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기면 지원사격 나선 이광재 보폭 넓힐 듯…전략가로서 강점과 인지도 부족 한계 교차
친문(친문재인)계가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시장 보선 결과는 제3후보론 띄우기에 나선 친문계의 권력구도 퍼즐과 직간접으로 맞물려 있다. 부산·울산·경남(PK) 비교우위 확보 여부는 진보진영 대선 승리 방정식 핵심으로 꼽힌다. 최악의 결과 땐 친문 입장에서 ‘민주정부 4기’ 출범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산시장 보선 결과는 단기적으로 친문 적자 찾기, 장기적으로 정권 재창출 여부의 바로미터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들로부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2월 임시국회 통과 촉구 서한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영 예비후보, 김 원내대표, 김영춘, 변성완 예비후보. 사진=박은숙 기자
“고민이 깊다.”
여권 한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미니 대선이 다가오면서 친문계의 고심이 한층 커졌다고 한다. 부산에서 큰 격차로 패하면 동남풍을 중심으로 한 여권 차기 대선 전략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 여권 주류의 시선이 서울시장과 함께 부산시장 선거에 쏠리는 이유다. 다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부산 판세가 열세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친문계 핵심 의원은 “부산도 막판 뒤집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부산 민심은 반문(반문재인)”이라는 입장이다. 공표된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이명박(MB)계인 박형준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등을 선거 초반부터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장 패배가 여권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복수의 여당 관계자들은 ‘1승 1패(서울시장 승리·부산시장 패배)의 경우 여당이 선방했다고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답하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서울시장 못지않게 부산시장 보선이 가진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은 중도 포섭과 함께 내세웠던 ‘동진 전략’을 통해 20대 총선부터 4연승(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21대 총선)의 발판을 마련했다.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한명숙 체제’가 2012년 19대 총선 직전 ‘혁신과통합’에 몸을 담았던 문재인 대통령을 영입한 것도 동진 전략의 일환이었다. 민주통합당이 영호남 민주화 세력을 묶는 ‘남부 민주벨트’를 본격적으로 꺼낸 것도 이때부터였다.
19대 총선 당시 PK에서 3석(부산 2석·경남 1석)만 건졌던 민주당은 20대와 21대 총선에선 8석(부산 5석·경남 3석)과 7석(부산 3석·경남 3석·울산 1석)을 각각 얻었다. 기대했던 두 자릿수 의석수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20대 총선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우며 중도 외연확장 전략을 편 것이 주효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를 ‘노무현 효과’라고 단언했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호남 민심이 상수라면, 영남 특히 PK 민심은 변수”라며 “민주당이 PK를 비롯한 동진 전략을 사력을 쏟는 이유”라고 밝혔다.
호남의 구심점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빼면, 영남 주자(노무현·문재인)만 대권 고지를 밟았다. 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때 ‘노무현의 후계자’로 지목받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문 대통령이 지금껏 30%대 지지도를 유지하는 것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진보진영의 향수와 무관치 않다. 차기 대선 변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도 ‘노풍(노무현 바람)’이다. 친문계로선 당분간 ‘다시 노풍’과 ‘또 노풍?’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친문발 동진 전략에 서 있는 대표적인 인사로는 ‘원조 친노(친노무현)’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9년 만에 돌아온 이 의원은 부산시장 보선 지원을 위해 부산시당 미래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부산을 블록체인 벤처의 메카로 만들자”고 제안한 데 이어 “부산 미 55보급창 부지에 야구장, 호텔 등 문화관광 복합단지를 짓자”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통과에도 힘을 실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의원이 PK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이광재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국회 한 보좌관은 “여당 내 ‘부산 갈매기’ 모임에 이 의원이 참여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부산 갈매기’는 부산에 연고를 둔 여당 의원 18명이 만든 친목 모임이다. 이 의원을 비롯해 86(80년대 생·60년대 학번)그룹인 송영길 의원과 친문계인 김경협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윤건영 의원 등이 함께했다. 