 두 사람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다.
제작진이 어렵사리 만난 당시 수사 관계자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선고 장동익 씨는 “재심이 결정되었을 때 그때 생각을 했어요. 놓아야겠다. 용서해야겠다. 내 마음속에 품고 있어 봐야 나 자신이 힘드니까, 나는 놔야겠다”라고 말했다.
억울한 21년의 옥살이 그 세월은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자식들은 어느덧 성인이 됐고 멋진 앞날을 기대하던 30대 가장은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되뇌었다는 장동익 씨. 하지만 정작 그 답을 해줘야 할 당시 수사팀 경찰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다‘라며 그 답을 피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는 안타까운 상황. 죄 없는 최 씨와 장 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30년의 청춘을 앗아간 당시 경찰, 검찰, 사법부는 두 사람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30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은 장동익, 최인철 씨 그리고 이들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재심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두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진실과 당시 경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