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사 착수…‘버닝썬 윤 총경’처럼 사건 무마 의혹 일어도 경찰만 ‘셀프 수사’ 가능해 논란
지난해라면 검찰이 직접 수사를 진행했을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현 시점에선 감찰과 내사를 진행 중인 경찰만이 정식 수사할 수 있다. ‘총경’은 고위공직자에 포함되지 않아 새로 신설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다룰 사안도 아니다. 또 다시 경찰이 제 식구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더라도 검찰과 공수처는 나설 수 없다. 반면 경찰은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김진욱 공수처장 피고발 사건을 수사 중에 있다.
2월 25일 경찰은 박 아무개 서울강남경찰서 서장(총경)을 대기발령하고, 김형률 총경을 새 강남경찰서장으로 발령했다. 대기발령 상태인 박 총경은 다양한 비위 의혹으로 감찰을 받고 있는데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최근 대기발령을 받은 전직 강남경찰서장 박 아무개 총경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2019년 7월~2021년 1월) 각종 비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경찰청은 내부 제보를 통해 관련 의혹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총경은 근무시간에 음주를 한 뒤 사무실에 늦게 들어오고 심지어 사무실에서도 술을 마셨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술자리에 부하 여경을 불렀다는 의혹도 제기됐는데 지난해 여름 술자리가 끝난 뒤에는 부하 여경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술값을 변호사가 대납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이는 평소 친분 있는 법무법인 변호사와 유착해 사건을 처리했다는 주장 제기로 이어진다. 해당 변호사는 박 총경과 경찰대 동기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 ‘마스크 대란’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마스크를 대량 적발해 압수했는데 압수 물품을 약사인 자신의 아내에게 넘기라고 수사관들에게 종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경남 남해 소재의 호화 리조트에 여러 차례 숙박을 했는데 한 건설업자가 객실료를 대납했다는 의혹도 있다.
현재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이 감찰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경찰청 감찰수사계에서도 내사에 착수했다. 내사를 통해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등이 정식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에 대해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은 3월 2일 기자 간담회에서 “총경급 비위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이기에 중하다고 판단해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은 가정을 전제로 말하기보단 감찰 조사가 정확하게 이뤄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경찰청과 서울청 각 감찰 부서에서 유형별로 역할을 나눠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고만 밝혔다.
대기발령 조치가 난 뒤 휴대전화를 끄고 언론의 취재를 피하던 박 총경은 2월 27일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관련 혐의 일부를 부인했다. 우선 압수한 불법 마스크를 약사인 아내에게 넘기도록 수사관들에게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박 총경은 “세금계산서도 있는 정당한 구매였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자가 호화 리조트 객실료를 대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시골집이 잘 정리돼 있고 처가도 인근이라서 굳이 비싼 리조트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 총경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서 진행했다. 경찰이 감찰과 내사를 거쳐 정식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총경급 경찰의 비위 의혹이라는 점에서 경찰이 적절한 수사를 진행할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게다가 박 총경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 서울 강남경찰서장 등 경찰 주요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버닝썬 경찰총장’ 윤규근 총경 사건 역시 경찰이 무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청 본청과 서울 수서경찰서를 압수수색까지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감찰과 내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경찰이 정식 수사를 진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경찰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도 검찰은 나서기 힘들다.
현재 검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6대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총경급 경찰 공무원의 비위인 이번 사건은 6대 범죄 가운데 ‘부패’와 ‘공직자’에 해당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3급 이상 공직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5급 이하는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며 4급만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한다. 총경은 4급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다. 그런데 ‘부패’의 경우 뇌물액수 3000만 원 이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기준 5억 이상의 공직자 범죄만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박 총경 사건의 경우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4급 공직자 관련 사건이지만 검찰이 사건을 가져와 직접 수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아예 불가능하다. 공수처법 제2조는 ‘고위공직자’라는 용어를 정의하며 수사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찰공무원은 경무관 이상으로 돼 있다. 총경의 경우 아예 법적으로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2월 23일 오후 김창룡 경찰청장을 예방하기 위해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을 찾았다. 공수처장 취임 이후 진행되는 관련 기관 예방 일정의 일환이지만 김 처장이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이뤄지는 만남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사진=최준필 기자
한편 김진욱 공수처장은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번 사건은 2월 18일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김 처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고발 내용은 김 처장이 헌법재판소 재직 당시에 코스닥 상장사 주식 취득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이 사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닌 터라 종로경찰서로 이관됐다. 이에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일선 경찰서가 고위직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나 압수수색 등의 수사를 진행하긴 어려우니 반드시 경찰청 본청 차원의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결국 사건은 종로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로 인계됐다. 다만 경찰은 사건 인계가 이뤄진 것은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의견서 내용 때문이 아닌 ‘주요 사건과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의 경우 수사 상황을 지방청에 보고하고 수사도 할 수 있게 하는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안은 2월 19일 인사청문회에서도 문제가 됐는데 김 처장 측은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 수가 불어나고 주가가 하락할 위험이 있어 상법에서 10%가량 싸게 팔 수 있도록 하며 다른 유상증자 참여자들에게도 적용된 혜택”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