강원 출신인 이 의원이 참여한 것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사석에서 노 전 대통령의 PK 애정에 대해 종종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갈매기’ 모임에 참여한 이들 중 상당수는 친문계가 주축인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핵심 멤버다. 민주주의 4.0 연구원에는 민주당 50명가량의 현역 의원이 합류해 있다. 제3후보 찾기에 나선 민주주의 4.0 연구원과 부산 갈매기 모임이 차기 대선 과정에서 공존할 경우 여권 권력구도의 판이 바뀔 수도 있다. 친문계 일각에선 부산시장 보선 결과에 따라 이 의원이 보폭을 넓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PK는 민주정부 2·3기의 문을 연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다. 여권 한 의원은 “정치인 이광재의 상품성은 우수하다”며 “(대권 도전) 가능성이 없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시점에서 ‘이광재 대안론’이 부상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우선 친문계와 원조 친노의 거리감은 타 계파 대비 좁다. 양측이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친문계의 적자는 ‘공백 상태’다. 이 의원과 친문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다면, ‘범친노·친문 연합군’이 태동할 수도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광재 대안론의 파괴력이다. 역대 대선의 3대 변수는 ‘인물·구도·이슈’였다. 이 의원의 경우 세 변수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좌희정·우광재’로 불린 그는 몇 안 되는 원조 친노 중 하나다. 친문 직계를 비롯한 범친문계에서 ‘이광재 비토론’이 불거질 개연성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친노계의 한계였던 패권주의에는 선을 긋는다. 정책전문가 및 전략가로도 통한다. 여당 의원실에 몸을 담았던 한 인사는 “당 주류와 비주류 모두 유연한 리더십을 가진 이 의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당선 변수인 비호감도가 낮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구도에서도 유리하다. 한국 대선 구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범보수 vs 범진보 간 대결’이다. 제3지대가 출현해도 대선 막판 땐 양 진영이 총결집하는 양상을 띤다. 달리 말하면 ‘누가 중원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는 얘기다. 흔히 선거를 ‘중원 싸움’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다. 이 의원은 여의도 복귀 직후인 21대 국회 초반부터 문재인 정부의 K 뉴딜펀드를 비롯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정책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이 의원은) 좋은 정책=표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라고 귀띔했다. 대선 판세를 좌우하는 3∼5%의 ‘스윙보터(정당이 아닌 정책 등을 보고 투표하는 부동층)’를 끌어당길 힘이 있다는 얘기다. 시대정신을 논하는 이슈 선점 효과에서도 이 의원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이미 복수 언론과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따뜻하고 강인한 대한민국’”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 측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의원이 활동했던 ‘여시재’의 인재풀은 사실상 이광재 대선캠프의 전진기지로 통한다. 당내 이광재계는 없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황희 의원을 비롯해 맹성규 의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이 의원의 우군으로 꼽힌다. ‘부산 친노그룹’인 박재호·전재수 의원 등과도 친분이 깊다.
하지만 ‘이광재 한계론’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이 의원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는 1∼3% 수준에 그친다. 인지도와 지지도를 끌어올릴 ‘이슈 파이팅’에도 능하지 않다. 이 의원도 사석에서 “언론에 보도될 만한 센 발언을 해야 하는데, 정책 얘기만 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자주 한다. 그 정책마저도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광재 한계론에 베팅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친문계는 다른 제3후보론 찾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광재 대안론은 차기보다는 ‘차차기’에 가깝다는 게 당내 중론”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정세균 국무총리부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친문 레이더망에 걸릴 유력한 주자다. 친문 직계인 홍영표 의원과 영남 후보인 김두관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마저도 실패할 땐 대선에서 멀어진 김경수 경남도지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1% 가능성을 두고 베팅할 수도 있다. 바야흐로 13룡 등판론(관련기사 대선 판 키우기냐 흔들기냐…여권 ‘13룡 등판론’의 비밀)의 서막이 오르는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