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과실 ‘면허 강탈’ 불만? 일반 교통사고로는 금고형 안 받아…“생명 다루는 만큼 엄격한 잣대 적용” 여론 비등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의사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진료센터 입구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의료법 개정안 취지는 범죄에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해 의료인의 위법행위를 예방하고 안전한 의료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 개정안 8조(결격사유 등)’에서는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마약·대마·향정신성 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의료 관련 법률(지역보건법 등) 위반자로 한정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자’를 포함한다. 다만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료행위 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면허 취소 사유에서 제외한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는 ‘면허강탈법’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의료법 개정안(면허강탈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다면 코로나19 진단과 치료 지원, 코로나19 백신 접종 협력 지원 등 국난극복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들에게 극심한 반감을 일으켜 코로나19 대응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며 단체 진료 거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의협은 교통사고로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경우를 앞세워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의협은 2월 19일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이 자동차 운전 중 과실로 인해 사망사고를 일으켜 금고형과 집행유예 처분을 받더라도 수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 교통사고로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성승환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는 “교통사고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 중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 상해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사망의 경우도 피해자의 유족과 가해자가 합의하면 선처를 받기도 한다”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처벌의 특례)는 이른바 ‘12대 중과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종합보험 등에 가입돼 있거나 피해자가 불구‧불치‧난치 등의 질병이 생기는 게 아닌 이상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교통사고는 다른 사건보다 양형기준도 낮은 편”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교통사고 관련 판결 사례에 따르면 늦은 밤 빗길 운전을 하다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은 벌금 7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무면허 운전으로 2회 적발되고도 또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운전자를 친구로 바꿔치기 한 20대 남성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일상생활 중 발생하는 범죄나 일반적인 교통사고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의사만 특별하다고? “전문직 중 성범죄 1위”
이미 다른 전문직에는 이 같은 결격사유가 적용되고 있다. 변호사법 공인회계사법 법무사법 변리사법 세무사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그 자격이 없다고 규정한다. 전문직 외에 공무원은 물론 대부분 일반 직장에서도 형사처벌이나 금고 이상의 형 등은 징계해고 또는 당연퇴직 사유다. ‘의사만 특별하다는 것이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4~2019년 의사의 성범죄자 수가 교수와 변호사 등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의협은 “의료행위와 무관한 형사제재를 결격사유로 규정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과 같이 윤리성 공정성이 필요한 직업은 범죄 종류와 상관없이 일정 형벌 이상으로 결격사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사는 관련 자격이나 진료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직업과 차별성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사의 강력범죄 발생 추이를 살펴볼 때 이들에게만 면죄부를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19년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수는 684명으로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전체 의사 수는 12만 명(보건복지부 기준), 변호사 수는 3만 명(대한변호사협회 기준)으로 전체 인원 대비 성범죄 비율도 의사가 변호사보다 2.4배 많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이들의 의사면허를 정지시킬 수 없다.
#“의료인 더 높은 책임과 윤리의식 필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의료인에게도 다른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3일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24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금고 이상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취소’에 응답자의 68.5%가 찬성, 26%가 반대, ‘잘 모름’이 5.5%로 나타났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료악법을 개정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온 지 약 1주일 만에 30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시민단체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3일 논평을 통해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환자는 진료부터 수술까지 자신의 신체와 관련된 판단 대부분을 의사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책임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며 “개정안은 의료인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취해야 할 상식적이며 기본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