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영장 청구로 여권 발칵, 신 수석 입지 축소…인사과정 철저히 배제, 친문 강경파에 힘실려
국무회의에 참석한 신현수 민정수석. 사진=연합뉴스
신현수 수석 역할은 ‘구원투수’였다. 윤석열 총장과의 강대강 대결에 따른 피로감이 극에 달하자 문 대통령은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을 발탁했다.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 씨 재판, 윤석열 총장과의 법적 다툼 등에서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된 보좌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작용했다. 조국(학계) 김조원 김종호(감사원) 전 수석들은 모두 비검찰 출신이다. ‘검찰 생리를 잘 알고, 법적 실무에 능한’ 후보를 찾았고, 신 수석이 낙점됐다.
더군다나 신 수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 대통령 ‘법조 브레인’이다. 2004년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사정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개혁 방안 등을 꾸준히 논의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대선 땐 문재인 후보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정부 출범 후 초대 민정수석이 유력했지만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됐다.
현 정부 인맥으로 분류되면서도 동시에 검찰과도 가까운 신 수석은 임명되자마자 이른바 ‘추-윤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검찰 조직 추스르기에 공을 들였다. 한 검찰 간부는 “신 수석은 검찰 재직할 때부터 온화한 성격으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민정수석 취임 후 많은 검사들에게 연락해 여러 민원과 불만들을 청취했다고 들었다”면서 “신 수석은 윤 총장과도 사석에서 편하게 대하는 관계다. 정권 실세들이 윤 총장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들을 풀기 위해 애를 썼다”고 귀띔했다.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을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라고 평가하고, 검찰과의 갈등에 대해선 “송구스럽다”고 하자 정가에선 신 수석 임명 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한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윤 총장에 대한 여권의 파상공세가 주춤해졌다. 동시에 ‘온건파’ 신 수석이 청와대의 새로운 실세가 될 것이란 관측도 뒤를 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다. 신 수석은 그동안 여권의 주요 법조 실세들과는 확연히 다른 스탠스를 취했다. 민주당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대해 속도조절론을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친문 강경파들은 검찰 6대 비리 수사권을 중수청으로 이전하는 법안을 6월까지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실상의 수사권 박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 수석은 “급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중론을 펴왔다고 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 ‘신현수 비토 기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 출신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섞인 의미였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우리끼리 신현수가 제2의 윤석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면서 “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 방안에 대해 신 수석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자칫 청와대와 당이 대립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사건이 터졌다. 2월 4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여권은 발칵 뒤집혔다. 수사 타깃이 청와대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여권 인사들은 “정책은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검찰을 비난했다. 정세균 총리조차 이례적으로 “온당치도 않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검찰과의 관계 개선을 부르짖던 신 수석 입지는 좁아졌다. 이는 결국 검찰 인사 ‘패싱’으로까지 이어졌다. 검찰이 백 전 장관 구속 영장을 청구했던 2월 4일은 검찰 고위급 인사를 두고 법무부와 검찰, 청와대 등이 막판 조율을 하던 시기였다. 특히 신 수석은 최대한 윤 총장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박범계 장관 등과 물밑 논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통상 검찰 고위급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의견을 들은 뒤,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 재가를 받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추미애 전 장관 때 윤 총장은 이 과정에서 제외됐었다.
검찰 및 청와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인사 초반 윤 총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및 친여 성향 대검 부장들 교체, 또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던 검사들의 복귀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사상 불이익에 해당하는 검사는 윤 총장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성윤 중앙지검장 교체에 대해선 박범계 장관이 난색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에서도 ‘이성윤 유임’ 시그널이 내려갔다는 얘기가 돌았다.
협상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았지만 ‘대검 부장 교체’를 놓고 법무부와 검찰 의견이 좁혀져갔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자신을 보좌해야 할 대검 참모들이 오히려 칼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니 윤 총장으로선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느냐. 또 일 처리도 쉽지 않고”라면서 “윤 총장이 박 장관, 그리고 신 수석 등에게 ‘최소한 대검 부장들만이라도 교체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 1일 오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예방을 마친 뒤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박 장관 역시 대검 부장들 교체 카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등 친여 성향 3인 부장들이 교체 명단에 포함됐다는 말이 빠르게 돌았다. 당초 박 장관과 신 수석은 2월 8일 만나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2월 7일 일요일 윤 총장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검찰 인사를 발표했다. 검사장급 인사 발표를 일요일에 한 것은 그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성윤 지검장은 유임됐고, 앞서의 3인 부장들은 대검에 잔류했다.
이 소식에 신 수석이 강하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됐기 때문이다. 박범계 장관은 신 수석을 거치지 않고, 문 대통령에게 직접 인사안을 재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 수석 직속 부하인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게 맞는다면 의도적으로 신 수석을 뺀 채 인사를 진행했다는 의미다. 신 수석은 인사 발표 직후 즉각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신 수석과 가깝게 지내는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 수석과) 통화를 했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은 상태다. 민정수석으로 임명될 때 요구받았던 역할이 있었는데, 전혀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에게 실망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통령이 일련의 상황도 모르고 인사안에 재가를 했겠느냐. 결국 신 수석 ‘패싱’도 대통령 묵인 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신 수석만 아무 소득 없이 동분서주했던 셈이다. 신 수석은 이번 정부에서 자신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 의중에 주목하고 있다. 신 수석을 필두로 하는 ‘온건파’ 대신 ‘검찰 해체’까지 주장하는 친문 강경파 손을 들어준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비쳤던 스탠스와는 백팔십도 다른 것으로, 백 전 장관 구속 영장 청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백 장관 구속영장 청구로) 친문 강경파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면서 “신 수석이 움직일 공간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당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동안 민주당에선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보다 강경한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요구해왔다. 중수청 설치도 그중 하나였다. 친문 지지층 결집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찌됐건 문 대통령이 이런 목소리에 따른 셈인데,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권력의 추가 당 쪽으로 기울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는 대통령 레임덕과도 직결된 문제란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여권에 ‘윤석열 리스크’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문 대통령과 여권에 부담이다. 제2의 ‘추미애-윤석열 전쟁’ 발발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난해 윤석열과의 싸움으로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이 있느냐.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졌고, 윤 총장 몸값만 올려줬다”고 반문하면서 “임기 마지막을 윤 총장 상대로 허비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