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 “일진설 뒷받침할 증거 사진 싸이에”…신설법인 “과거 DB 그대로 보존”
토종 SNS ‘싸이월드’가 5월 부활한다. 사진=싸이월드Z 제공
‘추억의 일기장’ 싸이월드가 5월 부활한다. 2000년대 초·중반 국민적 인기를 끈 싸이월드는 한때 누적 회원 수만 3200만 명에 달했던 ‘국내 1세대 SNS’였다.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를 이용해 아바타 미니미와 자신만의 공간인 미니홈피를 꾸미고 온라인 친구인 일촌과 비밀글을 주고받는 싸이월드의 온라인 소통방식은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11년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외국계 SNS 서비스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싸이월드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2017년 싸이월드의 순 이용자수는 50만 명으로 급격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19년부터 종종 사이트 접속 불량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싸이월드는 계속해서 ‘접속 가능’과 ‘접속 불가능’을 오가며 이용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본격적으로 싸이월드 폐업설이 돌았다. 전제완 싸이월드 전 대표가 임금 체불 등의 문제로 법정을 오간 까닭이다. 지속된 경영난으로 서버비가 체납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전 전 대표는 줄곧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겠다”며 운영 의사를 밝혀왔다.
사실상 폐업 상태였던 싸이월드는 2월 초 새 주인을 만났다. 엔터테인먼트사 스카이이앤엠 등 5개의 기업이 컨소시엄을 꾸려 설립한 신설법인 싸이월드Z다. 싸이월드Z는 전 전 대표로부터 임금 체불을 해결하는 조건 등으로 10억 원에 싸이월드를 인수했다. 다만 260억 원 상당의 기존 부채는 남겨두고 운영권만 넘겨받는 형식의 계약이다. 싸이월드Z는 오는 5월 웹과 앱 서비스 동시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싸이월드가 부활하면 유명인의 학교폭력 폭로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연예인 가운데 1990년대생은 싸이월드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에 학창시절을 보낸 까닭이다. 이 때문에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발을 구르고 있는 학폭 피해자들이 싸이월드를 통해 과거 사진이나 당시 썼던 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현재 싸이월드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는 사진 170억 장, 음원 5억 3000여 개, 영상 1억 5000여 개에 달한다.
연이은 학폭 폭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연예계는 싸이월드 부활 소식에 걱정이 앞선 분위기다. 2월 24일 한 방송업계 종사자는 “자고 일어나면 학폭 의혹이 터지는 상황이다보니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멤버뿐만이 아니라 신인 배우나 방송인들까지도 폭로 대상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라며 “싸이월드는 그야말로 과거 자료가 모여있는 창고지 않나. 문제가 되는 사진이나 글이 있어도 현재는 접속이 불가능해 지울 수도 없으니 답답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유명인의 학폭 의혹이나 이른바 일진설 논란은 싸이월드에 있던 사진이 그 시발점인 경우가 많았다. 그룹 애프터스쿨 출신의 배우 나나는 2011년 싸이월드에 남아있던 데뷔 전 학창시절 사진이 유출되면서 ‘불량한 학생이 아니었나’는 논란에 시달렸다. 진한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는 모습 등이 퍼진 것이다. 이에 나나는 직접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프리하게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며 “고등학교 때 놀았던 거를 후회하진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인 것 같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배우 차주혁의 발목을 잡은 것도 싸이월드를 통한 과거 행적 폭로였다. 그는 2010년 그룹 ‘남녀공학’의 멤버 ‘열혈강호’로 데뷔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학창시절 차주혁으로부터 성폭력 및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글이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통해 올라왔다. 당시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데뷔 전 그가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결국 팀을 탈퇴하게 됐다. 논란이 된 사진 역시 싸이월드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배우로 전향한 차주혁은 2017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도로교통법·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18년 형기를 마쳤으나 출소 13일 만에 또 다시 마약 혐의로 구속됐다.
2월 20일 일요신문과 만난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싸이월드 사진이나 일기장이 증거가 되지 않겠냐”며 싸이월드 부활 소식을 반겼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일부 피해자들은 5월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남성 연예인 A 씨에게 중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B 씨는 20일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A 씨와 그의 친구들에게 물리적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이들은 학교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소위 일진이었다”며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당시 썼던 일기와 가해자의 학창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남아있다. 증거가 된다면 피해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B 씨는 “피해자에게 학폭의 기억은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얇은 문 같다. 작은 충격에도 불쑥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회피하기만 했는데 요즘 쏟아지는 폭로글을 보면서 나도 나쁜 기억을 이겨내고 사과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관건은 싸이월드가 과거 DB와 이용자들의 계정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느냐다. 많은 사람들이 싸이월드의 재기를 기다리는 이유 역시 오랜 추억이 담긴 글과 사진을 되찾기 위해서다. 전 전 대표는 그동안 이용자 DB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으나 업계에서는 DB 보관 서버 일부가 훼손됐을 수 있고 상당기간 방치되어 온전한 복구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어왔다.
이에 대해 싸이월드Z는 이용자 DB가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싸이월드Z 측은 “싸이월드 이용자 DB를 보관하고 있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KT에 3월부터 임대료 및 관리비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DB를 열어볼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관리가 안 된 상태의 DB를 정리하고 5월 서비스 재개를 할 때에는 문제가 없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싸이월드는 당초 3월 서비스 재개를 앞두고 있었으나 웹 서비스와 모바일 서비스 동시 출시를 목표로 재개일을 미뤘다. 5월 다시 시작하는 싸이월드에서는 기존의 미니미와 2021년형 미니미를 만날 수 있다. 기존 결제수단이었던 도토리는 암호화폐로 전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