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성소수자 소신발언·상도동계 방문 ‘나’ 복지지원·노무현 인사 기용…분화하는 유권자 맞춤 공략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왼쪽)와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안철수, 오른쪽 엔진 가동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도 후보 단일화를 하는 등 진보진영에 가까웠다. 진보진영 본거지로 불리는 호남에서 ‘맹주’ 민주당을 꺾으며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안철수 후보의 행동반경을 보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겨냥한 듯 우회전과 우향우가 두드러진다. 보수 우파를 향한 구애를 위해 과감히 새 날개를 장착하는 것으로 읽힌다.
안 후보는 우향우를 위해 정치권에서는 ‘금기시되는’ 발언까지 내놓고 있다. 성소수자 논란에 대해 공개적 직설적으로 견해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안 대표는 2월 18일 금태섭 경선 후보와의 토론회에서 성 소수자들의 거리축제 행사인 ‘퀴어 퍼레이드’를 두고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내놨다. 발언을 두고 불거진 논란에도 안 후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퀴어 축제 장소는 도심 밖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겠다”고 덧붙였다.
‘안보관’에 대한 지향점도 분명히 했다. 안 후보는 북한 주민 귀순 과정에서 드러난 군의 대북 경계 실패와 관련해 2월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군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의 정신 기강 해이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가장 큰 문제”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직격했다.
2월 23일 서울 동작구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방문해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 김덕룡 이사장, 김무성 전 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 두번째).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안 후보는 방문 장소와 만나는 사람도 ‘보수화 목표’에 맞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안 후보는 2월 23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찾았다. 보수 세력의 한 축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신을 내세워 보수진영 표심을 끌어안겠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안철수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인연까지 소개했다. 그는 “저도 젊을 때 청와대에서 국수를 먹은 기억이 있다”고 김 전 대통령과의 식사 만남을 소환한 뒤 김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 정신’을 추켜세웠다. 방명록에도 ‘대도무문 정신과 유언으로 남기신 통합과 화합 정신을 이어받아,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특히 이날 방문에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YS 차남 김현철 상임이사, 국민의힘 김무성 전 의원이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손인 상도동계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신호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됐다.
안 후보는 2월 20일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와 만난 사실도 공개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시민운동가로 살던 인명진 목사가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이 국민께 버림받았을 때는 온갖 모욕과 모함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보수정당을 되살리는 일을 맡았다”며 인 목사가 했던 보수재건 역할을 자신이 이어받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수도권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안 후보는 무난히 제3지대 단일화에서 승리,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맞붙을 것”이라며 “경선 최종 결선, 그리고 여당과의 본선에서 보수층 표를 잡으려는 노력을 위해 기존 색깔 외에 보수 색깔을 더 입히려는 페인트칠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경원, 왼쪽 엔진 가동
나경원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1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먹자골목에서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할 때만 해도 자신의 본래 이미지로 선거판을 끌고 갈 듯 보였다. 나경원 후보는 다른 야권 서울시장 후보들을 겨냥해 “누군가는 숨어서 눈치 보고 망설일 때, 누군가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할 때 저 나경원은 선명하게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며 차별점으로 ‘투쟁력’을 내세웠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경원 후보가 2019년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동물국회’를 이끌었던 이미지를 그대로 연출해내 ‘보수 적통’을 간판으로 내세울 것이 예견됐다. 20대 국회 패스트트랙 법안 대치 과정에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후보는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며 사용했다는 이른바 ‘빠루(쇠지렛대)’를 손에 들고 나와 투사의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도 나 후보는 제1야당이 참여한 아스팔트 집회에서 투쟁 전사의 모습을 이어갔다.
이랬던 나 후보가 최근 들어 확 변했다. 보수진영에만 매몰돼 있다가는 제3지대 라이벌인 안철수 후보를 꺾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여당과의 본선에서도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나 후보는 2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에서 독립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으면 총 1억 1700만 원의 보조금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결혼하면 4500만 원, 아이를 낳으면 추가로 4500만 원을 지원하고, 여기에 대출이자를 3년간 100% 서울시가 지원해 모두 1억 원 넘는 혜택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구상이다.
즉각 다른 경선 후보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퍼주기 공약’을 베끼고 있다고 지적한 오신환 후보는 ‘나경영(나경원+허경영)’이라는 별칭도 붙였다. 하지만 나 후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2월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나경영이 돼도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하면 더 많이 지원하겠다고 한술 더 떴다.
2월 1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연구개발타워 스카이브릿지에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왼쪽)과 함께 상암일대 정책비전을 발표하고 있는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경선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나 후보는 과감히 진영의 벽도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1호 고문’으로 노무현 정부 출신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영입한 것이다. 나 후보는 2월 8일 진대제 전 장관 영입 사실을 밝히면서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진 장관과 함께 서울을 혁명적으로 진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진 전 장관은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패한 바 있다.
경쟁 후보들은 나 후보의 하이브리드 전략이 ‘허구’라는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오세훈 후보는 2월 25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나가 ‘오 후보야말로 전형적인 강경보수’라는 나 후보의 발언에 대해 “나 후보는 당원표가 반영되는 예선에서는 본인이 강경보수를 자처했다”고 받아치면서 나 후보의 하이브리드 전략을 속임수로 몰아세웠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유권자들의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정치”라며 “요즘은 정당 또는 의원의 생각만 고집하면 그 길의 끝은 낙선이다. 할 수 있다면 과감히 기존 모습을 변화시켜야 한다. 나 후보도 이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차기 대선도 하이브리드화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권 후보들의 하이브리드화는 연구의 산물로 분석된다. 2016년 총선 이후 4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원인을 살펴본 결과, 과거 보수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 집단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는 분석 결과를 받아든 것이다. 과거에는 보수 정당 후보들이 지향점 정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대북·안보 이슈에서는 힘을 통한 평화, 그리고 경제 이슈에서는 성장 위주·기업 자유의 원칙만 내세우면 지지율을 까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최근 분석한 자료 등에 따르면 보수 유권자들이 이슈별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대북·통일 이슈에 있어서는 기성 보수 유권자 집단과 비슷하게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경제적 이슈에서는 훨씬 진보적인 위치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분화된 보수 유권자들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과거와는 다른 정책 조합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한 것도 민주당의 재난지원금 지원 등 적극 재정에 대해 극렬한 반발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보수층 유권자들은 국가의 적극 재정을 예전처럼 무조건 퍼주기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년 대선도 과거 보수 정당 후보들이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혼합·복합형 후보’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수 야권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설명이다.
“예전엔 보수 유권자와 보수 정당이 한 몸이었다. 그들은 웬만큼 보수정당이 잘못했어도 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국민의힘 최대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만 가 봐도 지지율이 마구 출렁이고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호감을 갖는 이들도 많다. 유권자가 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 정당과 유권자 간 연합구도가 과거엔 강건했지만 이제 이 관계가 느슨해지고, 심지어 해체도 되는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깃발 아래 뭉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물 꾸러미를 보여주고 개별 선물 꾸러미의 숫자, 그리고 품질 차이에 따라 표가 결정된다. 보수 정당 후보들이 더욱 하이브리드화될 수밖에 없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