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논란 및 윤석열과 ‘불편한 동거’ 악재…4월 재보선 패배 시 최대 위기 봉착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1월 2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실상 레임덕 아니냐 vs 아직 레임덕은 아니다.”
여야 정치인들도, 정치평론가들도 의견은 분분했다. 다만 이들의 교집합은 5년 단임제에서 ‘레임덕은 막을 수 없는 둑’이라는 점이다. 여당 한 의원은 “문 대통령 지지도가 정권 초반보다는 하락했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제도의 한계상 레임덕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야당 내부에선 정권 악재가 있을 때마다 “더 떨어질 만한데…”라며 의아함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문 대통령 지지도는 대체로 35% 선을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보다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지지도를 가졌다는 점에도 다수가 동의했다.
실제 그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하 동일) 2월 1주 차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도는 직전 주보다 1%포인트(p) 오른 39%로 나타났다. 부정평가는 지난주와 동일한 52%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주 차 때 39%로 하락한 뒤 한 주(12월 3주)만 빼고 30%대 후반에 머물렀다. 부정평가는 최대 54%(지난해 12월 2주·올해 1월 3주 차)까지 찍었다. 이번 조사는 2월 2∼4일까지 조사해 5일 발표한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다.
문 대통령 현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보다 높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 집권 5년 차 지지도를 보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분기 14%에서 4분기 6%로 추락했다. 차남 현철 씨까지 연루 의혹을 받았던 ‘한보 비리’ 등이 결정타였다. 국정농단 게이트에 휩싸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 차 1분기까지 심리적 마지노선(40%)을 유지했지만, 4분기 땐 12%까지 하락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직전엔 4%(2016년 11월 4주∼12월 1주 차)까지 급락했다.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당시 민주당 다수 관계자조차 “콘크리트 지지도가 무너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5년 차 1분기 33%를 기록했다. 4분기 평균도 24%에 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차 1분기 때 16%까지 하락했으나, 3∼4분기에선 27%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집권 1년 차 3분기(29%) 때 30% 선이 무너졌다. 이 기간 지지도가 20%대 그쳤던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뿐이다. 정권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촛불시위에 휘청거렸던 MB는 1년 차 2분기 때 21%까지 추락했다.
다만 MB는 임기 말 때까지 23∼25%를 유지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문 대통령이 현 지지도 유지를 전제로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55% 선’을 밑돌고 있는 점도 아직은 ‘레임덕이 아니다’에 힘을 싣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 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석 달 전 무너졌다. 하지만 12월 1주 차∼올해 2월 1주 차까지 부정평가가 55% 선을 찍은 것은 딱 1번(1월 1주 차)에 불과하다. 여당 한 관계자는 ‘부정평가가 55%를 하회한다는 것은 레임덕에 진입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격차가 20%p 이내에 포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의도에선 통상적으로 이 격차가 20%p를 넘을 때 중도·무당층이 이반됐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여당의 전망대로 레임덕 없는 최초의 정권 탄생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추미애 시즌 2’ 정국이 불거진 것은 문 대통령의 악재 중 악재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월 7일 취임 후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라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유임시켰다.
야권과 검찰 안팎에선 박 장관의 휴일 기습 인사에 “BH(청와대)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쇼는 쇼였을 뿐”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아니라는 점을 전 국민에게 확인시켜 준 인사”라고 비판했다. 앞서 박 장관이 2월 2일 서울 모처에서 윤 총장과 인사 협의 차 비공개 회동을 하고 관련 의제를 논의한 것을 겨냥한 셈이다.
집권 중·후반기 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든 것은 경제 실정 논란과 검찰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은 30%대 박스권에 갇히기 전 3차례 심리적 마지노선(40%)이 무너졌다. 가장 처음 40% 선이 붕괴된 것은 조국 사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9년 10월로, 39%로 주저앉았다. 부동산 대란이 한창인 지난해 8월에도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연말에도 다시 30%대로 떨어졌다.
다만 당시 문 대통령 지지도는 금세 반등했다. 조국 사태 땐 한 달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을 회복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11월 46%까지 지지율이 상승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전광훈발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면서 문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 정부의 선제 조치로 K 방역이 다시 한 번 주목받으면서 문 대통령은 8월 3주 차 때 47%로 반등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코로나19 확산이 (매번) 호재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한국갤럽 2월 1주 차 조사에서도 문 대통령 긍정평가자 10명 중 3명 이상(35%)은 지지 이유로 ‘코로나19 대처’를 꼽았다. 보수 야당에서 “역병 등 국난 땐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가기 마련”이라며 문 대통령의 지지도를 평가 절하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역대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던 ‘기저 효과의 종료’와 ‘무너진 기대치 게임’도 문 대통령을 짓누르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기저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기저 효과란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에 따라 결과가 왜곡되는 현상을 말한다. 집권 초반 80%대를 웃돌던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박근혜 정권과의 대비 효과에 기인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내치 악재에 무너졌다. 조국 사태와 인사 논란 등을 거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른 게 뭐냐’는 자조감이 확산됐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가동은 언감생심이다. 민주당이 2월 8일 단독으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서 현 정부 들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28명으로 늘었다. 이는 보수 정권(MB 정부 17명·박근혜 정부 10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의당 한 당직자조차 “인사는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2중대 탈피를 외치는 정의당의 포지션은 민주당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범진보진영 분열은 당장 4월 재보선 변수로 떠올랐다. 정의당은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으로 무공천 방침을 정했다. 정의당의 5% 지지도가 ‘민주당으로 가느냐, 반민주로 가느냐’에 따라 여당의 희비가 갈릴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정의당 표심이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보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미니 대선’에서 패할 경우 문 대통령 지지도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격차가 20%p를 웃돌면서 중도층 민심 이반에 따른 레임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지도부에 합류한 한 인사는 “쉽지 않은 선거”라며 “정권 말기 최대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