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재산 덮은 CJ가 다음 타깃?
▲ 대검중수부가 지난 21일 C&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일요신문>이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을 접촉해본 결과 중수부의 다음 타깃 중 하나는 재계서열 16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CJ그룹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수부는 이미 지난 7월 말부터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 및 조성 방법에 대해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지난 2008년 이 회장 개인자금을 관리하던 전 자금팀장 이 아무개 씨가 연루된 ‘청부살인’ 파일도 다시 들춰봤다고 한다. 특히 당시 사건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현 정권 실세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내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계를 숨죽이게 하고 있는 중수부의 대기업 사정, 그 내막을 집중 취재했다.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 이후 직접 수사를 중단했다. 대신 소속 검사와 수사관을 일선에 배치했다가 필요할 때 불러들이는 ‘예비군’식으로 운영해왔다. 중수부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중순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수부는 우선 기존에 축적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수사 대상을 물색한 결과 10여 개 안팎의 기업을 추려낸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이 가운데 직접 다룰 만한 대상을 압축했고, 그 결과 3~4곳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김준규 총장은 김홍일 중수부장이 올린 내사 기업 명단 중 일부는 직접 제외시키거나 일선지검으로 내려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서부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태광과 한화 역시 이 과정을 거쳤다. 김 총장은 10월 18일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중수부가 수사 체제에 들어갔고, 시점이 문제”라며 사정이 임박했음을 예고한 바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중하게 골랐다. 단순한 기업 비리가 아닌 정·관계 인사들이 관여했다는 물증이 확실히 포착된 것들만 중수부가 직접 나설 것이다. 어느 정도 기본이 돼 있기 때문에 수사는 속전속결로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중수부가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C&그룹 수사다. 중수부는 지난 10월 21일 C&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임병석 회장을 전격 체포해 조사했다. 임 회장이 그룹 계열사를 통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 정·관계에 로비를 한 혐의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참여정부 시절 급성장하며 한때 재계순위 60위까지 올랐던 C&그룹이지만 현 정권 들어 주력 계열사들이 줄줄이 상장폐지되면서 지금은 그룹이 와해된 상태이기 때문. 중수부가 하기엔 ‘급’이 낮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수부의 한 수사관은 “한화나 태광을 일선에 맡기고 C&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 규모는 작아도 비자금 조성 금액이나 또 연루된 정치권과 금융권 인사들 면면은 놀라울 정도”라면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한다는 중수부 방침에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에선 이번 중수부 수사가 ‘워밍업’일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년 4개월 동안 쉬었던 중수부가 무뎌진 칼날을 갈기 위한 일환으로 C&그룹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때 ‘폐지론’까지 나올 정도로 수모를 당했던 중수부 입장에서 C&그룹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확실한 카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C&과 관련된 첩보를 대거 입수하고 자체적으로 확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는 점도 이번 수사에 일정 부분 작용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C&그룹 사건은 중수2과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보통 중수부 핵심 수사를 중수1과가 전담한다는 것을 거론하며 조만간 ‘대어급’이 표적에 걸릴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수부가 공백 끝에 선보인 결과물이 대표적 호남기업 중 하나인 C&그룹이라는 것도 검찰로서는 신경이 쓰일 법하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임병석 회장은 호남 지역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 중수부 수사가 ‘야권을 겨냥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벌써부터 민주당 유력 정치인 P 의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중수부는 이러한 공세에 대해 “혐의가 있으면 수사할 뿐”이라는 ‘원칙론’으로 방어하는 한편, 향후 전개될 대기업 수사를 지켜보면 형평성 문제가 불식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중수부 수사가 다른 대기업들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C&그룹 다음 타깃 중 하나는 CJ그룹이라고 한다. 사진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
그런데 이 씨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이 회장이 차명재산과 관련해 1700억 원대의 세금을 납부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이재현 회장이 1700억 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낸 점에 비춰 피고인이 사채업자에게 빌려준 금액은 전체 차명재산에서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당초 1심에서는 이 씨가 관리하던 돈이 500억 원대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뒤늦게 세금 납부액이 밝혀지면서 이 회장 차명재산은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1조가 넘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몇몇 시민단체는 CJ 측에 이 회장의 정확한 차명재산 규모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중수부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CJ 측은 이 회장이 선대(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자금이라고 해명했지만 중수부는 차명재산 중 일부가 계열사를 통해 조달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중수부 관계자는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나 조성경위 등을 살펴본 결과 직접 내사할 필요성이 있었다. 청부살인 부분은 재판이 끝나 어쩔 수 없지만 비자금은 별개다. C&그룹 건이 마무리되면 (CJ그룹) 관련자들 소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수부는 당시 청부살인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청과 이 회장 차명재산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던 국세청 등에 대해서도 윗선 압력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검찰은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를 진행하면서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한 바 있어 중수부의 수사 반경은 다른 사정기관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CJ그룹 내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중수부의 C&그룹 수사가 야권 정치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CJ그룹의 경우는 여권에도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중수부가 CJ와 연관이 있는 정권 실세를 잡기 위해 형평성 차원에서 C&을 먼저 쳤을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지난 2008년 청부살인 사건이 터지자 정·재계 및 사정기관들 시선은 이 회장이 숨겨놓은 차명재산 실체가 드러날지에 쏠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현 정권 실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었는데 중수부는 이 부분을 다시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중수부가 살아 있는 권력까지 건드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면서 “현재 여러 기업이 사정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성역 없이 수사해 신뢰받는 중수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CJ 측은 중수부의 내사 소식에 대해 “지금 우리 회사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검찰 측으로부터 어떠한 연락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