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분증으로 통장계좌 비밀번호 풀어…피해자 “부과된 세금 4억” 분노 표출
국민은행에 제출한 가짜신분증(상단) 김씨의 정상적인 신분증(하단).
[일요신문] 국민은행이 2014년도 도입한 신분증 위·변조 감별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든 사건이 경남지역에서 발생했다. 국민은행의 공신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형은행도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어 사회적 파장이 예고된다.
안전행정부, 경찰청, 법무부, 국가보훈처, 보건복지부 등의 신분증 발급기관과 금융감독원, 금융결제원 등은 2014년 2월 25일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장애인등록증, 국가유공자증, 외국인등록증 등 6종의 신분증 위·변조 여부를 은행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금융기관용 신분증 진위 확인 통합서비스’를 구축하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해당 협약에는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외환은행, 기업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씨티은행, 농협은행,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주요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이전에는 은행에서 통장 개설 등 금융거래 시 고객이 제출하는 신분증의 주민등록번호, 이름만 확인한 후 전산 입력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렸다. 하지만 이는 신분증을 위·변조할 경우 진위 파악에 어려움이 많아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정부는 신분증에 있는 사진에서 특징을 추출해 행정기관이 보유한 사진과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위·변조된 신분증을 이용한 금융거래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민은행은 2014년 상반기부터 신분증 진위확인 시스템을 각 지점 창구에 도입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한 국내 굴지 대형은행에서 위조 신분증을 제출한 자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변경해 준 사례가 2015년 8월 31일 거제시 대형조선소 내에 있는 국민은행 출장소에서 발생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제보자 김 아무개 씨는 신분증 위조 당사자인 조 아무개 씨와 조선소 물량팀 사업을 동업한 관계로, 김 씨가 사업 부진으로 휴업하고 통장은 휴면상태로 둔 것을 인지한 동업자 조 씨가 위조된 신분증을 국민은행 출장소에 제시하고 김 씨의 통장을 다시 개설했다.
문제는 비밀번호를 변경해 개설한 통장을 부가가치세를 착복하기 위한 목적의 폭탄업체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폭탄업체란 사업자가 매출에 따르는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으려는 속셈이 만든 유령 사업체를 말한다. 대부분 1년여간 운영하다가 폐업하는 수법을 이용한다.
조선경기가 악화일로에 놓이자 조선소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개인사업자들이 폭탄업체에 매출을 전가하고 부가가치세를 착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자, 국세청이 전면조사에 나서면서 관련 내용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 씨도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사용돼 국세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하자, 2020년 10월께 국민은행 통장 거래내역을 보고서야 자신의 사업장이 폭탄업체로 악용된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씨는 자신도 모르게 통장 거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국민은행에 관련 자료 공개를 요청했고, 이를 통해 놀라운 사실이 알게 됐다. ‘해제신고서’ 신고내용에는 ‘비밀번호 오류횟수 해제등록’이라고 적시돼 있고, 신분증 진위확인에 담당자 확인 도장이 선명했다. 스캔필이라고 돼있지만 정작 신분증 사진은 딴사람이며 이중으로 복사한 흔적이 역력했다.
김 씨는 “내 통장이 부가가치세를 착복하기 위한 목적의 폭탄업체에 악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얼굴이 완전 다르기에 진위 여부 확인만 했어도 알 수 있을 일을 국민은행 측이 신분증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국민은행에 대해 적개심을 표출했다.
이어 “국민은행의 실수로 국세청에서 납부하라는 부가가치세 등 세금이 4억여 원이나 된다. 현재 장애인으로 몸이 아파 근근이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못하게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이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해 유서까지 썼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측은 이와 관련 “김 씨가 (우리 국민은행을) 고발한 상태이기에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정민규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